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 타깃 '언론재단 이사장 해임' 사태에 내부 분노 들끓어
'이사회 해임 안건 상정' 기정사실화… 비상임이사 2인 찬성하면 해임
문체부 장관 면담 후 해임 논의 본격화… "말도 안 되는 행태 이어져"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한국언론진흥재단(이하 재단)이 '상임이사에 의한 이사장 해임'이라는 초유의 상황에 놓였다. 이달 16일 개최되는 이사회에서 문재인정부에서 임명된 표완수 이사장 해임 안건이 상정·통과될지 관심이 모이는 가운데, 재단 내부에선 분노가 터져 나온다. 그간 정권교체 상황에서 상임이사들이 재단 직원들을 수사의뢰하고, 이사장 해임 안건이 이사회에 올라간 적은 없었다는 비판이다. 방송통신위원회 다음 타깃은 언론재단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수성향 시민단체가 만든 언론 '트루스가디언'은 지난 2일 보도에서 “재단은 오는 16일 이사회를 열고 표 이사장에 대한 해임 의결 건을 처리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윤석열 정부 체제에서 임명된 상임이사 3인이 표 이사장 해임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트루스가디언은 익명의 '재단 관계자'를 통해 내부소식을 빠르게 전하고 있다.
내부에선 '해임 안건 상정' 기정사실화… “이런 일 없었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재단 내부에선 '16일 이사장 해임 안건이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내부규정에 따르면 이사회는 과반수 출석으로 개최하고, 재적이사 과반수 찬성으로 안건이 의결된다. 재단 이사회 구성원은 총 9인(이사장, 상임이사 3인, 비상임이사 5인)으로, 전원 출석이라는 전제하에 이사 5명이 찬성하면 안건이 통과된다. 즉 상임이사 3인에 더해 비상임이사 2인이 찬성표를 던지면 이사장 해임이 현실화된다. 해임 안건 의결 후 문체부 장관 승인 절차가 남아있지만, 장관이 언론재단 리더십 문제를 거론한 만큼 통과는 무리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비상임이사는 임채청 신문협회장(동아일보 사장), 추승호 신문방송편집인회장(연합뉴스TV 상무이사), 김의철 방송협회장(KBS 사장), 김동훈 기자협회장(한겨레 기자), 이준웅 언론학회장(서울대 교수) 등이다.
표완수 이사장 임기는 올해 10월18일까지다. 이사장이 해임된다면 상임이사 3인이 새 이사장이 오기 전까지 재단 내부 결정을 주도할 수 있다. 재단 관계자 A씨는 “재단 창립 이래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고, 재단 관계자 B씨는 “재단이 언론사도 아니고, 정권이 바뀐다고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도 아니다. (견제) 대상이 된 적은 없는데, 독특한 경우”라고 우려했다.
임기 만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해임 시도를 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A씨는 “임기가 1년, 2년 남은 것도 아니다. 임기 만료는 명예롭게 퇴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해임을 추진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해임 정당성도 의문이다. 정관에 따르면 임원은 △재단의 목적사업 수행에 위반되는 행위를 한 경우 △임원 간의 분쟁, 회계부정 또는 현저한 부당행위를 한 경우 △법령, 정관 또는 이사회에서 의결된 사항을 위반한 경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재단에 중대한 손실을 초래한 경우 등을 제외하곤 임기 중 해임될 수 없다. 보수언론·시민단체가 열독률 조작 의혹을 제기했지만, 아직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박보균 “정상적 경영 기대 어려워” 발언 후 해임 논의 본격화
이와 관련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표완수 이사장을 불러 리더십 문제를 거론한 것이 해임 논의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박보균 장관은 1일 표 이사장과 면담에서 “(재단이) 혼란과 갈등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정상적 경영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후 해임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상임이사들이 재단 보조금 사업을 '수사의뢰'하기도 했다. 보조금 사업을 담당한 직원들도 수사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B씨는 “이사장은 임기가 얼마 안 남았지만, 직원들을 건드리는 건 말이 안 된다. 직원들은 위축됐고,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재단 블라인드에는 “밑에 사람들 겁박해서 이사장 퇴진시키려는 전형적 행태”, “임원들이 이렇게까지 재단과 직원들을 흔들어놓았던 적은 없지 않은가” 등 상임이사들을 비판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보수언론을 통해 보조금 사업 의혹의 구체적 내용이 공개된 것도 주목할 지점이다. 1일 오전 문체부 보도자료를 통해 '보조금 사업 수사의뢰' 사실이 처음 알려졌다. 곧 이어 트루스가디언·조선일보·뉴데일리가 보조금 관련 내부 자료를 입수해 보도했다. 재단이 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 사업 점수를 조정해 특정 단체에 보조금이 지급되도록 하고, 2억7500만 원 상당의 사업은 관련 증빙이 없다는 것이다.
A씨는 “수사 의뢰까지 할 건 아니었다. 내부적으로 해명 기회를 주고, 조사를 더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재단 관계자 C씨는 “상임이사들이 수사 의뢰를 하자 다들 격앙됐다”며 “사업 당사자들 이야기도 듣지 않고 바로 경찰서로 가버린 것이다. 열심히 일한 직원들을 의도적으로 낙인찍고 갈라치기 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재단 노조는 8일 총회를 열고 상임이사들에게 수사 의뢰 철회를 요구하고, 현재 상황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로 했다. 트루스가디언에 내부 정보를 넘긴 관계자에 대한 조치, 조합원 대상 설문조사도 준비 중이다. 노조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사측이 노조 요구안을 수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을 땐 다음 단계로 가겠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또 노조 관계자는 16일 이사회에서 이사장 해임 안건이 올라갈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면서 “대응책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방통위 다음은 언론재단? “위기의식 느낄 수밖에 없어”
재단에 내홍이 시작된 것은 상임이사 3인(조선일보 출신 정권현 정부광고본부장, 연합뉴스 출신 유병철 경영본부장, 중앙일보 출신 남정호 미디어본부장)이 임명된 지난 3월 이후다. 내부에선 '재단 차례가 왔다'는 탄식이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 공영방송 이사회에 이어 재단이 정권의 타깃이 된 것 아니냐는 우려다.
A씨는 “방통위원장도 그렇고, KBS·MBC 이사와 관련해 말도 안되는 행태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다. 초유의 사태”라고 했다. 블라인드에선 상임이사 해임 서명운동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 재단 관계자 D씨는 “장관이 나서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당연히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는 명백한 상황”이라고 했다.
상임이사 취임 후 재단은 각종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문체부 주도 가짜뉴스센터를 개소하고,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문체부 보도자료가 나오기 전까지 재단 직원들도 가짜뉴스센터 개소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또 4월 KBS 범기영 기자의 장기 해외연수가 취소되는 사건도 있었다. 범 기자가 윤석열 대통령 방일 중계 당시 “대통령이 일장기를 보고 경례했다”고 발언했다는 이유로 확정된 해외연수를 취소한 것이다. 야당과 언론계 비판이 제기됐지만, 재단은 연수 취소를 강행했다.
상임이사 항명 파동도 벌어졌다. 유병철 경영본부장이 이사장 승인 없이 정례적으로 열리는 간부회의를 생략한 것이다. 이에 표완수 이사장이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이사장이 내린 지시 불이행이거나 심지어 항명에 해당하는 게 아닌지 알아봐야 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상임이사는 재단 명의로 나간 열독률 조작 의혹 반박 보도자료를 홈페이지에서 내리기도 했다. 미디어오늘은 유병철·정권현·남정호 상임이사 입장을 묻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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