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역사 美 운송업체 파산신청... “노조 괴롭힘이 폐업으로 몰아가”

조성호 기자 2023. 8. 8. 21: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99년 역사의 미국 트럭 운송업체가 늘어난 빚과 노사갈등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파산 절차를 밟게 됐다. 미국 전체 물류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트럭운송업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가 무너진 것이다. 경영진은 파산의 원인을 ‘구조조정을 거부하는 노조’로 돌렸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이 회사에 구제금융 7억3000만달러(약 9300억원)를 지원해준 정부는 빚을 못 받을 위기에 놓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미 테네시주(州)에 본사를 둔 트럭 운송업체 옐로(Yellow)는 7일(현지 시각) 보도자료를 내고 델라웨어주 파산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11)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파산법상 챕터11은 국내의 회생절차에 해당한다. 법정관리를 통해 기업을 다시 살려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과포화 수준이 된 시장 상황상 옐로의 회생이 어렵다고 본다. WSJ는 “1980년대 이후 트럭 운송업체의 회생 신청은 항상 청산절차로 끝났다”고 전했다.

옐로는 미국 전역에 화물 트럭 약 1만2000대와 화물터미널 수십곳을 소유한 대형 물류 회사다. 전체 트럭 물류 시장에서 5위 규모이며, 소형 트럭 물류로 한정하면 3위에 해당한다. 월마트나 홈디포 등 대형 유통업체를 비롯해 다양한 중소 사업자를 상대로 화물 운송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옐로가 파산 절차에 돌입한 것은 내년까지 돌아오는 13억달러(약 1조7000억원)의 빚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정부에 갚아야 하는 것이 7억달러, 기타 10만명에 이르는 채권자에게 갚아야 하는 돈이 5억달러 이상이다.

7일(현지 시각) 파산보호를 신청한 옐로의 한 트럭 터미널에 트럭들이 세워져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옐로 경영진 “노조가 회사 폐업으로 몰아넣어”

회사는 파산의 주원인을 노조로 꼽았다. 미국 최대 노조로 꼽히는 물류 산별노조 팀스터(Teamsters)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회사의 구조조정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옐로의 노동자 3만명 중 2만2000명이 팀스터에 소속돼 있다. 대런 호킨스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을 내고 “회사는 경영할 권리가 있지만 팀스터의 지도부는 그들과 함께 일하려는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업 계획을 중단시켜 회사를 폐업으로 몰아넣었다”며 “우리(사측)는 노조의 비타협성, 괴롭힘, 고의적이고 파괴적인 전술에 직면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갈등이 폭발한 것은 올해 들어 회사가 ‘원 옐로’라는 이름의 구조조정 정책을 도입하면서부터다. 회사는 중복인력을 줄이려고 했고 노조는 오히려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결국 회사는 노조의 반대로 1억3700만달러(약 1800억원)의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노조는 파업을 예고했다.

양측의 갈등이 밖으로 드러나면서 고객 수는 급격히 줄었다. 언제 파업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것이다. 미국의 운송·물류 전문 자문회사 SJ컨설팅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평균 4만9000건의 배송을 처리했으나 최근 일 배송 건수는 1만건 수준으로 감소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일부 분석가들은 옐로의 비용 상승이 노조에 가입한 인력의 임금 요구 때문이라고 분석한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 물류 업계에서 트럭기사들의 임금은 빠르게 오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배송 수요는 늘어나는데 일하려는 트럭기사는 오히려 줄었다. NYT는 미 노동통계국 자료를 인용해 트럭 기사의 올해 연봉이 2019년 대비 25% 올라 6만7000달러(약 8820만원)에 육박한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2일(현지 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의 노조 회관에서 팀스터(Teamsters) 노조원들이 물류회사 UPS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미국 내 최대 노조이자 물류관련 산별 노조인 팀스터는 미국 최대 물류업체인 UPS를 상대로 파업을 예고했고, 결국 지난달 31일 회사는 노조측 요구를 받아들였다./EPA 연합뉴스

◇노조 “경영 부실 노조에 돌린 것”

다만 노조 측은 옐로의 파산이 경영진의 부실경영 탓이라는 입장이다. 팀스터 총회장인 션 오브라이언은 “회사의 무능력을 일하는 직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운임요율 인상 등 시장 상황에 맞춘 결정을 해야 할 시기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경쟁사인 아크베스트는 배송 건당 529달러로 운임을 올렸지만 옐로는 339달러에 머물렀다.

무리한 인수합병 역시 경영진의 실책으로 꼽힌다. 옐로는 2003년 소형트럭화물 회사 로드웨이를 약 10억달러(약 1조2760억원)에 인수했고, 2005년엔 또 다른 경쟁 업체인 USF를 13억7000만 달러(약 1조7481억원)에 인수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브랜드의 운영이 시너지를 내기는커녕 소비자 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로 인한 2014년과 2020년의 파산위기도 노조의 임금 인하 등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9300억 정부 빚 못 돌려받나

옐로의 파산이 불러온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빌려준 돈 7억3000만달러를 못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WSJ는 “일부 의원과 분석가들은 납세자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옐로는 2020년 여름 코로나 팬데믹의 정점이던 시기 일감마저 떨어지자 구제금융을 받았다. 의회가 그 해에 통과시킨 2조2000억달러(약 2900조원)의 팬데믹 지원 예산이 재원이었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옐로에 대한 구제금융을 결정했다. 당시 옐로가 군사 기지에 물품을 배송하기 때문에 옐로의 사업이 국가 안보에 중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렇지 않아도 파산 위기를 수차례 겪은 옐로에 부실 대출을 해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옐로가 부채를 모두 갚지 못하면 대출 대가로 정부가 받은 회사 지분 30%도 휴짓조각이 된다. 유일한 희망은 회사의 트럭과 터미널이다. 이를 팔아 대출 손실을 충당하는 것이다. WSJ는 “옐로의 수십개 트럭 터미널 중 다수는 다른 트럭 운송회사가 원할 수 있는 인구 중심지와 가까운 위치에 있다”고 전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