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간과한 것들 [한국의 창(窓)]
정부·여당의 단순하고 안일한 인식
돌봄노동의 가치만 악화시킬 수도
다중차별 격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여성들이 아이 맡길 곳이 없어서 일을 못 하는 것일까? 몇 해 전 노동시장 젠더 불평등을 들여다 볼 때의 퍼즐 한 조각이 떠오른다. 1990년대 중후반 5~6%대에 불과했던 보육시설 이용률은 2010년쯤 그 열 배에 가까운 60%대로 웬만한 EU회원국보다 높아졌다. 반면 30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그 15년여간 겨우 2~3%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수치의 조합은 지금 한국에서 아이 낳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보육시설 또는 인력의 '양적 부족'에 있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정부와 여당은 기어이 도입할 모양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면을 찾자면 '아이는 엄마가 도맡아야 한다'는 규범이 삐걱대는 시대 흐름을 읽기 시작했고, 정부가 나서서 '맞벌이'를 제도로 떠받치려는 행보가 뒤늦게 한국에도 도래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저비용 단기 외국인력을 대거 유입해 이 문제에 대응하자는 정부와 여당의 접근은 여러 측면에서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상황 인식이 지나치게 단순하다. 값싼 돌봄서비스가 확대되면 출산율이 높아지리라는 단순 산술은 양적 확대가 보육 수요 충족으로 이어지지 못한 그간의 경험, 부모 노릇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간과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이 여전한 한국의 일터, 이상적 노동자상을 '돌봄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남성'에 맞춘 조직 문화 속에서 노동자들은 일-생활 경계를 제대로 관리하기 어렵다.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유연화해 저출산 위기를 헤쳐가 보자는 문제의식은 주 60시간 이상 노동을 논쟁하는 한국에서 먼 이야기다. 이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양질'의 보육서비스다.
한편 급격한 양적 확대를 꾀하기 위해 민간 위탁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보육 서비스가 기관 간 질적 차이와 이용자 불신을 낳고 있다는 문제도 쉽게 치부되는 듯하다. 국공립 보육시설에 아이를 넣으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줄을 서고, 추첨에 울고 웃는 현상이 이 초저출산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다. 질을 확보하지 못한 시장실패를 시장 확대로 해결하기 어렵다. 한번 이해관계가 얽혀버린, 한참 가버린 시장화의 길을 되돌리기란 아예 없던 길을 처음 가는 것보다 몇 배나 복잡하고 어렵다. 그렇기에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 오히려 간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이 '질적 측면'에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단순히 외국 인력을 들여오는 해법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미 한참 평가절하된 돌봄 노동의 가치는 이 제도로 더 악화될 수 있다. 그동안 돌봄은 가족 내 무급 여성 노동으로 여겨졌다. 단순해 보이는 그 노동이 실제로는 복잡하고 표준화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인지적·사회적 숙련을 요구한다는 점은 거의 공론화되지 못했다. 일부 시장화되는 과정에서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저임 서비스 노동으로 분류됐다. 이 때문에 교육·훈련, 구인·구직, 근로 여건 등에서 다른 일자리들처럼 체계를 갖추지 못했고, 이 점이 다시 돌봄 서비스의 질을 낮은 수준에 머무르게 하는 원인이 됐다. 외국 인력 도입은 서비스 질을 복원하고 사회적 관리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까?
심지어 이 제도 논의의 시작은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최저임금 이하를 지급하자"는 주장이었다. 다행히 그런 시대착오적 주장은 철회되었지만, 그런 시각을 바닥에 깔고 저비용 돌봄서비스 확대를 목표하는 제도가 도입될 경우 부문 전체가 저임금 경쟁에 접어들 개연성이 크다. 서비스의 질적 하락과 격차를 초래하는 수순이다. 더불어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시민권, 인종, 젠더 간 교차적 불평등과 다중 차별이 사회문제로 격화되는 기폭제가 될지도 모른다.
정부는 부디 면밀한 분석에 근거한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고 예상되는 부작용과 문제에 꼼꼼히 대비하기 바란다. 섣부르게 도입한 제도는 문제 해결은커녕 국가의 위상만 해칠 수 있다.
권현지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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