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일본 사과, 꼭 받겠다고 다짐하셨죠”
공부시켜주겠다는 사탕발림 속아
44년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
종일 노동에도 임금 한 푼 못 받아
2014년 미쓰비시 상대 손배 소송
2심 이기고 대법 판결 못보고 별세
“늘 다정하고 사랑 많이 베푸셨죠”
“돌아보면 통한의 세월이었다.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조국 강토는 무참히 유린당해야 했고 …수 천길 지하 막장에서, 낯선 땅 어느 공사장에서 …인생의 황혼녘에 이른 할머니들의 여윈 어깨를 보라. …돌이켜보라 광주가 보듬어 안아야 할 역사적 사명이자 책무다…”(2009년 3월12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 결성문이다. 필자는 결성준비 모임 때부터 함께하면서 현재 자문위원으로 있다.
14년이라는 시간 속에 피해자 한분 한분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또 다른 원통하고 분한 일이다. 그 가운데 김재림 할머니가 93살로 지난달 30일 별세했다. 일제 강점기에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에 끌려갔다.
고인은 1930년 전남 화순군 능주면에서 태어났다. 1남4녀 중 넷째다. 할머니는 평소 공부를 하고 싶었다. 1944년 능주공립국민학교(현 화순군 능주초) 졸업 후 광주 불로동 삼촌 집에서 집안일을 돕고 있었다. 강제 동원된 분들의 공통점은 일본 가면 공부도 시켜주고 밥도 준다는 사탕발림으로 유혹당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먹는 것보다는 공부시켜 준다는 말에 일본으로 향했다.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에서 일했다. 열네 살 어린 소녀가 온종일 군용 비행기 부속품을 만드는 일에 혹사당했다. 비행기 동체에 페인트칠하기, 비행기 부속품 깎는 일 등으로 종일 노동에 시달리다 숙소에 돌아오면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저녁에도 야간공습에 대비하느라 낮에 입은 옷에 보조가방을 메고 신발까지 신은 채 누워 있어야 했다. 이처럼 허기와 중노동으로 참혹한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김재림 할머니는 1944년 12월7일 지진이라며 도망가라는 고함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사촌 언니 손을 잡고 공장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물더미에서 사촌 언니의 손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결국 할머니는 구사일생으로 구출되었다. 그러나 사촌 언니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따가운 사회적 시선이 마음을 힘들게 했다. ‘위안부’로 오해받을까, 늘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고인은 일본에서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김재림 할머니는 2014년부터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지만 사과는커녕 배상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원통하고 억울하기만 하다.
2017년 8월5일 김재림 할머니를 비롯한 원고 4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다. 당시 할머니 연세가 87살이었다. 그때도 날씨가 매우 더웠다. 필자도 법정에서 할머니와 함께했다.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서 법원 정문 입구 의자에 앉아 있을 때 땀을 흘리고 계셨다. 그래서 필자가 손수건을 드렸다. 사용 후 한참 지났지만 시민모임 공동대표를 통해서 깨끗하게 세탁을 해서 보냈다. 이만큼 할머니는 정갈하고 꼼꼼하게 사랑을 많이 베푸셨다. 늘 다정하고 인정도 많으셨다.
2018년 12월5일 광주고등법원에서 각 1억원씩 배상하라고 원고승소 판결이 나왔다. 그 뒤 미쓰비시중공업 상고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다 할머니는 세상과 이별했다.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미적대는 사이에 강제 동원된 사람들은 이처럼 스러져가고 있다. 어쩌면 현재도 우리 민족은 일본에 강제징용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피해자들은 한 사람씩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강제동원 굴욕외교를 통해 배상책임을 엉뚱하게 우리 정부가 대신하겠다며 판결금을 받으라고 종용하고 있다.
김재림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양금덕 할머니, 이춘식 할아버지 등 피해자들 역시 각종 병마와 싸우고 계신다. 김재림 할머니는 죽어서도 일본 사과를 꼭 받으리라는 다짐 가운데 하늘나라로 가셨다. 더 이상 원한을 품는 일이 없도록 일본은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하며 대법원은 신속하게 판결하라. 그것이 강제동원으로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들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장헌권/목사·일제 강제동원 시민모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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