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감형 8개월 만의 원세훈 가석방, 이제 ‘사법정의’ 거론 말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오는 8·15 광복절 가석방 대상자에 포함됐다고 한다. 앞서 지난해 말 원 전 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단행한 특별사면에서 감형 혜택을 받아 남은 형기가 7년에서 3년6개월로 대폭 줄었다. 특별사면으로 감형되고 8개월 뒤 법무부 가석방까지 초고속으로 이뤄진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다른 수형자들과의 형평성은 물론이고 법과 원칙에도 어긋난다. 형기의 3분의 1을 채우면 형법상 가석방 대상이 되지만 일반적인 법무부 기준은 형기의 80%다. 원 전 원장은 감형까지 고려해도 형기의 70%를 채웠을 뿐이다. 윤 대통령의 ‘사면 농단’에 이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가석방 농단’이라 할 만하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원 전 원장을 수사하고 기소한 당사자가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라는 점이다. 원 전 원장은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영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위 풍문을 확인하는 데 국고를 쓴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9년형이 선고됐다. 모두 국가권력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옥죈 중대 범죄다. 당시 이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장이 윤 대통령, 3차장 검사가 한 장관이었다. 검사 시절엔 원 전 원장을 적폐로 몰아 처벌해놓고 지금 와서는 풀어주는 것은 자가당착이요 자기부정이 아닐 수 없다.
법무부는 사면 심사도 진행하고 있다. 광복절을 맞아 윤 대통령이 행사하는 특별사면 대상자를 정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최지성 전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등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대거 사면될 거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명예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의 사면을 요청했다. 재계는 늘 하던 대로 경제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횡령·배임 비리를 저지른 기업인들을 풀어주고 경영 복귀 길을 터주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어지럽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지난해에도 윤 대통령은 경제난을 이유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을 풀어준 바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재벌에 면죄부를 주고, 자기편을 챙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원 전 원장 가석방 결정을 취소하고, 비리 기업인 사면에 엄격해야 한다. 사면권을 남용할 테면, 사법정의란 말도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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