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父女 "우린 안 죽였다"… 재심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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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갑자기 아내가 죽어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검찰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검찰의 회유에 넘어가 막내딸(39)과 함께 아내 최모(사망 당시 59세)에게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건네줘 이를 마신 최씨 등 주민 2명을 살해했다고 허위 자백했다는 얘기였다.
피고인석에 선 백씨는 이내 "말이 안 나온다. 죄송하다"며 입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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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갑자기 아내가 죽어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검찰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2009년 7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남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백모(73)씨. 그는 항소심 선고를 두 달여 앞둔 2011년 9월 8일 한국일보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검찰의 회유에 넘어가 막내딸(39)과 함께 아내 최모(사망 당시 59세)에게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건네줘 이를 마신 최씨 등 주민 2명을 살해했다고 허위 자백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깨고 백씨에게 무기 징역, 막내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백씨 부녀는 이듬해 3월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로부터 11년여 뒤인 8일 백씨 부녀가 다시 법정에 섰다. 지난해 1월 재심을 청구했던 백씨 부녀가 이날 사건을 맡은 재판부(광주고법 형사2-2부)의 마지막 심리에서 최후 진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학교도 못 다니고, 지게질만 하고…" "(제가) 말재주가 없어서…" 재판 말미에 백씨는 재판장으로부터 피고인 진술 기회를 얻었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입에선 "내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이 과거 어렵게 살아왔던 삶의 단편들만 주저리주저리 읊어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피고인석에 선 백씨는 이내 "말이 안 나온다. 죄송하다"며 입을 닫았다. 재판장도 알았다는 듯 "그 정도만 하겠다"면서, 막내딸에게 진술 기회를 넘겼다. 막내딸은 "정말 억울하기도 하고, 엄마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고만 했다. 백씨 부녀의 마지막 진술은 그렇게 짧게 끝났다.
그러나 백씨 부녀의 변호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앞서 검사와 2시간여에 걸친 진실 공방을 이어갔다. 검사는 "백씨 부녀에게서 살인 사건 자백을 받기 위한 무리한 추궁도 없었고, 이들에게 누명을 씌울 어떠한 이유도 없다"고 했다. 막내딸이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동네 주민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무고한 사실을 자백한 것이지, 당시 수사 검사와 수사관이 허위 자백을 받아낸 게 아니다는 것이다. 검사는 특히 "백씨 부녀의 지적 능력을 이용한 진술 유도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백씨 부녀의 진술 과정을 담은 녹화 영상 등을 공개했다.
하지만 박 변호사는 "검찰이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말도 아닌 주장을 하고 있다"며 "검찰이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증거를 감췄다"고 몰아붙였다. 박 변호사는 실제 막내딸의 지능지수가 낮다는 내용의 정신 감정 결과에 대한 수사보고서, 백씨가 막걸리를 구입하기 위해 화물차량을 타고 이동한 경로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분석 자료 등 증거 73개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글을 제대로 쓸 줄 모를 정도로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피고인들이 피의자 신문 조서에 날인을 했다는 이유로 법정에서 (자신들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며 "검찰이 작성한 그 조서는 위험한 증거이고, 피고인들의 자백은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에 검사도 한발 물러서는 듯했다. 검사는 "기존 공판 과정에 수사 검사가 일부 증거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맞다"며 "그 증거들이 재판부에 제출됐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검사는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재심 사유는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안이 중대하고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많아 면밀한 검토를 거쳐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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