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한국의 퍼스트 보이스카우트부터 실패했다
누구 하나 잘못된 선택 막지 않았다
대통령은 현장 가보고도 문제 인식 못해
진정한 올드 보이스카우트가 없는 나라
한국인 대부분이 가난하던 1970년대 초등학생이 보이스카우트를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없었다. 보이스카우트 복장을 갖추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야영이라도 가면 또 돈을 내야 했다. 당시 대부분의 부모들은 돈 들어가는 걸 싫어했다. 지방에서는 보이스카우트 마후라(스카프)만 하고 산으로 나물 캐러 다니고 바다로 해산물 캐러 다닌, 짝퉁 보이스카우트도 있었던 모양이다.
육성회비도 못 내 야단맞는 학생이 수두룩하던 시절이다. 그때만 해도 보이스카우트를 할 수 있는 학생과 보이스카우트를 할 수 없는 학생으로 나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먹고살 만해진 때에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세대라면 몰라도 60대가 왕년에 보이스카우트를 했다는 말은 예민한 감각을 지닌 대통령이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카우트(scout)는 정찰대라는 뜻이다. 정찰대는 본대(本隊)에 앞서 적진에 들어가 적의 동향을 탐지하고 돌아오는 임무를 띠고 있기 때문에 위험에 처하기 쉽다. 20세기 초 영국군 장성 출신이 남자아이들에게 용감한 정찰대의 꿈을 심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 보이스카우트이다. 정찰대원이 되려면 침투 생존 탈출에 능해야 한다. 보이들에게는 침투와 탈출은 필요 없으니 생존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고 그것을 위한 훈련이 야영이다.
유럽에서 벨 에포크(belle poque)라고 해서 문명의 이기가 주는 편리함에 빠져들던 시절 그에 대한 반동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청년들을 중심으로 일었다. 독일에서는 반더포겔(Wandervogel·철새라는 뜻)이라고 해서 알프스 등을 찾아다니며 노래하는 심신 단련 모임이 성행했다. 영국에서는 남자아이들에게 모험심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움직임이 일었으니 그게 보이스카우트 운동이다.
누가 가라고 하지도 않는 힘든 곳을 찾아가 역경을 극복하는 것이 보이스카우트 정신이지만 그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극복을 통해 자연과 일치되는 경험이 중요하다. 주변에 변변찮은 나무 그늘 하나 없는 새만금 인공 간척지에서는 역경은 끝까지 역경일 뿐이다. 역경을 극복함으로써 일치를 경험할 자연도 없다. 젊은이들의 모임을 새만금 선전에 이용해 먹는 걸 막아선 단 한 사람의 진정한 올드 보이스카우트가 여에도 야에도 없었던 모양이다.
자연에서 생존하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래서 보이스카우트의 모토 중 하나가 ‘Prepared. For life’다. 집 떠나 야영을 해본 사람은 철저히 준비한다는 말이 뭔지 안다. 집에서는 하찮게 여겼던 것도 밖에서는 없으면 큰 곤란을 겪기 일쑤다. 본격 등산이나 험지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는 ‘짐이 무거울수록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다. 배낭이 무거울수록 떠날 때 힘들기는 하지만 필요한 것을 빠짐없이 챙겨 가야 만일의 사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다. 새만금은 철저히는 고사하고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정부는 새만금의 실패를 특급 아이돌 그룹을 동원한 K팝 콘서트로 만회해 보려 한다. 정부가 각 부처를 통해 얼마나 닦달했는지 요새 블랙핑크보다 잘나간다는 뉴진스가 합류하기로 했다. 한국의 퍼스트 보이스카우트에게는 이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BTS를 동원하라는 특명이 내려진 듯하다. BTS 멤버 중 2명이 군 복무 중이다. 대중 가수라고 병역 면제도 안 해주더니 군 명령을 발동해서라도 군 복무 중인 BTS 멤버를 출연시킬 모양이다. 그래서 성대한 K팝 콘서트가 된들 새만금의 실패를 만회하기보다는 후유증이 더 클 것 같다.
대통령이 개영식에 갔으면 보이스카우트 복장 입고 사진만 찍고 올 게 아니라 제대로 야영장을 둘러봤어야 했다. 그래도 왕년의 보이스카우트인데 늪지 같은 야영장을 봤다면 느껴지는 게 있지 않았을까. 일선에게만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현장까지 가서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한 자신부터 자책해야 한다. 대통령의 한계를 장관들이 공유하고, 장관들의 한계를 일선이 공유하고, 그런 중앙정부의 한계를 지방정부가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전북도는 수사까지 해야 하겠지만 그 전에 감독을 제대로 못한 장관들부터 책임을 물어라.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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