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인 "군대에서 그 누구도 괴롭힌 적 없어" [인터뷰]
안준호 역에 큰 애정... "남성 팬도 많이 생겨"
다시 멜로물로 돌아가고픈 바람도
늘 그렇듯 단정한 수트 차림으로 정중하게 기자를 맞이한 정해인은 이전보다 살이 조금 빠져 있었다. 특유의 말갛고 생글거리는 그의 얼굴은 'D.P.' 속 군복을 입은 각 잡힌 모습이나 거친 액션신을 소화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멜로와 너무 멀어지고 있어 걱정"이라며 그는 웃었지만, 사실 'D.P.'는 현 시점에서 정해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생동감 있고 반짝이는 작품이다. '국민 연하남'으로 불리던 그에게 많은 남성 팬들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D.P.' 시즌2는 군무 이탈 체포조(D.P.) 안준호(정해인)와 한호열(구교환)이 여전히 변한 게 없는 현실과 부조리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정해인이 연기한 안준호는 시즌2에서 더욱 단단해진 활약을 펼친다. 되풀이되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지만, 변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성장하는 인물이다. 올곧은 성정을 지닌 그는 연달아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며 마음에 심한 요동을 겪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사력을 다해 달린다. 아직 어린 20대 초반의 군인 안준호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안겼다.
이하 정해인과의 일문일답.
-'D.P.' 시즌2가 공개 이후 1위를 달리고 있다. 축하한다. 한국적인 내용임에도 넷플릭스 글로벌 5위에 올랐다. 외국인이 생각하며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가 뭐라고 생각하나.
"우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우리 작품을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해외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첫 번째는 징병제가 있는 나라에선 공감을 더 하실 거고 두 번째는 군대가 익숙하지 않은 나라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클 거 같다. 군대라는 집단 자체가 어쩔 수 없이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성질을 지니고 있는데 그거는 사사건건 알려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호기심을 느낄 거 같다."
-촬영하며 군대에 세 번 다녀온 느낌이라고 했는데, 후유증이 있나.
"후유증이라기보다는 점점 멜로와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하하. 다시 멜로도 할 때가 된 거 같다. 시즌1, 2를 이어서 하다 보니까 나는 중간에 다른 작품들도 했지만 감독님은 3년간 이 작품만 했다. 그래서 감독님 입장에서는 시즌3 질문을 받으면 숨이 턱 막히는 거다. 다른 것도 해야 하는데 너무 갇히는 느낌이 들 수 있다. 그간 너무 애쓰신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약 시즌3 출연 제안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시즌3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나는 감사하다. 다시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 현장 자체가 따뜻하고 행복했다. 물론 힘들고 쥐어짜는 고통도 있었는데 배우 입장에선 불러주면 감사하고 달려가는 상황이다. 감독님 입장에서는 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50~200번 가까이 작품을 봤다고 하니까 엄청나게 많은 편집을 통해 작품이 만들어져서 감독님이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정해인의 군대에서의 기억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내 경험으로 말하면 2008년 군번이었다. 대학교 1학년 마치고 바로 군대를 가서 23살에 전역했다. 나는 2010년에 전역했는데 'D.P.'의 배경은 2014년쯤이다. 나의 삼촌이나 아버지 시대의 군대 이야기와는 또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가는 건 또 다르다. 내가 감히 말씀드리면 지금도 예전에도 똑같이 어렵고 낯설고 힘든 곳이다. 갇혀있고 낯선 곳에서 모르는 사람과 적응을 해야 하고 같이 살아야 하니까. 계속 보면 정도 들고 좋은 형, 동생도 된다. 나도 연락을 꾸준히 하고 있다."
-'D.P.'는 안준호의 성장담이기도 하고, 시즌2에서는 일병이 됐다.
"연기를 할 때 보편적인 군생활을 적용하면 안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나조차도 'D.P.'를 하면서 자세히 알게 됐다. 계급에 따른 변화도 있겠지만 더 큰 건 시즌1때 있었던 사건과 축적된 스트레스의 감정선이었다. 시즌2는 1년이 지나고 촬영했는데 시즌1에서의 감정을 고스란히 가져와야 했다. 첫 촬영 때 그런 것들을 많이 생각했다."
-실제 군 생활시 폭력이나 부조리를 경험하진 않았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08년 군번이라서 부조리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나도 혼나고 기합도 많이 받고 불합리한 일을 겪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녹색병영문화라는 게 생겨나는 추세였고 나는 이등병이나 일병 때 당하면서 '내가 고참이 되면 절대 안 해야지' 결심했던 기억이 있다. 군 생활을 할 때 누군가를 괴롭힌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동기들이 작품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나.
"군대 동기들이 실제로 연락이 많이 왔다. 우리 군 생활 때랑 다르다거나 어느 지점은 비슷하다는 얘기를 했다. 결국 그 얘기가 나온건 공감을 했다는 건데 그 공감이 좋은 공감일까? 아니다. 부정적인 거다. 다들 겪었고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안준호와 한호열의 케미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이 많다. 시즌1 버디물이 사라지면서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오는데.
"한호열과 안준호의 콤비가 덜 나오긴 했다. 그런데 시즌1 때의 큰 사건을 겪은 이들이 우왕좌왕하면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호열도 따지고 보면 20대 초반의 어린 친구일텐데 군대란 곳에 와서 큰 사건을 겪었다. 조석봉이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한번도 겪지 못한 모습일 거다. 충격적인 얘기인데 사건 이후에 어떻게 이야기가 이어질지에 대해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했다. 시즌1 엔딩에 보면 김루리가 총기를 난사하는데 그거에 대한 얘기를 안 할 수 없어서 얘기가 딥해진 거 같다. 시스템과 군대라는 구조에 대해 얘기할 수 밖에 없었다."
-기차 액션이 인상적이었는데 연기하면서는 어땠나.
"감독님도 나도 이 액션신은 보는 사람들이 힘들고 처절하게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멋지고 화려하고 싸움을 잘한다는 표면적인 것보다 주먹 하나를 내질러도 몸의 형태가 보이는 게 아니라 '왜 저렇게 할까' 하는 감정이 잘 보였으면 좋겠다는 게 감독님의 디렉션이었다. 편집된 걸 봤을 때 이해가 됐다. 열차를 그대로 세트장에 가져와서 안에서 연기하고 있으면 진짜 기차에 타고 있는 느낌이 났다. 공간이 협소해서 액션 연기를 할 때 애로사항이 있었다. 여러 테이크를 가면서 감정을 보여줘야 하니까 쉽지 않았다."
-혼자 너무 많은 상대와 싸워 현실성이 떨어지는 액션이라는 평도 있다.
"14대 1의 액션이다. 결과적으로는 졌다. 하하. 결국 한호열이 구해주는데 거기서 사실 안 싸우고 도망갈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달리는 기차 안이지 않나.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못 당한다. 다수에는 장사가 없기 때문에. 당시엔 도망갈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구교환과 손석구는 좀 다른 느낌의 배우들인데 호흡을 맞춰보니 어떻게 달랐나.
"구교환 같은 경우는 연기가 재치가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달까. 정말 집중하게 만든다. 대본을 외워서 말만 왔다갔다 하는 게 아니라 바라는 걸 듣고 눈을 잘 보고 할 수밖에 없게 하는 힘이 있다. 거기에 맞는 리액션을 하는 거다. 링 밖에서의 행동은 안 하고 링 위에서 변칙적인 연기를 할 때가 있는데 자극되고 재미가 있었다."
"손석구는 불고기 괴담에서 호흡했는데 (같이 연기하는) 분량이 적어서 너무 아쉽다. 더 뭔가 만들어내고 싶은데 분량 자체는 정해져 있지 않나. 서로 같이 연기하는 게 좋았다는 얘길 많이 했고 더 나아가서 다른 작품에서 만나면 재밌겠다는 얘길 했다."
-사건은 극적인데 절제된 연기를 해야 한다. 어려움은 없었나.
"안준호는 인물 자체의 성질이 발산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극의 관찰자 시점이다. 에너지를 크게 연기해 버리면 보는 사람이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앙상블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해주는 캐릭터가 있으니 조절을 해준 거다. 연기적으로 봤을 땐 준호란 인물은 안으로 먹는 스타일이고 스트레스가 누적된다. 나는 연기를 할 때 리액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 배역들이 편하게 나에게 연기를 하면 좋겠단 생각을 늘 했다. 온전히 몰입을 해서 내가 맡은 배역에 다가올 수 있게. 그런 부분들이 안준호 연기를 할 때 잘 부합이 된 것 같다."
-안준호의 전역이 1년 정도 남았는데 남은 군 생활이 순탄할 것이라 생각하나.
"버스정류장에서의 대사가 있다. '전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무슨 소립니까' 하는 대사다. 앞으로 준호가 맞닥뜨리고 나아갈 길이 있을 거고 순탄하지 않을 거란 걸 모두가 안다. 불합리하고 부조리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봐야 준호가 20대 초반인데 (그로서는) 모든 걸 표현한 거 같다."
-'D.P.'가 세상에 나온 뒤 조금이나마 사회적 변화를 체감하는 부분이 있나.
"아직은 내가 체감하고 있진 못하다. 그래도 이걸 많은 분들이 보셨으니까 군대에서도 요즘 넷플릭스를 볼 수 있단 얘기를 들었다. 지금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장병 여러분도 보셨을 거다. 휴가 나와서 본 분들도 있을 거고. 뭐가 됐든 우리는 이런 작품을 보여주고 질문을 던진 것뿐이다. 각자 위치에서 느끼는 바가 있을 거라 믿는다."
-정해인에게 'D.P.'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내가 많은 작품을 하진 않았지만 변곡점 같은 작품이다. '내가 이런 것도 표현이 되는구나. 할 수 있구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넣어준 작품임과 동시에 남성 팬들이 많이 생겼다. 군대라는 소재를 다루고, 남성들은 멜로를 잘 안 보는 분들이 있지 않나. 'D.P.'는 군대 이야기라 20대 어려 보이는 남성 팬들이 '형 팬이에요. 잘 봤어요' 하면 기분이 좋더라. 작품 잘 봤다는 게 제일 큰 칭찬이다. 남자 팬들이 팬미팅에도 꽤 와서 놀랐다."
-군대에 가 있거나 앞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사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조언이 안될 거란 걸 알고 있다. 안 괜찮은 사람에게 '괜찮다' 말하는 느낌이다. 부디 다치지 말고 무사히 전역하면 좋겠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돌아오길 바란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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