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나만 정의롭다’는 사람들
“미국 특파원들 매우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분들 많은데 거의 대부분 골프 실력만 늘어 오는 사람 너무 많은데요….”
지난달 주진우씨가 진행하는 KBS 라디오 프로그램의 유튜브 영상을 보니 이렇게 말했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관련, “지금 도쿄 특파원들이 맹활약하고 기사가 쏟아져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쉽다”며 불만을 토로하던 와중에 나온 발언이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 어떤 사례나 수치를 제시했다면 팩트체크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주씨의 인상 비평에 특파원 집단은 골프나 치고 희희낙락하는 사람들 정도로 매도됐다. 전 국민이 청취하는 공영 방송에서 ‘의문의 1패’를 당한 것이다. 옆에 앉은 미디어오늘 기자는 공감한 듯 주씨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두 차례 끄덕였다.
매일 아침 시사 프로를 진행하는 어느 KBS 기자의 오프닝 멘트와 소셜미디어(SNS)에도 언론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하다. 특정 현안에 대한 기사 논조가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이게 지금 한국 언론의 수준이다” “볼 게 종편밖에 없는 나라로 전락하는 건 막아 달라” “사이비들아 마음대로 떠들어라” 하는 식이다. 지난달 언론이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깜짝 방문을 비중 있게 보도했을 땐 “스펙터클 대하소설마냥 기사를 쓴다”고 조롱했다. 이런 사람이 매일 아침 공영방송의 마이크를 잡고 국가의 대소사를 논하고 있다.
한국에선 ‘언론 혐오’가 유망한 비즈니스다. 어느 순간부터 진영 논리에 매몰된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것을 넘어 내 편이 아닌 언론을 헐뜯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이 대열의 선두에 언론인들이 있다. 지난해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따라 전국을 돌아다녔을 때의 일이다. 동행한 한 인터넷 매체 기자의 관심사는 이른바 ‘보수 언론’의 기자들이 이 후보에게 어떤 질문을 하느냐였다. 이거다 싶으면 영상에 자막을 입혀 유튜브에 올렸고 이 후보 지지자들이 몰려와 악플을 달았다. 시중에는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이란 책도 있다. 세일즈를 위해 저자인 기자 스스로가 자신의 직업을 ‘기레기’라 표현하는 굴욕을 감내해야 하는 시대가 됐으니 웃픈 일이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언론이 반성할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언론 혐오를 조장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공론장을 황폐하게 만들어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그 근저에는 ‘나만 정의롭다’는 정서가 있다. KBS 라디오에서 경제 프로를 진행하는 한 기자는 스스로를 “경제와 정의를 다 잡는다”고 소개한다. 경험은 일천하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기자로 일하며 스스로가 ‘정의’라 말하는 사람을 가장 경계해 왔고 이 촉이 틀린 적이 잘 없다. 나만 정의롭다는 강박 관념을 내려놓고 특정 시각에서 주장하더라도 최소한의 팩트에 기반해야 보수·진보 할 것 없이 언론이 지금보다 더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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