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정체성은 교통방송이 아닌 지역 공영방송입니다"
권력기관을 동원해 압박하던 방식이 성에 차지 않았던지, 윤석열 정부는 돈줄을 죄어 공영방송을 길들이려 하고 있다. 기자협회보는 KBS·EBS·TBS·YTN·MBC 등 5개 방송사 노조위원장 연속 기고를 통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위협하는 권력의 움직임과 그 파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소속 의원 76명이 전원 발의한 TBS 폐지 조례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조례안이 적용되는 2024년 1월1일이면 서울시는 TBS에 예산을 지원할 수 없게 됩니다. 현재 TBS 출연금은 지난 2년 연속 삭감되어 올해는 인건비 정도만 겨우 받은 상태입니다. 지난 6월 추가예산도 부결되면서 32년간 시민의 방송으로 기능해온 TBS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TBS가 이런 상황에 놓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통방송은 시대적 소명을 다했고 그동안 큰 역할을 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계속 서울시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 것이 아니라 독자 생존의 길을 찾는 것이 타당하다. 이것이 시민들의 요구고 명령이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을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 TBS가 더 이상 교통방송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TBS는 지금으로부터 3년 6개월 전인 2020년 2월17일 ‘서울시 사업소’에서 ‘서울특별시 미디어 재단 TBS’로 전환했습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다’는 서울시의 대원칙 아래 KBS, MBC, EBS와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에 기초한 ‘지역 공영방송’으로 새로운 출발을 한 것입니다.
재단으로 독립한 TBS는 교통정보 외에도 기상, 재난, 시사, 지역 이슈, 시민참여, 문화예술, 거주 외국인 대상 생활 정보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시 서울시는 향후 5년간 400억원 규모의 재정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지역 공영방송의 책무를 충실히 하기 위해 안정적인 재원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TBS는 이러한 재원을 바탕으로 시민 협력 전담 조직을 통해 시민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다양한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TBS는 서울·수도권 지역의 재난방송사로서 폭설·폭우가 내릴 때마다 재난·재해 특집방송을 편성했고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에는 를 816일 동안 쉬지 않고 방송했습니다. 국내 최초 기후 위기 전문 프로그램 <신박한 벙커>는 시민들에게 환경의 중요성과 각종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왔습니다. TBS eFM에서는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 다양한 언어로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에 필요한 정보와 정책을 소개했습니다. 이렇듯 TBS는 지역 공영방송으로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해왔지만 정치권은 ‘교통방송의 기능이 다했다’는 말로 TBS의 공적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TBS는 현재로는 독자 생존이 불가능한 구조라는 것입니다. 먼저 상업광고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재단 독립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2년 유예를 조건으로 상업광고를 허용하려 했지만, 경쟁 방송사들의 강력한 반대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캠페인 광고 수익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하지만 외부 진행자와 출연자도 쓸 돈이 없는 상태에서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없고 이는 청취율 하락과 광고 수익 악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수익 사업을 하기에도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KBS, EBS, 아리랑TV가 받는 방송발전기금 대상에서 제외되는가 하면 법적인 지위도 지역방송이 아닌 까닭에 정부 지원금도 받을 수 없습니다. 재정 독립을 이루려면 적어도 이런 제약을 풀어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독자 생존 주장은 민영화를 위한 군불 때기일 뿐입니다.
조례의 신설과 개정, 폐지는 시의회의 권한이지만 사회적으로 합의된 조례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시의회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특정 프로그램의 편향성 문제와 그에 대한 단죄라는 정치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어렵게 탄생한 지역 공영방송을 올바로 세우는 것으로 다시 논의가 시작되길 바랍니다. 서울시 출연기관이자 수도권 유일의 공영방송이 한순간에 문을 닫느냐 아니면 더 강력해진 공적 책무를 가지고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느냐, 그 선택의 유일한 기준은 오로지 시민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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