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의 신간] 이 세상에 당연한 차별은 없다
차별받는 감정」
사회학자가 본 차별 사회
차별받는 이들의 감정
뭔가 배제된다는 느낌, 차별받고 있단 생각, 불평등에 대한 반감…. 이런 부정적 감정들은 스스로를 좌절과 무기력으로 빠져들게 한다. 우려스러운 건 이들 대부분이 감정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려서 변화를 체념하거나, 불평등한 현실에 적응하거나, 혹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혐오하는 방식으로 분출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부정적 감정들이 과연 진일보한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은 차별을 당연시하고 영속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차별받는 감정을 재조명한다. 이 책은 '구조'와 '감정'을 한 쌍으로 삼아 "불평등한 구조가 가령 자기혐오나 죽고 싶다는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니, 구조를 파헤치며 감정을 살필 것"을 제안한다.
아울러 흔히 불평등 사회의 이상적 대안이라며 찬반을 낳는 이슈들(주 4일제, 기본소득 등)을 단순히 이념적 차원이 아닌 가장 실용적이고도 현실적인 차원에서 분석해 제시한다.
사회학자로서 노동자, 빈부격차 문제를 연구해 온 저자는 오랜 시간 현장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차별과 차별받는 이들의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저자는 "차별을 극복하는 힘은 차별이 차별하는 이나 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국가, 그리고 신념 체계가 복합적으로 작동해 발생한 구조의 문제임을 인식하는 데서 생긴다"며, 몇몇 차별 행위를 바꾸는 데서 그치지 말고 행위가 이뤄지는 판 자체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사회의 거시 구조 자체가 인간의 정서적 역량의 산물이므로, 감정을 통해 차별을 생산·재생산하는 거시 구조의 전면적 변화를 꾀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기 위해서 "차별을 제어하는 제도를 논의할 땐 차별받는 사람들의 '감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먼저 밟아야 한다"며, 그래야만 수용성과 실효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주요 사회학적 이론과 담론뿐만 아니라 여러 문학 작품과 사례들을 활용해 개개인이 겪는 차별을 서사화한다. 유급 노동자와 무급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단시간 노동자와 장시간 노동자, 대학생과 청소노동자, 유리천장에 다가간 여성과 저임금에 머무는 여성, 직장 여성과 그 여성의 자녀를 돌보는 돌보미 여성, 자신을 쓸모없는 노인이라 여겨 자살을 고려하는 나이 든 사람의 마음을 다룬다. 그리고 거기에 연루된 구조를 차례로 분석해낸다.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차별을 자아내는 조직, 국가, 신념 체계라는 거시 구조를 검토한다. 2부에서는 차별받는 사람과 그들의 감정을 '체념' '적응' '혐오'라는 세 감정으로 나눠 살펴본다. 3부에서는 차별금지법과 적극적 조치, 기본소득 등 대안을 논의한다.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자유'의 모습도 살펴본다.
아주 취약한 위치에 놓이면 지배적인 사고로부터 구조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저자는 "구조에 꼼짝없이 붙들린 감정을 직면하고 인지해 그것의 찌꺼기들을 하나씩 걷어내야 하는 것은 구조 속에 있는 우리 자신"이라며, 이를 위해 세밀한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은폐된 구조를 드러내 더 많은 올바른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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