[차현진의 돈과 세상] [135] 새마을금고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1789년부터 1914년까지를 ‘장기 19세기’라고 불렀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익어가던 그 기간에 각국 정부는 복지와 빈민 구제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다. 회원끼리 상부상조하는 풀뿌리 조직이 탄생했다. 협동조합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협동조합이 노동조합 형식으로 나타났다. 반면 산업화가 늦은 독일에서는 신용협동조합(신협)이 두드러졌다. 신협은 자본가가 없어도 지역 주민과 회원끼리 십시일반(十匙一飯) 자금을 갹출해서 설립할 수 있다. 그래서 캐나다와 미국 같은 금융 후진국에 들불처럼 번졌다.
독일은 1889년 신협법을 따로 만든 반면, 가난한 이민들이 신협을 꾸렸던 미국에서는 입법에 관심이 작았다. 대공황을 맞아 신협이 무더기로 쓰러지던 1934년에 이르러서야 부랴부랴 연방신협법을 만들고 농업신용청(FCA)을 신설했다. 하지만 영세 신협을 하나하나 감독하기는 귀찮고 위험했다. 관련 부처가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1942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1948년 사회보장국(SSA), 1953년 보건복지부(HHS), 1970년 전국신협청(NCUA)으로 신협 감독권이 전전했다. 경제가 아닌 정치적 결정이었다.
1907년 대한제국에 ‘금융조합’이 설립되었다. 농업협동조합의 전신이다. 1960년에 이르자 부산에서 가톨릭 신자들끼리 세운 신협이 등장했다. 군사정부가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묵은 인습을 깨우쳐 나태와 무기력에서 탈피하고자’ 재건국민운동본부를 설치했는데, 현역 군인이 지휘하는 그 본부는 재건국민체조와 함께 지역 신협, 즉 마을금고 설립을 권장했다. 새마을금고의 출발이다.
처음에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그러다가 1972년 신용협동조합법을 만들면서 감독 부처를 정했다. 직장과 단체 신협은 재무부, 마을금고는 내무부가 맡았다. 21세기 들어 그것을 바꿔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경제 논리를 넘어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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