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밑에서 13년… ‘테슬라 2인자’ 커크혼은 왜 떠났나

실리콘밸리/오로라 특파원 2023. 8. 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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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돌연 CFO 자리 사퇴

“잭은 2019년 3월부터 회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하고 있는 ‘주화의 제왕(Master of coin)’입니다.”

테슬라 공식 홈페이지 임원 소개란은 지난 4년 동안 회사의 재무적 성장을 이끈 재커리 커크혼(Zachary Kirkhorn·38) CFO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기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왕실 재정을 풍족하게 관리하는 캐릭터 ‘주화의 제왕’에 그를 빗대면서 만년 적자였던 테슬라를 오늘날의 건실한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주역으로 내세운 것이다. 테슬라 C레벨(최고위 임원) 4인방 중 이 같은 별칭이 있는 사람은 ‘테크노 킹’을 자처하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외엔 커크혼뿐이다.

머스크의 든든한 오른팔이자 테슬라 ‘2인자’였던 커크혼은 7일(현지 시각) 돌연 CFO 자리에서 내려왔다. 테슬라 입사 13년 만이다. 테슬라는 이날 “커크혼이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지난 4일부로 최고회계책임자(CAO)인 바이바브 타네자를 신임 CFO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테슬라 홈페이지에서 커크혼의 인물 소개는 삭제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예상치 못했던 커크혼의 퇴진은 테슬라의 전기 픽업트럭 사이버트럭의 출시를 목전에 두고 일어났다”며 “52세 머스크의 경영권 승계가 어떻게 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머스크의 ‘팀 쿡’ 같았던 커크혼

WSJ는 “머스크와 커크혼의 관계는 마치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와 팀 쿡 현 애플 CEO 같다”고 평가했다. 한 명은 뛰어난 창의력을 바탕으로 위험한 내기도 마다하지 않으며 혁신을 일으키는 천재, 다른 한 명은 천재가 날뛰는 동안 묵묵히 회사의 재정과 운영을 도맡는 ‘내조자’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괴짜인 데다 성격이 불같아 툭하면 사람을 자르는 CEO 곁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점도 비슷하다.

테크 업계에선 “테슬라는 머스크가 아닌 커크혼이 운영하는 회사”라는 말도 있었다. 2010년 테슬라에 입사한 커크혼은 9년 만인 2019년 3월 CFO로 임명됐지만, 실제 하는 일은 회사 운영 전반을 관리하는 최고운영책임자(COO)에 가까웠다.

그가 CFO를 맡았을 무렵 테슬라 기업 가치는 500억달러(약 66조원)가 채 안 되는 데다,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었다. 커크혼이 CFO로 재직하는 동안 테슬라는 2020년 첫 흑자 전환을 이뤘고, 기업 가치는 현재 근 8000억달러로 16배 넘게 폭등했다. 스타 CFO의 퇴진 소식에 7일 테슬라 주가는 장중 한때 3%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픽=이지원

◇비트코인이 불화 지폈나

머스크는 X에 “그의 다음 커리어에 행운을 빈다”고 했고, 커크혼도 링크드인에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 일론의 리더십과 낙관주의에 감사한다”고 썼다. 하지만 “두 사람의 불화가 꽤 오래전 시작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테크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커크혼은 머스크가 가상화폐에 빠진 것을 불만스러워했다. 2021년 머스크는 테슬라 명의로 15억달러 규모 비트코인을 매입하고, 전기차 결제 수단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테슬라는 지난해 당시 사들인 비트코인을 대부분 매도했고, 테슬라 매입 수단으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천방지축 머스크 곁에서 13년을 버텼지만 승계가 요원한 점도 불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WSJ는 “(CEO 등극을 기대했던) 커크혼이 머스크가 당장 물러날 계획이 없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테슬라 이사회에선 커크혼을 차기 CEO로 추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그가 해고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게리 블랙 퓨처펀드 공동 창업자는 X에 “통상 고위 임원의 사임은 유예 기간을 두는데, 즉시 자리에서 내려온 게 이상하다”고 적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커크혼마저 회사를 떠나는 것은 머스크와 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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