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방송장악, 문재인 정부가 더 심했다?

노지민 기자 2023. 8. 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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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문재인 정부 방송장악"...'내로남불' 프레임 따져보니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과거 '언론장악'에 관여했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여권 일각에서 '문재인 정부야말로 방송장악을 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방통위원장 후보 결격사유로 지적된 문제를 소위 '내로남불' 논리로 맞받는 구도다.

국민의힘은 이달 들어 '민주당 방송장악' 키워드를 앞세우고 있다. 지난 1일 박대출 정책위의장이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에 대한 야권 비판을 반박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방송장악 문건 만들고 KBS 고대영 전 사장 몰아내고 MBC 김장겸 전 사장 내쫓고 방송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방송농단을 자행한 장본인”이라고 주장했고, 장동혁 원내대변인, 윤두현 의원 등이 연이어 같은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8일 박 정책위의장이 언급했던 두 명의 전직 사장들이 소위 '더불어민주당 방송장악 문건' 작성 관계자들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에 국민의힘 정책위 산하 미디어정책조정특별위원회는 “민주당의 방송장악 사건은 정권과 국가기관, 민노총 언론노조 등 방송 현업단체뿐만 아니라 방송학자들까지 공모해 이뤄진 대규모 공영방송 학살극”이라며 “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2023년 8월8일 미디어연대 관계자들이 문재인 정권 당시

여권 등이 주장하는 '민주당 방송장악 문건'은 2017년 조선일보 보도로 공개됐던 민주당 워크숍 문건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주요과제 및 쟁점을 다룬 이 문건은 '언론적폐 청산 집중' 관련해 △반민주·반국민적인 언론적폐 상징인 MBC, KBS 사장 및 이사장·이사에 대한 지속적이고 구체적 대응 필요 △언론적폐 청산을 당 적폐청산위원회 활동 최우선 과제로 추진 △방송사 구성원 및 시민단체, 학계 중심의 사장 퇴진운동 전개 △방통위 차원의 대책 강구 등 검토의견이 담겼다. 사장 퇴진운동 대목엔 정치권이 나설 경우 '언론탄압' 역공 우려가 있다며 “현재 진행중인 방송사 구성원 중심의 사장 이사장 퇴진 운동 전개”라 써 있다. 당시 민주당은 해당 문건은 실무자가 논의용으로 만든 문건이지만 워크숍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당 지도부에 보고나 전달도 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문건을 고소한 이들과 여권은 법원이 '방송장악 문건 실체'를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일부 사실이지만 지워선 안 되는 맥락이 있다. 지난 6월 대법원이 확정한 서울고법의 고대영 전 KBS 사장 해임무효 판결문은 이 문건을 “이사들 구성의 변화, 특히 야당 성향이었던 강규형 이사를 해임한 것은 참가인 공사의 여권 성향의 이사들이 원고의 해임을 제청하기 위하여 그 이사회 구성을 변경시킬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적법하지 않은 이사회 구성 변경은) 방송법에 반할 뿐 아니라 이사회 제청 권한을 우회적으로 잠탈”했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윤석열 대통령이 봐야할 고대영 전 KBS사장 해임처분 취소소송 판결]

이는 정권이 교체되면 공영방송 야권 이사 일부를 해임하고 그 자리에 여권 보궐이사를 임명, 과반이 된 여권 이사들이 다수결로 사장 교체나 임명 제청안을 의결하도록 만든 관행의 문제를 지적한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가 방통위를 만들어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내는 데 활용했던 구조가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도 반복됐다. 이런 공영방송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하겠다던 문재인 정부 공약이 이행되지 않은 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다.

여권의 문제는 여권이 좌우하는 관행적 이사 교체를 '방송장악'이라 비판하면서 현재 진행형인 '방송장악' 시도를 덮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야권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 처리를 막고자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고, 방통위가 지난달부터 KBS, 방송문화진흥회(MBC대주주), EBS 등의 야권 이사 해임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 문건을 고소한 이들이 활동하는 보수성향 시민단체, 여권은 지금의 공영방송 경영진을 교체해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다.

고대영 전 사장, 김장겸 전 사장 등이 해임된 시기는 언론사 내부에서 공영방송 경영진 교체 요구가 터져나온 때였다. 2017년 KBS에서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뿐만 아니라 KBS노동조합까지 양대 노조가 '공영방송 회복을 위한 고대영 사장 퇴진'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나섰다. KBS노조는 고 전 사장이 조건부 퇴진의사를 밝힌 뒤 파업을 종료했고, KBS본부는 고 전 사장 해임이 결정되기까지 142일간 파업을 했다. 고 전 사장 해임을 무효로 판단한 법원도 파업사태 초래 등의 책임을 일정 부분 인정했다. 2017년 언론노조 MBC본부 파업에 대해선 법원이 “주된 목적은 방송의 공정성 보장에 있고 방송사 근로자의 근로환경 내지 근로조건과도 관련”돼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민주당 문건이 보도됐을 당시 '공개된 논의를 모아둔 수준'으로 정리된 이유들이다.

[관련기사: 국정원 직원도 언론개입 문건 요청 주체로 MB 청와대 홍보수석실 지목]

▲2009년 12월24일 언론장악 관련 문건을 작성한 당시 국정원 국익전략실 소속 정보분석관 A씨는 홍보수석 요청으로 해당 자료를 작성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의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 수사자료 갈무리.

반면 이동관 특보가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 재직하던 시기 작성된 문건들은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 정치권력과 사정기관이 주도적으로 정부 비판적 보도를 문제 삼고, 언론인을 비롯한 방송인들의 성향에 따라 '퇴출 대상'을 분류한 내용이다. 2009년 12월 '홍보수석 요청자료'로 국정원이 만든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은 “좌편향 PD와 진행자들이 라디오 시사프로를 통해 4대강, 세종시 등 국정현안에 대한 악의적 왜곡보도를 일삼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며 “경영진 주의 환기, 좌편향 진행자 퇴출, 고정출연자 교체 권고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2010년 3월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6월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방안' 등은 “인사대상자 색출” “노조 무력화 및 조직 개편” 등 인사개입 정황까지 담고 있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도 남아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혐의를 수사하던 검찰에 국정원 국익전략실 여론팀 직원은 라디오 시사프로 편파방송 실태 및 고려사항 문건에 대해 “청와대에서 보고서를 요청한 이유는 당시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성향의 KBS 내부 인사를 솎아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MBC 정상화 문건을 두고는 “홍보수석 이동관은 이 문건을 한 번 보고 버리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MBC에 전달하여 정권의 구미에 맞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친정부적인 사람을 출연시키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은 언론계를 넘어 문화 예술계 퇴출 대상을 선정하고 관련 이행 실태를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 등 전방위적인 탄압 정황을 남겼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8일 “민주당 문건이라는 것은 당시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권력이 나서서 한다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나 노동조합이 자발적으로 한다는 내용 아닌가. (당시 사장 교체 요구는) 안에서 터져나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고대영 사장 해임 과정의 절차적 문제는 임의로 이사회 구성을 바꿔서 해임하면 안 된다는 것인데 이명박 때부터 반복돼온 공영방송의 아픈 역사”라며 “그런 방식을 정치권이 더 이상 동원하면 안 된다라는 법적 판결을 확정한 판례가 나왔음에도 국민의힘 정권이 같은 방식을 똑같이 쓰고 있는 것은 법원 판결취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관 특보와 관련된 문건은 “국가권력이 나서서 언론보도에 구체적인 내용, 진행자의 성향 등을 갖고 배제하고, 순치시키고, 언론사 인사와 내부 프로그램에 개입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 위원장은 “이동관이 처벌받지 않은 공소시효 문제도 있지만 그가 깔아놓은 언론통제 기제와 방송장악 기제를 물려받아서 쓴 것이 박근혜 청와대이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으로 김기춘 비서실장이 단죄를 받았다. 공소시효가 남았다면 이동관도 감옥에 갔을 것이다. 명백하게 법질서와 헌법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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