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감동 받는 것도 능력이다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Keith Jarrett)이 2002년 도쿄에서 연주한 ‘대니 보이(Danny Boy)’ 동영상을 친구가 보내왔다. 필자에게 대니 보이 하면 실 오스틴(Sil Austin)의 색소폰 연주가 제맛이라 큰 기대 없이 틀었다. 그런데, 세상에! 불협화음이 주는 절묘한 긴장감과 재즈풍의 감성터치에 나의 귀와 눈은 안절부절이었다. 5분30여초 동안 피아노에 엎드렸다가 일어서기를 이어가면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건반을 쥐락펴락하는 키스 자렛의 연주에 전율이 인다.
이런 희열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래, 그건 아마도 곡을 만든 사람의 희망과 연주자의 진심, 그리고 듣는 이의 감성이 함께 공명하는 순간 일어나는 느낌 때문이리라. 그 덕에 우리는 감동(感動)을 얻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행복의 나라로 떠나게 된다.
느낄 감(感)에는 마음 심(心) 자가 있고 움직일 동(動)에는 힘 역(力) 자가 들어있다. 감동은 마음의 힘이다. 행복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삶의 옹달샘이다.
하지만 느낀다는 것도 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여름날 초저녁 오래된 하모니카 소리에 울컥 고향을 그리는 타고난 감성이 아니고야 ‘의식적인 연습’을 해야 한다. 느낌은 오는 것, 받아낼 줄 모르는 사람에게 그냥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 잘, 그리고 깊게 느끼기 위해서는 그렇게 느끼는 예를 살펴 따라 해보아야 한다. 다행히 그러한 기준을 잡아주는 사람들 대부분이 책을 쓰니 책은 감성 훈련의 좋은 도구다. ‘음악, 좋아하세요?’ ‘재즈를 읽다’ ‘박수는 언제 치나요?’ 등 무수히 많다.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느끼는 방법과 내용을 꼼꼼히 챙기면서 음악을 듣다 보면 마음을 건드리는 게 있다.
필자는 ‘음악, 좋아하세요’를 3번 읽었다. 지난 두 번은 읽은 게 아니었다. 죄다 놓친 것만 같다. 읽을수록 밑줄 친 부분이 점점 많아져 이제 박동진 명창의 ‘적벽가’에도 마음이 간다. 서툰 외국어도 자주 듣다 보면 안 들리던 단어가 귀에 들리듯 낯설고 새로운 음악도 자꾸 듣다 보면 느낌이 온다.
더 좋은 방법은 직접 맞닥뜨리는 것이다. 오디오는 2차원이고 현장은 3차원이다. 차원이 다르다. 값비싼 오디오 소리가 최고인 줄 알다가 어느 날 작은 음악회에서 어린 학생의 피아노 소리에 전율을 느낀 적은 없는가? 저잣거리에서 ‘흥부가‘를 즐기고 서커스단에서 ‘홍도야 우지마라’를 트럼펫으로 들었던 시대에는 더 큰 감동이 있었다. 시간을 만들어 문화회관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나 오페라 ‘토스카’를 직접 만나볼 일이다. 현재의 한계를 떠난 가능성의 영역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 다가온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곰브리치(Gombrich)는 그의 저서 ‘서양미술사’에서 ‘미술가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를 우리가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은 가장 겸손한 말로 표현되는 바로 이 ‘제대로’라는 단어를 이해할 수 있을 때인 것이다’고 말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작곡자의 꿈과 연주자의 진실을 느끼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의식적인 연습이 있어야 한다. 미세한 감성은 마땅히 겪어야 하는 제대로 된 희망적 고통을 통해서만 자라기 때문이다.
한때는 베토벤 교향곡 1번에서 9번까지를 틈만 나면 들었다. 인터넷상으로 베토벤 교향곡 해설 관련 문서를 모았더니 A4 100장에 육박한다. 좋아하는 5번(운명교향곡)은 136페이지 악보까지 구했다. 이제 좀 더 촘촘한 감성의 그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성능 좋은 스피커를 가져다 놓고 전율을 느낄 때까지 듣든지 연주회에 가는 것이다.
지금, 여름날의 음악 ‘피서지에서 생긴 일(A Summer Place)’을 퍼시 페이스(Percy Faith) 악단의 연주로 듣는다. 마음은 이미 정결한 고독과 티 없는 감미로움으로 충만했던 대학 시절의 송정 바닷가로 달려간다. 참 좋다. 생각해보면 살기 바빠서 느낄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감동받지 못하기 때문에 삶이 재미없는 것 같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감동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이번 여름엔 독서와 음악에 빠져 감동받는 연습을 제대로 해보는 건 어떨까. 느낌의 촉각이 섬세해져 남은 한 해 창창(唱唱)하게 보낼 수 있을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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