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근의 낮은 목소리] 새만금에 돌을 던져라, 하지만
조형근 | 사회학자
전북 부안 새만금 매립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파행을 거듭하다 결국 조기 종료의 길을 걷고 있다. 뉴스를 보는데 기가 막혔다. 갓 매립한 야영지에는 나무 한그루 없고, 배수도 되지 않아 물바다였다. 전국에서 모은 팰릿 10만개를 참가자들이 직접 나르고 깔았다. 폭염에 샤워기에서는 더운물이 나오고, 화장실은 부족하고 먼데다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았다. 환자가 쏟아지는데 의료진과 시설은 부족해 비상이 걸렸다. 음식도 부실했다. 심지어 메인센터 건물은 내년에나 완공된다고 한다. 부끄럽다. 참가자들이 안전하길 바랄 따름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주최 쪽에 책임을 따질 수밖에 없다. 조직위원회에는 공동위원장이 다섯명 있다. 법률상 책임자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을 비롯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 그리고 전주를 지역구로 둔 김윤덕 국회의원이다. 세계스카우트연맹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정쟁을 넘어 제대로 책임 규명이 될까? 난망하다. 윤석열 정권은 벌써 전 정권 탓이다. 우려가 나올 때마다 모든 상황에 대비해서 완벽하게 준비했다던 그들이다. 후안무치의 극치다. 책임지기가 그렇게 싫다면 정권을 반납하는 게 맞다.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공동위원장 한명이 민주당 의원이고, 실무 총책임자인 집행위원장도 민주당 소속 김관영 전북도지사다. 완벽한 준비를 자신한 건 똑같다. 새만금 잼버리대회는 박근혜 정권 때 국내 후보지를 결정했고, 문재인 정권이 유치했으며, 윤석열 정권이 치르고 있다. 두 세력의 합작 프로젝트다. 잘됐으면 자기 공이라며 다퉜을 것이다. 이제 와서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이 목불인견이다.
문제는 따로 있다. 늘 싸우는 두 세력이 새만금 앞에서는 줄곧 손잡아왔다는 게 진짜 문제다. 사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뉴스를 보면 누구나 의문을 품게 된다. 왜 수풀 우거진 곳들 놔두고 허허벌판 매립지에서 잼버리를 열까? 잼버리의 성공이 아니라 그 핑계로 갯벌을 없애는 게 진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잼버리 성공에 일말의 진심이나마 있었다면 새만금 안에서라도 이미 매립되어 안정된 땅을 골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무 심고 인프라 갖출 시간이 그런대로 있었을 것이다. 매립이 목적이니 그 선택지는 배제됐다. 하루 두번의 해수 유통만으로도 생태계가 살아나고 있던 해창갯벌 267만평이 그렇게 영원히 사라졌다. 2020년 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매립된 이 갯벌이 대회지가 됐다. 왜 이렇게 매립에 목을 맬까? 그래야 토건자본에 돈이 되기 때문이다. 농지관리기금 1845억원이 그렇게 편법 전용돼 토건자본의 이윤이 됐다. 모두 우리 세금이다. 바로 이런 게 카르텔이다. 그만큼 인프라 준비 시간이 줄었다.
주지하다시피 새만금 사업은 노태우 정권의 대선 공약으로 시작됐다. 쌀농사 용지를 확보한다는 당초 목적은 시대착오가 된 지 오래다. 무얼 만들지도 모르는 채 이 정권, 저 정권이 계속 갯벌을 없애고 바다를 메웠다. 예산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새만금은 토건자본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토건자본의 이윤 마련에 진심이라는 점에서 두 거대정당은 아무 차이가 없다.
잼버리 다음은 공항이다. 마지막 남은 수라갯벌을 메워 2029년까지 국제공항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문재인 정권 때 예타 면제 사업으로 지정돼 승인이 났고, 지난 3월 윤석열 정권의 조달청이 입찰공고를 냈다. 지방공항의 미래가 불 보듯 훤한데 사업은 그냥 진행 중이다. 지역 환경운동과 사회운동이 이에 맞서고 있지만 힘에 부친다. 증오하는 두 세력이 이런 일은 잘 협력한다. 짓고 나면 이제 텅 빈 공항을 살리자며 다시 토건 예산을 쏟을 것이다. 수라갯벌을 찾은 멸종위기종 저어새는 날갯짓을 돌릴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까, 저어새는? 우리는?
이렇게 기득권 세력들을 싸잡아 비난하다가 문득 20여년 전 옛일이 떠올랐다. 부안군수의 돌발적인 핵폐기장 유치 선언과 주민들의 저항, 노무현 정권의 탄압으로 상황이 엄중하던 2003년의 일이다. 세모인 12월31일 저녁, 나는 부안에 있었다. 군민들이 핵폐기장 반대를 외치며 촛불을 들고 광장에 운집했다. 1만명을 훌쩍 넘는 엄청난 인파였다. 나도 맨 뒤에서 구호를 외쳤다. 갑자기 사회자가 서울에서 온 조형근씨를 찾는다고 해서 깜짝 놀라 나갔더니 응원의 말과 노래를 부탁했다. 주최 쪽 지인이 한마디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함께 노래 부르고 싸웠다. 반대투쟁 과정에 주민 44명이 구속되고 157명이 전과자가 됐다. 노태우 정권 때 그 격렬했던 안면도 핵폐기장 싸움 때도 구속된 주민은 13명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부안에 사실상 경찰계엄을 발동했다. 자기 정당성에 심취한 정권은 때로 군사정권보다 더 가혹했다.
인연이 닿아 그곳을 종종 찾다가 지역 활동가들도 알게 됐다. 때로 새만금 이야기가 나왔다. 핵폐기장은 반대하는 주민들이 새만금에는 우호적이라고 했다. 뭐라도 먹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는 것이다. 결국 토건자본의 이윤으로 돌아갈 뿐이라는 환경운동단체들의 비판에 반발한다고도 했다. ‘노가다’나 ‘함바집’ 찬모 같은 일자리조차 아쉬운 게 지역의 낙후한 현실이라며. 갯벌을 지키자는 주장이 주민들에게는 아쉬울 것 없는 서울 중산층의 배부른 낭만처럼 들린다는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온 나라에 텅 빈 공항, 뻥뻥 뚫린 고속도로, 한산한 다리가 건설 중이다. 환경을 파괴하고 적자만 늘어난다는 비판이 많다. 이익은 토건자본 몫이라는 고발은 물론이다. 옳은 말이지만 더 나가야 한다. 좋은 것은 서울, 수도권이 독점하면서 지방은 자연과 함께 가난하게 살라고 하면 화가 치미는 게 인지상정이다. 수도권 중심주의에 대한 분노와 피해의식을 자양분 삼아 개발주의가 정당화된다. 기득권 정치세력들도 이익을 얻는다. 개발주의 비판도, 수도권 중심주의 비판도 그 자체로는 반쪽일 뿐이다. 둘 다 비판하면서 동시에 대안적인 평등사회의 전망을 키워야 한다. 무엇보다 수도권 사는 이익은 다 누리면서, 지방에 대해 남 일 보듯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새만금에 돌을 던지기는 쉽다. 나도 던졌다. 자기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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