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시계형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주득점원에서 대체 선수 대명사가 된 아이라 클라크 (2)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7월호에 게재됐습니다. (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KBL 출범 이래, 많은 외국 선수가 거쳤다. 하지만 여러 구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이는 흔치 않다. 아이라 클라크가 그 중 하나.
비록 전성기가 지난 이후에는 ‘대체 전문 외국 선수’으로 여러 구단의 호출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클라크는 누구보다 빨리 적응했다. 그리고 KBL에서 뛴 외국 선수 중 최초로 KBL 구단의 코치로 부임했다. 누구보다 많은 세월을 KBL과 함께 했다.
울산에서
2013~2014 시즌 종료 후 클라크는 외국 선수 트라이아웃 및 드래프트에 나섰다. 2014~2015 시즌에도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길 바랐다. 부산 KT(현 수원 KT)에서 뛰는 동안, 자기 역할을 나름 해냈기 때문.
전성기 때처럼 주축 선수로 활약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2옵션 외국 선수로의 경쟁력은 충분했다. 그러나 클라크는 드래프트에서 선택을 받지 못했다.
2013~2014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와 서울 SK, 창원 LG 등 다수의 구단이 기존 외국 선수와 재계약을 맺었기 때문. 재계약을 체결한 선수가 무려 9명에 달했기에, 클라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다. 또, 노장 대열에 들어섰기에, 나머지 구단이 새로운 이를 찾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클라크는 2014~2015시즌에도 대체 외국 선수로 기회를 잡았다. 모비스가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로드 벤슨과 결별했기 때문.
배경은 이랬다. 당시 유재학 감독이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준비 때문에 자리를 비웠고, 김재훈 수석코치가 팀 훈련을 진행했다. 그때 벤슨은 연습 도중 코치진과 이견을 보였고, 짜증 섞인 행동을 여러 차례 했다. 모비스는 고심 끝에 벤슨과 함께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모비스는 클라크와 곧바로 접촉했다. 클라크는 KBL 입성 후 처음으로 울산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벤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출전 시간만큼은 팀에 힘을 실었다. 또, 리카르도 라틀리프(현 라건아)의 멘토 역할을 잘 해냈다.
모비스의 국내 선수 전력 또한 여전히 막강했다. 양동근(현 울산 현대모비스 코치)과 문태영, 함지훈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 양동근과 문태영, 함지훈과 라틀리프가 공수에서 중심을 잡아줬고, 클라크는 출전 시간 동안 자기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덩크도 가끔 곁들이는 등 여전한 운동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여러 전력이 어우러진 결과, 모비스는 정규리그 1위로 4강 플레이오프에 무난하게 진출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창원 LG를 상대했다. 2013~2014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마주했던 두 팀은 이번에도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시리즈 분위기는 팽팽했다.
그러나 시리즈 도중 엄청난 변수가 발생했다.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LG 에이스인 데이본 제퍼슨이 몸을 푸는 동작을 취했다. 이로 인해, 여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LG는 고심 끝에 시리즈 중 제퍼슨을 방출했다. 모비스가 확 유리해졌다. 비록 최종전까지 접전을 치렀지만, LG를 상대로 또 한 번 웃었다.
모비스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원주 동부(현 원주 DB)를 상대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치렀지만, 모비스는 굳건했다. 오히려 체력전에서 동부를 압도했다. 모비스는 동부에 한 경기도 내주지 않고 챔피언 결정전을 접수했다. 프로농구 역사상 첫 3연패. 클라크는 KBL 입성 후 첫 우승의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클라크는 모비스와 재계약하지 못했다. 외국 선수 및 귀화혼혈선수 보유 규정(각 3년)으로 인해, 모비스가 라틀리프와 문태영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 게다가 외국 선수 제도 역시 변경됐다. 2명의 외국 선수 중 1명을 193cm 이하의 자원으로 선발해야 하고, 2명의 외국 선수가 2쿼터와 3쿼터에 동시 출격해야 했기 때문.
그래서 모비스는 새로운 1옵션 외국 선수를 탐색했다. 서울 삼성과 고양 오리온스에서 뛰었던 리오 라이온스를 호명했다. 단신 선수로는 언더사이즈 빅맨인 커스버트 빅터를 뽑았다.
라이온스가 비록 센터는 아니었지만, 내외곽을 오가며 공격을 주도했다. 함지훈과도 좋은 호흡을 보였다. 모비스가 비록 유력한 우승 후보는 아니었으나,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릴 만했다.
그러나 악재가 뒤따랐다. 라이온스가 아킬레스건 파열로 시즌을 마감한 것. 모비스의 계획도 헝클어지고 말았다.
모비스는 고심 끝에 클라크를 대체 외국 선수로 선택했다. 클라크는 40대임에도 변치 않은 몸 상태를 보여줬다. 또, 모비스의 수비 전술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그래서 팀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었다.
그러나 장신 선수로 오랜 시간을 뛰어야 했다. 이때 많은 나이가 클라크의 발목을 잡았다. 경기당 15.1점 8.6리바운드로 위력적이지 못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말았다. 해당 시즌을 끝으로, 클라크를 프로에서 보기 쉽지 않을 듯했다.
전주에서
전주 KCC가 2016~2017시즌 안드레 에밋과 리온 라이온스를 외국 선수로 낙점했지만, 라이온스의 경기력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KCC가 이때 클라크를 선택했다. 클라크의 시계는 여전히 흘러갔다.
클라크는 KBL 최고령 선수 기록을 갈아치웠다. 22경기에서 경기당 14점 7.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1옵션 외국 선수인 에밋 때문에 이렇다 할 기록을 남기지 못했으나, 클라크는 하승진의 뒤를 잘 받쳤다. 2015~2016시즌과 엇비슷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다시 울산으로 그리고 지도자로
2016~2017시즌을 끝으로, 클라크를 KBL에서 보는 건 어려울 듯했다. 그러나 2018~2019시즌 후반부에 현대모비스에 합류했다.
운이 어느 정도 따랐다. 라틀리프가 ‘라건아’라는 이름으로 국내 선수 자격을 얻었고, 라건아를 보유한 현대모비스가 3명의 외국 선수를 보유할 수 있었기 때문.
현대모비스는 3옵션 외국 선수인 DJ 존슨을 내보냈다. 그리고 클라크를 또 한 번 데려왔다. 클라크의 경험에 높은 점수를 준 것. 게다가 라건아가 상대의 집중 견제에 시달렸기에, 클라크는 외국 선수 중 ‘큰 형’ 노릇을 해야 했다.
2018~2019시즌의 현대모비스는 리그에서 독보적이었다. 적수가 없었다. 이대성과 라건아는 물론, 단신 외국 선수인 섀넌 쇼터가 중심을 확실하게 잡았다. 벤치에서 나서는 문태종의 지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박경상(현 전주 KCC 전력분석)과 이종현(현 안양 KGC인삼공사)이 핵심 로스터에 포함됐다. 양동근과 함지훈이 부담을 덜 수 있었다.
현대모비스는 정규리그 1위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KCC를 네 경기 만에 따돌렸다. 챔피언 결정전에 처음 오른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와 마지막 승부를 시작했다.
이대성과 라건아가 공격을 확실하게 이끌었다. 수비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줬다. 시즌 내내 순도 높은 활약을 펼쳤던 쇼터까지 해결사를 자처했다. 이대성과 쇼터, 라건아만으로, 현대모비스는 전자랜드를 압도했다.
여기에 문태종의 한 방까지 더해졌다. 현대모비스는 전자랜드를 5경기 만에 눌렀다. 지난 2014~2015시즌 이후, 4년 만에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클라크 또한 4년 만에 현대모비스에서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하지만 여러 이유 때문에, 또 한 번 재계약하지 못했다.
그러나 클라크는 외국인 코치로 현대모비스 코치진에 합류했다. 외국인 코치로 임한 첫 시즌(2019~2020)이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됐지만, 클라크는 2020~2021시즌에도 현대모비스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리고 2021~2022시즌까지 현대모비스의 코치로 활약했다.
유 감독이 2022년 여름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조동현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부임했고, 현대모비스 코치진의 개편 작업이 이뤄졌다. 클라크 코치는 팀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농구 팬들에게는 추억의 인물로 자리잡고 있다. KBL과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KBL
바스켓코리아 / 이재승 기자 considerate2@basket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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