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20% “전쟁의 역사, 다음 세대에 전할 생각 없다”
전문가들 “전쟁 재발 안 되려면 젊은 세대 교육 바뀌어야”
태평양전쟁 경험담을 기성세대로부터 들은 일본인 절반은 이를 다른 이에게 전하지 않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5명 중 1명은 전쟁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 없다고 응답했다.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인 ‘야후 저팬’은 지난 6월부터 누리꾼 4000명을 대상으로 전쟁 기억의 계승에 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7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심층적인 분석을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0%는 태평양전쟁을 경험한 이들에게 직접 관련 체험담을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 중 48%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전쟁 기억 계승이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부분이다.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전쟁의 역사와 기억에 대해 다음 세대에게 전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77%가 그렇다는 답변을 내놨다. 반면 ‘전승해야겠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 없다’는 답도 20%에 달했다. 이들은 “경험하지 못했기에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 “내겐 지식도 전파력도 없기에 모르겠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 같은 인식 변화는 전쟁 경험자가 많았던 과거의 분위기와 달라진 것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가해국이었으나, 60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을 만큼 군국주의로 인한 피해가 컸다. 이에 전쟁의 기억과 교훈을 후세에 전하자는 목소리가 이어져왔다.
하지만 전쟁을 겪은 세대가 고령화로 줄어들고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며 상황은 바뀌고 있다. 일본 총인구에서 전후세대의 비율은 2021년 기준 86.2%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내 전문가들은 전쟁의 기억을 전하는 작업이 단절되지 않으려면 젊은 세대에 대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대사 전문가인 이치노세 도시야 사이타마대 교수는 “(현재 일본에서는) 몇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전하고 있지만,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는 충분히 전하지 않고 있다”며 “왜 전쟁이 시작됐으며,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을 겪은 인구가 점차 줄어들자 일각에선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이들의 기억을 후세에 전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NHK히로시마가 ‘원폭 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과 협업, 제작한 ‘피폭 증언 장치’가 대표적이다. 이 기기는 고령 피폭자를 화면에 띄운 뒤, 방문자가 질문을 하면 이에 맞는 답변을 AI가 선별해 피폭자가 말하는 형식이다. 피폭자를 대상으로 촬영한 장시간 인터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앞서 서구권에서도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전하기 위해 비슷한 시도를 한 바 있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홀로코스트 연구를 목적으로 설립한 ‘쇼아(Shoah)’ 재단이 2014년 공개한 장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60여명과 대화하는 구조로 돼 있으며, 1000여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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