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한국의 과학기술 혁신 정책, 이대로 좋은가
민간 및 공공 연구·개발비 투자 선도 국가.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불균형의 사회. 이를 진단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혁신 정책에 관한 OECD 리뷰 코리아 2023’이 지난달 출간됐다. 올해는 대한민국 ‘제5차 과학기술 기본계획(2023~2027)’이 시작하는 해로, 이 검토 보고서는 한국의 과학기술혁신(STI) 정책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평가자들은 먼저 정부가 그리는 STI 정책의 비전이 부처 간 ‘따로국밥’임을 꼬집는다. 일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채택한 2045년 과학기술 미래전략이 기획재정부의 중장기 경제사회 정책 로드맵과 엇박자임을 지적한다. 정부 부처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수레바퀴를 함께 굴리는 정책 수립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책자는 한국이 반도체와 정보통신(ICT) 등 일부 분야에서는 뛰어나지만, 인공지능(AI)·생명공학은 추격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고, 여전히 중소기업과 재벌, 제조업과 서비스업, 도시와 농촌 간에 불평등이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노동자의 83% 이상이 일하는 중소기업은 신기술 도입의 어려움으로, 생산성은 대기업 전체의 26%에 불과하다. 연구·개발(R&D) 조직의 64.5%, 국가 R&D 투자의 69.8%가 수도권에 집중된 현실은 지역 불평등의 현주소다. 정부 소속기관의 지방 이전을 서둘러야 할 이유다.
고령화하는 인구, 제한적인 재생 에너지 사용과 막대한 양의 탄소 배출, 두드러진 성 불평등을 포함한 취약성과도 꾸준히 씨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은 석유화학과 철강 같은 탄소 집약 제조업 비중이 현저히 높고, 석탄 화력발전소 등 화석연료 의존 발전량이 많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59%(2020년)로, OECD 평균인 65%(스웨덴 80.3%, 독일 75.8%)에 한참 떨어진다.
보고서는 STI 시스템이 탄소제로 같은 특정 정책에 대해 범정부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재생 에너지원에 대한 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공공 조달을 통한 재생 에너지원에 대한 수요 강화 및 탄소 배출을 낮추기 위한 높은 탄소 가격 설정 등을 제안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원자력에 중점을 둔 100% 무탄소에너지(CF 100)는 세계적 흐름인 100% 재생에너지(RE 100) 정책과는 동떨어진 ‘나 홀로’ 정책이며, 2030년까지 재생 에너지 비중을 발전량의 30.2%에서 21.6%로 낮춘 것은 심히 걱정할 만한 일이다.
보고서는 STI 시스템이 고부가가치 서비스 분야를 강화하고,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지원을 강화할 것을 강조한다. 이는 주요 선진국들이 기술료나 라이선스 비용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출에 치중하는 반면, 한국은 여행·운송·건설과 같은 낮은 부가가치 서비스에 치중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중소기업 지원 강화를 위해 중소기업이 학계나 정부 연구소의 장비를 저가로 이용할 수 있는 할인쿠폰 사용 확대 등의 제안은 매우 유용해 보인다. 스타트업의 원활한 금융지원의 필요성은 물론이다.
보고서의 다음은 지식 생산 강화를 위해 대학과 정부 연구기관, 기업, 연구·개발 정책의 집행과 평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대학의 연구는 자율성 확대와 장기 연구비 지원이 핵심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대해서는 기관 자체적으로 설정한 질적·양적 목표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 또한 전반적으로 국가 전략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기업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 및 학계 간 이동성 체계를 개발해 일정 기간 교차 근무가 가능하게 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연구 평가와 관련해서, 학술지 인용지수 지표가 연구자의 임용, 승진, 연구비 수여 결정을 위한 지표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2012년의 ‘샌프란시스코 선언’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위험도가 높은 모험·혁신 연구는 쉽게 수행되지 않으리라고 전망했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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