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칼럼] 이동관이 ‘공정방송’ 외치는 나라
국제부장으로 일할 때이니 2009년쯤이다. 한 후배가 “국가정보원에 다니는 친구와 저녁을 했는데, 그로부터 경악할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 직원은 술에 취하자 “우리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 너네 신문에 광고하는 기업을 찾아다니면서 광고 주지 말라고 압력을 넣고 있어.” 양심에 찔려 견딜 수 없다며 엉엉 울더라는 것이다. 그 고백이 아니라도 당시 우리 회사는 국정원과 그 뒷배인 이명박 청와대의 소행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기업 관계자들이 사석에서 줄줄이 실토한 것이다. 그 정점에 당시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으로 있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그의 행적은 당시 일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놀라운 것은 이 후보자의 태도이다. 방통위원장 지명을 받은 직후 그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는 가짜뉴스와의 전쟁, 공정한 미디어 생태계 복원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과거 이력에 비판이 쏟아지자 “방송은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돼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자 그는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과거 선전·선동을 능수능란하게 하던 공산당의 신문과 방송을 우리가 언론이라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한 뒤 기자들이 ‘공산당 기관지 같은 언론이 있다는 거냐’고 묻자, “이제 국민들이 판단하시고 본인들이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다시 방송을 손보겠다는 뜻이다. 경악할 일은 과거 행적에 대한 전면 부인이다. 그는 MB 정부 시절 KBS·MBC·YTN 등에서 언론인들을 대량 해고한 것에 대해 “그건 그 회사 내에서 벌어진 일이다. 내가 그들을 자르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이 국정원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청와대 홍보수석실 지시로 방송 개입 문건을 작성한 것이 밝혀졌다. 2008년 12월 청와대 대변인실 문서에서는 4대강 사업과 이명박 대통령 등에 대한 MBC 보도를 비판하는 내용이 확인됐다. 이 후보자는 모두 부인한다. 그렇다면 당시 국정원 직원들이 거짓 진술을 하고, 당시 자신 밑에서 일한 청와대 직원들이 유령 문건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국정원 개입 수사를 지휘한 사람이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인데 그가 거짓 수사를 명령했다는 말인가.
MB 정부의 방송인 해고와 탄압은 이전에는 없던 대학살이었다. 비판적인 방송 기자들은 모조리 마이크를 빼앗기고, 심지어 영업직에 발령받았다. 후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을 때 보수 성향 기자들이 한직으로 내몰린 것은 그 반발이었다. 그런 보복에 동조하지 않지만, 이동관에서 시작된 비극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베 신조 정부가 ‘여성이 빛나는 일본’ 정책을 편다고 하자, “아베 따위가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고 힐난했다. 하루키는 “특별히 빛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여성들이 평범하게, 공평하게 일하는 사회가 되면 된다”고 말했다. 언론인 80%가 이 후보자 임명을 반대했다. 그들은 말한다. “이동관 따위가 하는 공정방송 강의를 듣고 싶지 않다”고. 공정방송 구현은 할 만한 사람이 해야 한다.
다음주 이동관 청문회가 열리지만 결말은 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할 것이다. 나중에 소송에서 뒤집어질 값에 내년 총선에서 이기면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 후보자는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버티기와 교묘한 법 기술로 위기를 넘기려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이 중앙지검장 때는 그를 기소하는 게 실익이 적다고 해서 불기소해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자격 없는 사람을 앞세워 공정방송을 구현하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자 언어도단이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결국 윤 대통령에게 독이 될 것이다.
방송계에서는 이미 시나리오가 돌아다닌다. 다음주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몰아낸 뒤 9월에 MBC 새 사장을 뽑고, 추석 전까지는 지방 MBC 사장까지 전부 교체한다는 것이다. KBS 이사장 몰아내기도 이미 시작됐고, KBS 사장도 겨누고 있다. 방송사들은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방통위의 폭주를 저지할 것이다.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언론의 기본 정신은 물론 여론도 깡그리 무시한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제도적으로 막을 마지막 방법이다. 법원이 엄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거기에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걸려 있다.
이중근 논설고문 harub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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