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옷 입고 눈에 확 띄게" 장병 죽은 대민지원, 해병대는 '홍보' 강조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지난 7월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고(故) 채수근 상병이 '사단 지휘부의 무리한 수중수색 지시로 희생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당시 대민지원에 나선 해병 제1사단이 장병들의 안전이나 수색임무 효율보단 언론노출 등을 통한 '홍보'에만 몰두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군인권센터는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병대가) 상관과 언론에 보여주기 위해 무리한 수색을 지시했다는 의혹은 카톡방 내용을 통해 고스란히 나타난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이날 이들은 고 채 상병의 동료 부대원들과 채 상병이 대민지원 당시 참여하고 있었던 소속 중대 대민지원 카카오톡 대화방의 메시지 내용들을 종합해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제보 등에 따르면, 지난 7월 18~19일 해병 제1사단의 경북 예천군 폭우 피해 대민지원 당시 지휘부는 임무효율 등을 증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저해할 수 있을 정도로 "외적인 요소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선 대민지원 준비 당시부터 문제가 있었다. 제보에 따르면 대원들은 지난달 17일 점심시간에 '대민지원을 나간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때 대민지원 기간, 방식, 취침 방식 등 구체적 내용은 전혀 전파되지 않았다. 이들은 당일 오후 7시경 숙소인 경북 문경 소재 STX리조트에 도착했는데, 대원들은 이때까지 숙소에 대한 이야기조차 듣지 못해 텐트와 모포 등 숙박용 준비물을 소지한 채 현장에 도착했다.
대원들이 구체적인 작업 내용을 전해들은 것은 임무가 시작된 18일 오전 5시 15분께였다. 당시 이들은 같은 시간 45분께 리조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집결해 임무지역으로 이동했는데, 그 직전인 5시 15분에 처음으로 자신들의 임무가 '석관천 일대 수변 실종자 수색정찰이 임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셈이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대민지원 투입 시 부대에서 준비한 장비는 삽, 갈퀴, 고무장화 등이 전부였던 터라 장병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실종자 수색이 아닌 수해복구 작업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라며 "(제보 장병들은) 구명조끼를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라고 설명했다. 임무수행을 위한 보급부터가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생수 보급도 문제가 됐다. 더운 날 진행되는 야외 작업 시에는 물 보급이 중요한데, 제보에 따르면 당시 장병들이 보급받은 물은 오전·오후 과업에 맞추어 조식과 중식으로 배급 받은 500ml의 생수 한 통뿐이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장병들을 위한) 여분의 물은 없었고, 물이 모자란 인원은 다른 인원들과 나눠 마시라는 지시를 받았다"라며 "보급이 어려운 상황도 아닌데 기본적인 생수 지원조차 충분히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민지원 운영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전파된 일부 지시사항을 보면, 지휘부는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면서도 대민지원 과정에서의 '해병대 홍보'에는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수색작업이 진행된 7월 18일 오후 4시 22분경 대화방에 전파된 사단장 지시 사항을 살펴보면, 사단장은 일부 대원들의 당일 '복장 착용 미흡'을 지적하며 "슈트 안에도 빨간색 츄리닝 입고 해병대가 눈에 확 눈에 뜰 수 있도록 가급적 적색 티 입고 작업"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전달했다.
언론 노출을 고려해 폭염 상황에서 수색작업 중인 장병들의 '얼굴을 가리라'는 취지의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당일 오전 6시 42분께 대화방에 전파된 사단장 지시 메시지를 보면, 사단장은 "웃는 얼굴 표정 안 나오게 할 것"이라며 군용 '얼룩무늬 스카프(버프)'를 모든 장병에게 착용하도록 지시했다. 사단장은 이어 같은 날 오전 7시 24분께에도 '언론 접촉 시 유의·당부사항'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파, 장병들이 "히죽이거나 웃는 모습을 지양"하도록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해당 유의사항에서 사단장은 "6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전국민적 비극인만큼 애도와 위로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입장임을 장병들에게 강조했지만, 폭염 시 작업을 해야 하는 장병들에게 웃는 모습 등을 가리기 위해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라'는 지시를 내린 것은 과도한 시선의식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김형남 사무국장은 "덥고 습한 날씨에 외부 시선을 의식한다고 장병들에게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작업을 하라는 이상한 지시를 내린 것"이라며 "(지휘부는) 현장의 상황과 괴리되었을 뿐 아니라 장병 안전에 관심이 없고 외부에 비치는 모습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태훈 소장은 "사실 해당 스카프 착용의 경우도 물에 빠졌을 경우 호흡에 지장이 될 수 있는 요소다. 사단장은 그런 안전 부분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여전히 병사를 '소모품'처럼 여기고 있는 군의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센터 측은 "이외에도 사단장이 현장 지도를 나가면 복장을 점검할 예정이라는 지시 사항도 나와 있던 것으로 안다"라며 "얼마나 (복장을) 강조했는지, 해병들이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체육모에 대해서도 '절대 안 된다'라고 강조하는 메시지가 많았다"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지시가 지속되자 당시 군장병들 사이에서도 '지휘부가 해병대 홍보에 신경 쓰느라 비효율적인 지시가 내려온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18일 장병들이 숙소에서 작전 지역으로 이동할 당시 해병대는 지원되는 버스가 아닌 군용 수송 트럭을 이용했는데, 일부 장병들은 이를 두고도 "불편한 군용 트럭으로 이동하는 것은 군인이 이동하는 것이 눈에 띄게 하기 위한 거라는 말을 전해들었다"라고 제보했다.
김 사무국장은 "수송용 트럭은 버스와 달리 검정 천으로 전면을 덮고 있어 내부가 굉장히 덥다"라며 "전날 (숙소로) 올 때만 하더라도 대절버스를 이용했는데, 왜 이런 트럭을 이용해 현장까지 이동했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지난해 해병 1사단은 포항 수해복구 작업 당시 장갑차를 동원해 대민지원을 했는데, 당시 그 일이 국민들에게 굉장히 칭송을 받았다"라며 "사단장이 이번에도 그러한 것에 너무 성과 위주로 접근해 본말이 전도된 수색작업을 진행한 게 아닌가 한다"라고 평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센터는 "사단은 수중수색 지시와 동시에 다음 날 국방부장관과 해병대사령관이 현장 방문을 할 것이라는 전파만 3번을 반복해서 내렸다. 이처럼 상관과 언론에 보여주기 위해 무리한 수색을 지시했다는 의혹은 카톡방 내용을 통해 고스란히 나타난다"라며 "사단 지휘부가 안전에 대한 일말의 고려도 없이 무리한 지시를 한 경위가 무엇인지 국방부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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