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통일부 흔들면 미래도 잃는다
최근 통일부의 조직과 역할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남북 간에 대화와 교류·협력을 기대할 수 없으니 조직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거나 해체 수준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참으로 우려스럽다. 헌법 4조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돼 있다. 이에 기반해 정부조직법에서 통일부가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 업무를 관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은 통일정책 수립과 추진은 헌법의 요구사항이란 점이다. 통일정책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결부돼 있고, 지난 54년간 통일부가 담당해왔다. 통일정책은 건별 결과를 중시하는 일반 정책과 달리 그 자체가 민족사의 미래를 결정짓는 과정의 축적이다. 주변 정세와 북한 움직임을 정확히 읽고 예측해야 할 뿐만 아니라 북한을 변화로 이끌기 위한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혹자는 통일부가 조직 이익을 위해 북한 체제의 연명을 강화시켜 왔다며 통일부 직원들이 반통일세력이라고 허튼소리를 하고 있다. 그 밑바닥에는 북한과 결별하고 2개 국가로 살고 싶다는 것과 북한이 빨리 붕괴되면 좋겠다는 두 가지 의식이 깔려 있다. 전자는 ‘통일 포기론’이고 후자는 근거 없는 ‘통일 낙관론’인데, 통일을 명분과 깃발로서만 이해하고 있다. 통일 노력을 굳이 할 이유가 없다, 즉 통일정책이 필요 없다는 것을 전제함으로써 헌법에 도전하고 있다. 통일을 회피하거나 실현 가능성을 외면하고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쪽이 반통일세력이 아닐까?
둘째, 통일을 지향하려면 확고한 의지와 역사에 대한 통찰력을 지녀야 한다. 80년 가까운 분단 세월이 흐르면서 남북은 동질성이 훼손되었다. 그동안 모든 정부가 지지해온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을 중시해온 이유이다. 국민들은 통일 한반도의 비전 실현을 위해 ‘통일의 집’의 설계·시공 과업을 통일부에 맡겼다. 이를 담보하는 철근 기둥은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이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북한과 ‘헤어질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남북이 상호 인정하며 특수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대화와 교류·협력이라는 철근을 빼먹자고 하면 설계를 파탄 내자는 것과 다름없다.
관련 기관들도 조직 이기주의에 숨어 공기(工期)를 허비하지 말고 통일부에 자재만 잘 공급해주면 된다. 국정원은 정보, 외교부는 국제협력, 국방부는 빈틈없는 전쟁 억지력으로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성업에 기여하는 길일 것이다.
셋째, 통일은 우리의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과제다. 우리가 경제개발과 민주화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지만, 분단의 무거운 짐에 억눌려 국민적 활력이 임계치에 도달해 있다. 남북 대결·긴장으로 인한 자원 배분 왜곡은 물론, 자유와 번영을 갉아먹는 여러 문제점은 분단과 상당 부분 연결돼 있다. 세계질서 전환기에 중추 국가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한반도 질서를 묶어둔 정전상태를 마감하는 현상변경이 따라야만 한다. 북한의 무대응을 핑계 삼아 남북관계의 방관자가 된다면 현상유지를 바라는 주변국의 원심력이 커지고 우리가 주도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미래를 위해 통일을 국민적 에너지를 모으는 새로운 동력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 대화·교류·협력 추진은 북한에 대한 굴종의 표지가 아니라 담대하고 장기적인 전략을 펼쳐나가는 데 필수 요소다. 북한을 냉전의 추억 속에 가두면 북한의 폭정은 지속되고 우리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서로가 공존의 신뢰 속에 있어야 통일의 시간표가 작동한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맞대결로 가는 가운데 서로가 ‘힘에 의한 평화’를 고집하면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금이라도 통일부가 평화와 통일을 위해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통일문제에 정치를 개입시키려는 시도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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