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재의 매일밤 12시]2012년 5월 13일 충격적 그날, 퍼거슨의 얼굴
[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축구라는 건, 어떻게 보면 잔인하다. 누구에게는 희열이지만, 누구에게는 상처다.
2012년 5월 13일. 이날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팬들이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한쪽에서는 엄청난 희열을 느끼며 환호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엄청난 상처를 받으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날은 2011-12시즌 EPL 최종 라운드가 펼쳐진 날이다. 한쪽에서는 맨체스터 시티와 퀸즈 파크 레인저스가, 다른 한쪽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선덜랜드가 맞붙었다.
EPL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우승 경쟁 현장이다. 37라운드까지 두 팀의 승점은 86점으로 같았다. 38라운드 승자가 우승을 차지하는 데스매치. 두 팀 모두 승리한다면 골득실에서 앞선 맨시티가 우승.
경기가 시작됐고, 맨유가 1-0으로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맨시티는 1-2로 지고 있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우승은 맨유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맨유는 1-0으로 승리 확정. 이대로 끝나면 맨유 우승이다.
그런데 하늘은 하늘색 맨시티를 버리지 않았다. 후반 추가시간 맨시티 에딘 제코가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리고 종료 직전, 정확히 그 유명한 시간 '93분 20초'에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극적인 골을 작렬시켰다.
맨시티의 3-2 승리. 맨시티의 44년 만의 기적과 같은 우승 장면이다. EPL 역사상 가장 극적인 우승 장면으로 손꼽히는 맨시티의 마법.
역사는 승자만 기억하는 법. 많은 이들이 맨시티의 환호만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때 악몽과 같은 준우승에 머문 맨유는 어땠을까. EPL 역사상 가장 비참한 2위, 그들의 상처는 얼마나 컸을까.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는 팀 전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이때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이 나섰다. 그가 당시 선수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퍼거슨 감독을 보좌한 코치 르네 뮬레스틴이 기억해 냈다.
맨시티의 우승이 확정된 후, 라커룸으로 가는 길. 뮬레스틴 코치는 퍼거슨 감독 옆을 걸어가고 있었다. 라커룸에 거의 다 왔을 때 퍼거슨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선수들이 이 순간을 상처라고 느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지도자의 얼굴에 실망감을 숨기는 것이 먼저다. 선수들이 실망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책임이다."
실망감을 완벽하게 감춘 얼굴로 라커룸으로 들어선 퍼거슨 감독. 그는 맨유 선수들에게 연설을 했다고 한다. 어떤 내용이었는지 자세하게 공개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연설의 효과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았다. 뮬레스틴 코치는 이렇게 떠올렸다.
"뼈아픈 준우승이었지만, 퍼거슨 경의 연설로 맨유 선수들의 기분은 몇 분 만에 풀렸다. 이 순간이 다음 시즌 맨유가 리그를 지배할 수 있었던 시작점이었다. 퍼거슨 경의 말은 맨유 전체의 정신을 변화시켰다. 맨유 선수들은 다음 시즌 타이틀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퍼거슨 경의 연설로 패배는 도전으로 바뀌었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통한의 준우승. 다음 시즌은 어떻게 됐냐고? 2012-13시즌 맨유는 승점 89점으로 압도적 우승을 차지했다. 맨시티는 승점 78점에 그치며 2위로 떨어졌다. 퍼거슨 감독의 명연설이 만들어낸 마법. 그의 끝은 어디인가.
[최용재의 매일밤 12시]는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축구 팬들을 위해 준비한 잔잔한 칼럼입니다. 머리 아프고, 복잡하고, 진지한 내용은 없습니다. 가볍거나, 웃기거나, 감동적이거나, 때로는 정말 아무 의미 없는 잡담까지, 자기 전 편안하게 시간 때울 수 있는 축구 이야기입니다. 매일밤 12시에 찾아갑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 르네 뮬레스틴 코치, 맨체스터 시티 우승 장면, 세르히오 아구에로.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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