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시스템’을 개선하지 못하는 과오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강의 중에 북유럽 나라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다. 강의를 듣는 사람들 표정에서 ‘또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이야기 시작했군’이라는 느낌이 읽힐 때도 있고 “아직도 북유럽 복지국가 타령이나 하는 한심한 부류”라고 따끔하게 지적하는 강의 후기를 본 적도 있다.
고백하자면, 안타깝게도 북유럽 나라에 가본 적이 없다. 그 나라에서 몇년 동안 공부한 경험만으로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비난을 받는 마당에 가본 적조차 없으니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고 지적받는다 해도 솔직히 할 말은 없다. 그래서 가장 부러운 이가 그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 이야기를 하는 ‘스웨덴 숲속 아저씨’ 황선준 박사 같은 사람이다. 스웨덴에서 40년 가까이 살면서 스톡홀름대학교에서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로 강의도 하고, 감사원 감사관, 국가교육청 교육정책평가과장으로 일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와서 서울특별시교육연구정보원장, 경상남도교육연구정보원장, 국가교육회의 위원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니 양쪽 나라의 교육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적임자라 할 만하다.
지난 4월 잠깐 한국에 와 있는 동안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강의를 부탁했고 흔쾌히 맡아주었다. “스웨덴에서 꽤 오래 살았습니다. 아내가 가끔 저에게 ‘스웨덴 사람보다 더 스웨덴 사람 같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라는 인사말로 시작된 강의는 기대했던 대로 2시간 반 동안 수강생들을 사로잡았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수강생이 질문했다. “발달장애아, 특히 자폐 스펙트럼의 경우는 조기 발견과 이후 치료와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스웨덴 유아교육 과정에 어떻게 적용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초중등교육에 체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어진 황선준 박사의 긴 답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유아교육 과정에서 상당히 빨리 발견해 지원하고, 초등학교로 진학할 때 모든 자료가 인계됩니다. 의사·심리학자·교사 등 여러 전문가가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그 학생이 어떤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등에 관해 여러차례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이 제도화돼 있습니다. 제가 한국의 특수교육 담당자들을 스웨덴에 초청해 몇주 동안 연수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스웨덴 특수교육기관을 방문하는 한국 특수교육 담당자들이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스웨덴 특수학교 학생들은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는가? 안경을 낚아챈다든지, 물어뜯는다든지…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는가?’ 그 질문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한국에서는 장애 학생들의 유형을 몇가지 형태로 분류해 대응합니다. 스웨덴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학생 개인에 따라 여러 전문가가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그 학생에게 필요한 맞춤지원을 위해 노력합니다. 필요한 모든 장비가 지원됩니다. 저도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한국의 특수학교 학생들이 과잉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그 학생에게 맞는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좌절감과 분노 등이 그런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장애 유형별 테이블을 차라리 없애고 학생 개개인에게 맞는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가면 그런 행동들이 좀 더 줄어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북유럽 나라들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미국 옆에 있는 나라이지만 캐나다의 각종 제도는 북유럽에 가깝다. 캐나다에 교환교수로 간 동료 교수가 캐나다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에게 “캐나다 어떤 나라입니까?”라고 물었더니 대뜸 “공산주의죠”라고 웃으며 답하더란다.
주호민 작가 가족과 교사를 둘러싼 문제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했을 때, 자신을 캐나다에서 오랜 기간 치료사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한 이는 “담임 한명이 이 모든 걸 감당해내야 하는 한국의 교육정책과 제도가 심각한 문제들을 양산해낸 거라고 본다”고 지적하면서 ‘구멍 난 시스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 가운데에서도 절대적 약자인 장애아동의 신상정보가 이토록 널리 공개된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해당 교사의 몇가지 발언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교사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옹호하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 특수교육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성급히 판단할 일이 아님에도 ‘빌런’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는 언론의 선정적 보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한쪽을 편들며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조소하는 일은 상처를 더욱 깊게 만들 뿐이다. 이번에도 ‘구멍 난 시스템’을 개선하지 못하는 과오를 되풀이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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