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 ‘신상 공개’ 실효성 논란… “머그샷 공개” 여론 확산[인사이드&인사이트]
강력범죄 피의자들의 신상이 공개될 때마다 이런 논란이 반복되는 것은 현행법상 ‘머그샷(mug shot·범죄자 인상착의 기록 사진)’ 공개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찰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머그샷을 공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 피의자가 동의해야 공개 가능한 ‘머그샷’
경찰청에 따르면 2010년 4월 신상 공개 제도가 도입된 이후 2010년 초등학생 성폭행범 김수철을 시작으로 각종 범죄자들의 신상이 공개돼 왔다. 최근 공개된 이기영 정유정 조선 최원종 외에도 △2012년 토막살인범 오원춘 △2017년 ‘어금니 아빠’ 이영학 △2018년 강서구 PC방 살인범 김성수 △2019년 방화·살인범 안인득 △전남편 살인·사체손괴 유기범 고유정 △모텔 투숙객 살인·사체손괴 유기범 장대호 △지난해 신당역 역무원 살인범 전주환 △올해 ‘강남 납치’ 살해범 이경우 등이다. 이 가운데 머그샷이 공개된 사례는 2021년 교제했던 여성의 집을 찾아가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이 유일하다.
경찰이 머그샷을 공개하려면 근거 규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피의자 신상 공개 관련 내용을 적시하고 있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엔 머그샷 촬영과 공개에 관련한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얼굴 공개 여부에 대한 조항만 담겨 있을 뿐 ‘사진 촬영’이라고 명시된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19년 법무부가 내린 “현행법상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수는 있지만 피의자가 사진 촬영을 거부할 경우 촬영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이 사실상 유일한 규정으로 적용되고 있다. 경찰청 훈령인 ‘경찰 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역시 법무부 유권해석에 따라 수사 과정에서 확보했거나 피의자 동의를 얻어 촬영한 사진 또는 영상물만 공개토록 하고 있다.
피의자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거나 경찰이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고 피의자를 호송하는 과정에서 언론이 촬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피의자가 모자나 마스크, 안경 등을 사용하거나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릴 경우 제재할 수 없다. 법정 등 공개적인 장소에 나올 때 일명 ‘커튼 머리’로 얼굴을 가린 고유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찰 관계자는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도입한 절차가 국민의 ‘알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피의자 보호에 무게가 쏠리다 보니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일반 시민들의 법 감정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형식적 절차로 전락한 머그샷 촬영
머그샷 촬영 자체가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랜 기간 강력팀에서 활동한 한 형사는 “구속된 피의자에 대해선 머그샷 촬영이 원칙이라 이를 건너뛰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면서도 “피의자가 머그샷 공개를 동의하는 사례가 사실상 전무하다 보니 ‘일일이 모든 피의자를 촬영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가진 경찰들이 많다”고 했다.
● 해외는 아동도 머그샷 공개
일본도 범죄자의 신상을 폭넓게 공개하고 있다. 언론이 범죄 사건을 보도할 때 실명을 보도하는 관행 역시 오랜 기간 유지되고 있다. 중국도 강력범죄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 등의 경우 체포 즉시 얼굴을 공개하며, 영국도 범죄자의 신상 공개를 제한하는 법률이 따로 없다.
● 공전하는 국회 입법
현재 국회에도 신상 공개가 가능한 범죄 유형을 확대하고, 범죄자의 최신 사진을 공개하는 것을 허용하는 각종 법안이 발의돼 있다.
국회의안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피의자 신상 공개 시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인상착의를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긴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정강력범죄법)’ 개정안이 7건 발의됐다. 각 개정안에는 피의자 얼굴 공개가 결정된 시점으로부터 30일 이내의 모습을 촬영해 공개하도록 하거나, 필요한 경우 수사 과정에서 취득하거나 촬영한 사진·영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피의자가 직접 얼굴을 공개할 때도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다만 해당 법안들은 모두 현재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고, 인권단체의 반대가 커 언제 국회를 통과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 법원 측도 수사기관의 권한이 너무 과도해지고 재판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에는 권력에 대항하는 범죄가 많았기 때문에 피의자의 인권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분명히 피해자가 존재한다. 국가는 피해자 편에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나타내주기 위해서라도 해당 법안들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유근 사회부 기자 bi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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