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수 칼럼] `하수구 정치`가 낳은 괴물들
연일 끔찍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언론에 오르내리는 요즘이다. 한국 사회가 벼랑 끝에 서있는 듯하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 이어, 또래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 신림역·서현역에서 흉기를 휘두른 조선과 최원종, 전국 각지서 터진 '살인예고'까지. 마치 온 사회가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을 품에 안은 듯, 위태위태하다. 겉으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곪아터진 한국의 속 모습이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에 이런 괴물들이 생겨났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에 팽배한, 타인에 대한 극단적 증오심과 적대감이 보인다. 서로 증오하며 갈라선 개인과 집단만 눈에 띈다. 정반대로 소통과 화합, 인내와 관용은 아예 모습을 감췄다. 상호 거부하고 대립하는 다양한 집단과 당파만 존재할 뿐이다. 양극화된 '초갈등 사회'의 민낯이기도 하다. 지난 2020년 서울시에서 발표한 '서울시민 공공갈등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실상이 잘 드러난다. 당시 응답자의 86%가 "국내에 사회 갈등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10명 중 6명은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고 보았다.
시민들도 점차 커져가는 갈등의 위험성을 간파했던 것이다. 극단적 갈등과 대립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발견된다. 진보와 보수 간 이념갈등, 남녀와 세대 갈등, 노사 갈등, 정규직과 비정규직, 갑과 을의 갈등이 그렇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건 수년간 이런 상태에 젖어살다 보니 갈등 자체에 무감각해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일 죽기살기로 생존게임을 벌이는 여야 정치권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치권이 갈등의 진앙지라고도 할 수 있다. 무고한 시민에 대한 증오심에서 나온 '흉기 난동', 범죄를 저질러도 되레 큰소리치는 '뻔뻔함', '한탕주의' 등이 한국 정치 현실과 다를 바 없다. 전 국민을 볼모로 잡은 정치 갈등이 평범한 일상을 위협하고 국민을 괴롭힌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인해 파생되는 여야간 갈등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에겐 대장동·백현동·성남FC 비리, 쌍방울 그룹 대북송금까지 무수한 의혹이 따라붙는다. 야심차게 출범한 '김은경 혁신위'가 노인 비하 논란에 좌초위기에 놓이면서 이 대표의 '10월 사퇴설' '12월 비대위설'까지 나돈다. 이처럼 복잡한 야당 내 기류상 여야 간 타협 정치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사회적 갈등을 용광로처럼 녹여내 사회 통합을 이뤄내는 게 정치 본연의 역할이다. 정치가 다양한 가치와 이념을 가진 이들이 공존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정치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4류 정치, 5류 정치란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편가르기 정치 문화가 예전에도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구 정권인 문재인 전 정부가 '적폐 청산'을 통해 적대적 대립관계를 심화시킨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당시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결과는 딴판이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국민 분열이 생겨났다. 그가 "한 분 한 분이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한 다짐도 알고보면 거짓이었던 셈이다. 문 정부가 '사회 갈등이 가장 심했던 정부'의 첫손에 꼽힌 건 아이러니하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 이유를 운동권 정치인의 독선으로 인한 '도덕적 타락'에서 찾곤 한다. 독재와 맞서 싸운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형성된 도덕적 우월감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런 몽상을 가진, 무능력한 집단이 권력을 잡게 되면 독선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독선은 독재로 이어지고, 도덕마저 타락시킨다. '조국 사태'가 말해주는 권력자의 파렴치함과 뻔뻔함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외신에 한국 원음 그대로 '내로남불'이란 말로 표현되는 도덕적 위선이 어느새 우리 사회에선 진보를 상징하는 말처럼 굳어진 건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다.
"그들은 입을 열 때마다 '공정'이란 말을 내뱉는다. 또 적폐 청산이란 정의로운 말로 복수를 한다.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면서, 의견이 다른 사람을 모두 적으로 돌린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는 것은 오직 자기 이익을 위해서일 뿐이다." 우리 사회를 진정 걱정하는 정치인이라면 한번은 곱씹어볼 만한 니체의 경구다.
박양수 콘텐츠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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