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초과학을 가능케 해준 선배들께 감사드립니다” [박종인의 땅의 歷史]
대전의 탄생과 대전발 0시 50분
대전(大田)은 조선 후기 고지도에 드문드문 나오던 지명이었다. 공주와 충주, 청주 그리고 회덕과 진잠, 연산, 옥천 등지가 사람이 살던 도시였다. 러일전쟁이 임박한 1903년 12월 28일 일본 정부는 ‘경부철도 속성 명령(京釜鐵道速成命令)’을 공포하고 군사철도 경부선을 대전천(大田川) 옆을 지나는 노선으로 확정했다. 인구가 밀집한 공주로 우회하는 노선은 경제적으로는 이득이 예상됐지만 토지 매입 비용이나 군수물자 신속 운송을 위한 건설 기간 단축을 기준으로는 ‘텅 빈’ 대전천변이 유리했다. 기관차 증기엔진 공급용 용수도 대전천이 풍부했다.(고윤수, ‘식민도시 대전의 기원과 도시 공간의 형성’, 도시연구 27호, 도시사학회, 2021)
1904년 ‘갈대가 무성하고 황량한 한촌’에 일본인 철도 노무원 188명이 들어왔다. 1914년 대전에 사는 일본인은 3435명으로 급증했다. 도시가 형성되면서 수십 가구에 불과했던 조선인 또한 1556명으로 급증했다. 대전은 명백한 식민도시였다.(송규진, ‘일제강점 초기 식민도시 대전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 아세아연구 통권 108호,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2002) 1913년 10월 대전역을 분기점으로 한 삼남선(三南線·호남선)이 완공됐다. 분기점 원안은 조치원이었으나 대전 거류 일본인들 로비에 의해 대전으로 변경됐다.
지금은 호남선이 대전 북쪽에서 분지하지만, 그때 경성에서 목포로 가려면 대전에서 멈췄다가 열차 기관차 방향을 바꿔 달아야 했다. 소요 시간은 10분이었다. 0시 40분에 열차가 대전역에 도착하면 승객들은 10분 동안 구내 국숫집에서 가락국수를 먹고 객차에 오르곤 했다. 목포행 열차는 0시 50분에 출발했다.
대덕의 탄생
허허벌판에 탄생한 대전이 지금 도시 전역이 비행금지구역이다. 인근에 군사도시 계룡대가 있어서가 아니다. 유성구 대덕연구개발특구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 때문이다. 원자력연구원은 국가주요시설이다. 1985년 서울 공릉동에서 대덕으로 이전이 완료된 이래 대전 하늘은 이 국가주요시설을 지키는 방호막이 됐다.
대덕단지는 1973년 첫 삽을 떴다. 올해가 50주년이다. 단지 설립 목적은 명쾌했다. ‘각지에 분산돼 있는 연구기관의 협동체.’ 기기와 시설 공동 이용과 연구원 상호 교류를 통한 지적 공동체가 목표였다.(최형섭, ‘최형섭 회고록’, 조선일보사출판국, 1995, p143)
50년 전인 1973년 9월 4일 과학기술처장관 자문기구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추진위원회’가 설치됐다. 1974년 3월 충남 대덕군 유성과 탄동, 구즉면 일대에 도로가 건설되고 한국표준연구소를 시작으로 정부 출연 연구소들이 속속 건설되고 입주했다. 800만평짜리 땅에 5만 인구가 생활할 자립도시로 예정됐지만 1973년 1차 석유 파동 탓에 자립도시에서 전문연구단지로 목적이 변경됐다. 하지만 국가기간산업을 떠받칠 전문연구소 집합체로서 정체성은 바뀌지 않았다. 1978년 4월 7일 대한민국 모든 것의 표준을 정하는 한국표준연구소가 개소했다. 9월 2일 럭키중앙연구소(LG화학기술연구원)이 첫 민간연구소 기공식을 가졌다.
1979년 10월 25일 오후 1시 20분, 단지 구축을 총괄하는 대덕단지관리사무소에 대통령 박정희가 불시 방문했다. 종합상황실에는 박정희가 쓴 휘호 ‘과학입국 기술자립’이 걸려 있었다. 박정희는 비서실장, 경호실장과 함께 단지 건설 현황을 보고받고 떠났다. 다음 날 박정희는 죽었다.(’대덕연구개발특구 40년사’,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2013, pp.64, 65)
이 광활하고 넓은 땅은 정부 출연 기관과 민간 연구기관이 가득하다. 2023년 현재 대덕연구개발특구는 2000만평 넘는 부지에 30여 개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295개 기업 연구소, 1000여 벤처·중견기업과 대학이 모여 있는 국내 최대 원천 기술 공급지가 됐다. 식민지 본국 일본인들이 건설한 도시가 과학도시로 변한 것이다.
대덕 과학기술자들의 성과
1986년 전기통신기술연구소(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전전자교환기(TDX)를 개발했다. 대한민국이 수동식 시외전화에서 해방됐다. 1989년 4메가 D램이 개발됐다. 지금 반도체 왕국은 그때 시작됐다. 1987년 원자력연구소에서 중수로 핵연료 국산화에 성공했다. 1988년 경수로 핵연료 양산 기술을 개발해 핵연료 자립에 성공했다. 1995년 한국형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가 개발됐다. 1997년 국방과학연구소는 K9 자주포를 완성했다. 1992년 3년 전 대덕에 입주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대한민국 첫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우주로 보냈다. 2008년 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 실험용 핵융합발전기 KSTAR를 개발했다. 2013년 항공우주연구원에 의해 대한민국 우주 발사체 1호 나로호가 발사됐다. 2023년 역시 항공우주연구원이 개발한 누리호가 발사됐다.
이 모든 일이 대덕연구단지에 둥지를 튼 연구소들이 민간기업과 합작해 해낸 일들이다. 언론인으로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취재하고 지금 대전 경제과학 부시장으로 일하는 이석봉이 말했다. “연구단지라는 물리적 공동체이기 때문에 가능했지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연구원은 이루지 못할 성과들이다.” 미래라는 것이 불확실하던 1970년대, 미래를 연구한 저 두뇌들은 무엇이며 그 두뇌들이 모일 수 있도록 저 광활한 땅을 마련하고 키운 리더는 도대체 무엇인가.
대한민국, 기초과학에 발을 딛다
1966년 해외 두뇌 유치 작업을 벌이고 있던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초대 소장 최형섭이 미국에서 교수로 일하던 이론물리학자 이휘소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자기도 KIST에 동참하고 싶다는 편지였다. 최형섭이 답장을 보냈다. “지금은 기초연구를 할 단계가 아니니 박사님처럼 노벨 물리학상에 거론되는 분은 계속 미국에 머물러 연구하시라.” 이휘소가 답장을 보냈다. “동의한다. 하지만 언젠가 기초연구를 할 수준이 되면 제일 먼저 불러주시라.” 최형섭은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젊은이였다”고 회상했다. 이휘소는 1977년 교통사고로 죽었다. 1977년 최형섭은 이휘소에게 훈장을 상신했다. 훈장은 어머니가 대신 받았다. 이휘소가 일하고 있던 미국 양전닝연구소 소장 양전닝(楊振寧)이 방한해 기념 강연을 했다.(최형섭, 앞 책, pp.96, 97)
그런 시대였다. 노벨상은커녕 감히 기초과학 연구를 위해 국가에 손을 내밀 엄두도 못 낼 때였고, 그런 손에 연구비를 쥐여줄 수 없는 가난한 대한민국이었다. 최형섭과 함께 활동했던 원자력 1세대 이창건은 기억한다. “확고한 기술 입국이라는 신념 덕분에 대한민국이 부강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기초과학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라고.
이휘소가 강력하게 주장했던, 그 기초과학의 시대가 왔다. 2011년 5월 대덕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한국기초과학연구원이 설립됐다. 대덕 40년사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빅사이언스’가 주연구분야다. 실패를 감수한 모험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도 포용한다.’(p.259) 대한민국이 드디어 기초과학으로 시야를 넓힌 것이다. 2018년 라온(RAON) 중이온가속기 설치가 시작됐다. 설비와 장비, 건물과 부지까지 1조5000억원짜리 초대형 프로젝트다. 중이온가속기는 우주 탄생의 비밀을 풀 수 있는 희귀 동위원소를 탐색하는 장비다. 물론 이 과정에서 2차전지와 신물질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당장 돈이 되는’ 응용과학 기술과 거리가 멀다.
중이온가속기연구소 소장 홍승우가 말했다. “언제 성과가 나올지 모를 연구를 위해 이 연구소 예산을 대한민국이 댔다. 대한민국 연구원들이 설계했다. 대한민국 산업체가 대한민국 기술로 만들었다. 선배 과학자들에게 무한히 감사하고 대한민국에 감사하다. 이제 없는 것은 경험뿐이다.” 식민도시 대전은 과학도시로 변신했다. 가난한 신생 공화국은 웅장한 대한민국이 됐다. 그 공화국이 미래를 준비한다. <’박종인의 땅의 역사’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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