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통일부 수난시대
너무 가혹하다는 통일부
北 인권에 눈감았던 과거
어물쩍 넘어가려 했나
지금 통일부는 집단 패닉 상태다. 지난달 “대북지원부 같다”는 대통령의 질타를 받고 장·차관과 통일비서관이 한꺼번에 외부 인사들로 물갈이된 것부터가 1969년 부서 창설 이래 처음 겪는 수모다. 대대적 조직 개편의 칼바람 속에 1급 간부 전원이 사표를 썼고, 사직서 제출을 거부한 2급 이하 간부들은 타 부서 전출 또는 특별교육 대상이란 말이 돌며 부서 전체가 술렁인다.
작년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만 해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전 정부 부역 논란 등으로 다른 부처에서 곡소리가 날 때도 통일부는 상대적으로 평온했다. 여권 실세로 꼽히는 중진 의원이 장관으로 부임하면서 웬만한 ‘외풍’은 막아준 영향이 컸다. 실세 장관 덕에 부서 위상도 올라가면서 외교부, 국정원에 대해 가졌던 열등감도 잊고 지냈다.
태평성대는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통일부가 올봄 발간한 북한인권보고서 영문판이 계기가 됐다. 맨 앞 장에 ‘정확성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면책 문구(disclaimer)를 넣은 게 화근이었다. ‘신뢰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문구를 넣은 저의가 뭐냐’는 인권단체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즉각 시정했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통일부는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대응했고 이를 보고받은 대통령이 대로(大怒)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통일부 실무진의 단순 실수로 빚어진 사고에 가깝다. 책임자로 지목된 간부만 해도 통일부에 드문 대북 원칙주의자로 분류돼 지난 정부 내내 주요 보직에서 배제된 인사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 사건을 통일부의 ‘도발’로 간주했다. 통일부가 정권 교체 1년도 훨씬 지난 지금 느닷없이 ‘적폐 부서’로 지목돼 풍파를 겪게 된 경위다.
지난 정부에서 통일부는 찬밥 신세였다. 청와대가 북 통전부의 카운터파트로 국정원을 공개 지목하면서 통일부는 회담 지원 부서로 전락했다. 2018년 4·27 판문점 정상회담 때 조명균 장관이 배석하지 못한 것이 당시 통일부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통일부는 이 사실을 하루 전 통보받고 충격에 빠졌다. ‘남북 평화쇼’의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였는데 ‘적폐 소굴’ 취급을 받으니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북 제재로 석유 정제품의 대북 반출이 금지됐는데도 중유 340t을 몰래 개성으로 빼돌리고, ‘김여정 하명’에 전단금지법을 만들고, ‘삐라를 통해 코로나가 확산된다’는 북의 억지를 정부 공식문서로 만들어 외국 대사관들에 뿌리고, 탈북민 단체들의 설립 허가를 취소하고, 보조금과 사무감사로 인권단체들을 겁박한 게 통일부다. 두목보다 앞잡이의 악행이 더 사무치는 법이다. 북한인권보고서 소동은 그런 과거를 소환했을 뿐이다.
한때 통일부는 중앙 행정기관 서열 2위의 부총리급 부서로 통일정책을 총괄했다. 경제부총리, 외무장관, 안기부장을 거친 거물들이 영전해 오던 부서다. 조국 통일에 이바지하겠다며 통일부를 지원하는 행시 고득점자들이 적지 않았다. 통일부가 생산한 북한 정세 보고서는 안기부 것보다 탁월하단 평가를 받았고, 북한을 바짝 긴장시키는 회담 전문가들을 여럿 길러냈다. 통일부가 본분에 충실했던 시절이다.
통일부는 헌법 3조와 4조를 구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이다. 모든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는 근거다. 북한 인권을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 인류 보편의 가치인 동시에 헌법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 5년간 통일부는 그런 노력을 집요하게 탄압했다. 급기야는 귀순 의사를 명확히 밝힌 탈북 어민을 강제 북송하는 데 가담했다. 통일부는 그 잘못을 바로잡을 시간이 있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1년을 허송한 대가를 지금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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