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패권이 틀어막은 美금융리스크…신평사는 급소를 찔렀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2023. 8. 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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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타클래라=AP/뉴시스] 13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점에서 나온 밥이라는 남성이 기자들과 얘기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SVB 고객이었다는 이 남성은 파산한 SVB에 돈을 찾으러 왔다고 밝혔다. 연방정부는 SVB 예금주들이 인출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SVB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3.03.14.

세계경제의 인플레이션 대혼란 속에서도 달러 패권이라는 발권력으로 금융권 리스크를 틀어막고 나홀로 성장을 구가하던 미국이 큰 복병을 만났다. 잘 길들인 줄로만 알았던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미국의 급소를 조목조목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8일(현지시간) 글로벌 신평사 무디스(Moody's)는 M&T뱅크 등 미국 중소형 은행 10개의 신용등급을 한꺼번에 강등했다. 올초까지 지켜보던 미국 지방은행 일부의 연쇄도산에 대한 우려를 공론화한 것이다.

무디스는 일단 소액 대출기관 가운데 M&T뱅크와 피나클 파이낸셜, BOK파이낸셜, 웹스터 파이낸셜 등 10개사의 등급을 내렸다. 무디스 애널리스트 질 세티나와 애나 아소브는 "미국 은행들 일부가 금리와 자산부채 관리(ALM) 리스크에 놓여있다"며 "긴축적 통화정책이 본격화하면서 금융 시스템 전반의 예금(유동성)이 고갈됐고, 금리가 계속 오르면서 (채권 등) 고정금리 자산가치가 떨어지고 있어 금융권의 유동성과 자본에 영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과 워싱턴 예상못한 충격
뉴욕증시나 정치권인 워싱턴은 예상치 못한 공격에 큰 타격감을 입은 모습이다. 사실 지방은행 위기는 올 초 조 바이든 행정부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발권력으로 틀어막은 이슈였다. 실리콘밸리은행(SVB)와 뉴욕시그니처은행 등이 파산했지만 연준이 다시 일시적인 양적완화 정책으로 연쇄도산을 막은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들을 흡수하기 위해 브릿지 은행을 설립하고 1428억 달러를 퍼부었다. 또 은행권 연쇄도산을 막으려 은행간 무제한 펀딩프로그램 대출(BTFP)을 만들었다. 총 3000억 달러 이상을 일시적으로 풀어 억지로 시스템 리스크 전이를 틀어막은 것이다. 그 이후엔 싹을 자르기 위해 JP모건체이스 등 대형은행을 압박해 SVB 자산 등을 흡수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대형사는 알토란 자산만 챙겼고 금융권에 남아있던 구조조정 명분은 덮개로 가려졌다.

사실 미국 정부 입장에선 3000개에 달한다는 은행권 구조조정을 할 여유가 없었다. 미국 정치권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웅비하고 있는 공화당의 전력을 막아낼 대책에만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다시 트럼프가 배후에서 영향력을 미친 국가부채한도 협상 이슈가 발생했다.
국가채무불이행 직전까지 대립하는 美정치권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31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에서 부채 한도 상향 관련 재무 책임법안의 하원 통과 후 취재진을 만나고 있다. 2023.6.1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민주당은 끌려가면서도 결국 공화당의 요구에 따라 예산을 일부 삭감하면서 사실상 시한을 넘겨 아슬아슬하게 국가 채무불이행 직전에 부채한도를 늘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세계경제가 흔들렸고, 이 문제는 지난주 신평사 피치(Fitch Ratings)가 미국 장기채 신용등급 하향의 배경으로 지목하면서 다시 드러났다. 미국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발권력을 가진 세계 최강국이지만 첫째 국가 채무불이행 리스크를 번번이 노출하는 정치적인 거버넌스 문제를 가졌고, 둘째 양당체제가 정권을 주고받는 과정에서도 그 누구도 점증하는 국가부채에 대한 제고 인식이 실종된 문제를 지녔다는 것이다.

피치의 지적은 시장에 큰 파장은 몰고오지 못했다. 워싱턴이 이에 대해서 12년전 S&P(스탠다드 푸어스)의 행적을 답습한 터무니 없는 존재감 표현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고, 전문가들 또한 미국 경제가 연착륙을 기대하는 마당에 경기침체를 가정한 전제가 잘못됐다는 지적을 내놓으면서 그 가치가 폄하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디스가 예상치 못한 폭격을 퍼부었다. 신평사로서 미국이라는 소버린 파워와 대결하는 것은 지양하면서 대신 자신들이 움켜쥘 수 있는 중소형 대출기관의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상반기에 행정부와 연준이 돈을 풀어 가까스로 막아놓은 시장의 신뢰감을 본질부터 흔들어버렸다고 볼 수 있다.
증시 하루만에 반락…시스템 신뢰 흔들린다
(워싱턴 로이터=뉴스1) 우동명 기자 =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갖고 "데이터가 뒷받침된다면 기준금리를 9월 회의에서 올리는 것도 틀림없이 가능하고, 유지를 선택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2023.7.27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무디스의 접근법은 증시의 실적장세와 예상치 못했던 연착륙 기대감에 매몰돼 있는 투자자들에 예상치 못한 시스템 리스크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교활한 신평사는 만만한 소액 대출기관 10개의 등급을 일단 하향시켜 놓고는 중형사들은 잠재적인 등급하향 대상으로 분류했고, 이런 맥락의 모델 평가가 대형사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놨기 때문이다.

무디스의 미국에 대한 평가는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 도무지 반박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무디스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금리가 크게 인상되고 은행 시스템 준비금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은행의 ALM(자산부채관리) 위험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우려했다. 이어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 범위 내로 돌아올 때까지 금리는 더 오랫동안 더 높은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으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기 미국 금리도 여러 요인으로 인해 상승하고 있어 이는 은행의 고정 자산에 더 많은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이제부터는 오만하던 연준이 어떻게 자세를 고쳐잡을 것인가가 관심이다. 실업률이 사상최저치이며 노동시장의 탄력성이 강하기 때문에 금리를 또 올릴 수 있다고 벼르던 매파적 발언을 이제는 더 이상 쉽게 내놓을 수 없다. 중소형 은행은 물론 대형사들에도 시스템 리스크가 불거질 수 있다는 신평사의 지적과 그에 반응하는 시장을 제 아무리 연준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연준이 축적한 고금리를 언제 어떤 명분으로 내리는 시그널을 볼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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