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는 없다, 잔혹범죄 막으려면 용어사용부터 신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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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역 흉기난동(7월21일), 서현역 차량·흉기난동(8월3일), 대전 교사 흉기 피습(8월4일), 온라인상 무차별 살인예고 54명 검거(8월6일)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흉악범죄가 잇따라 일어나며 심각한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살인예고 글과 흉기난동 사건을 보도하며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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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신문방송 모니터 보고서]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림역 흉기난동(7월21일), 서현역 차량·흉기난동(8월3일), 대전 교사 흉기 피습(8월4일), 온라인상 무차별 살인예고 54명 검거(8월6일) 등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흉악범죄가 잇따라 일어나며 심각한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살인예고 글과 흉기난동 사건을 보도하며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묻지마 범죄'란 표현은 원인을 개인적 사안으로 치부하거나 범행동기 추적과 규명에 소홀할 수 있어 부적절한 용어라는 지적이 계속됐는데요. 어김없이 등장한 언론의 '묻지마' 보도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흉악범죄에 관행처럼 쓰는 '묻지마'
불특정 대상을 의도적으로 노린 살인 범죄에 언론은 '묻지마 범죄'라고 표현합니다. 실제로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부터 '서현역 차량·흉기 난동', '온라인 살인 예고글'까지 모두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이 기사에 등장했는데요 그러나 '묻지마 범죄'는 법률적·학술적 용어가 아니며 정립된 개념도 없는 부정확한 표현입니다. MBC <탐정M-신림역 흉기난동, '묻지마 범죄'는 최근 갑자기 늘어난 걸까?>(7월30일 조재영 기자)는 '묻지마 범죄'는 “연구자마다 '무차별 범죄', '이상동기 범죄', '무동기 범죄', '증오 범죄'”라며 다르게 부르고 “기준도 각양각색”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어떤 범죄를 소위 '묻지마 범죄'라고 규정할 지도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구체적인 통계”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겨레는 <'묻지마 범죄' 공포 확산… 통계도 없어 대책 난망>(7월26일 윤연정 기자)에서 경찰청이 “지난해 초 범행 동기가 명확하지 않거나 범행 대상에 필연적인 이유가 없는 등 불특정성이 두드러진 범죄 사건을 일컫는 '묻지마 범죄'를 '이상동기 범죄'라고 이름” 붙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어 '이상동기 범죄' 안에서도 범죄와 범인의 상황에 따라 “접근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묻지마 범죄' 자체로 뭉뚱그려 접근해선 안 된다는 신중론”이 나온다고 전했습니다.
'묻지마 범죄', 알고 보니 범행동기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리는 범죄에 대해 '묻지마' '무차별' '무동기' 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특히 언론은 끔찍한 범죄 사건을 전하면서 원인을 찾아보려는 노력도 없이 '묻지마 범죄'라는 부적확한 표현을 관용구처럼 쓰고 있습니다.
2016년 5월17일 강남역 주변 건물에서 모르는 남성에게 여성이 살해당했던 일명 '강남역 살인사건'도 사건 초기 '묻지마 살인'으로 보도됐습니다. 그러나 범인 김 씨가 범행 장소에서 1시간 이상 서성이며 범죄 대상으로 삼을 여성을 물색하고, 범행 동기로 '여성에게 무시당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하며 '여성을 노린 계획범죄'로 바뀌었습니다.
2019년 4월17일 진주에서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른 후 대피하는 주민을 흉기로 살해한 '안인득 살인 사건' 역시 '묻지마 살인'이라 이름 붙었지만, 범인이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 윗집과 지속적인 갈등을 빚었다는 사정 등이 밝혀지며 '전형적인 계획범행'으로 인정됐습니다.
'원인 없는 범죄 없다' 철저한 연구 필요
원인 없는 범죄는 없습니다. YTN 라디오 <뉴스킹-'신림 칼부림' 조선 사이코패스? 배상훈 “어설프지만 계획된 범죄, 관심종자”>(7월27일)에 출연한 배상훈 우석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신림역 흉기난동의 범인 조선 씨가 “여러가지 증거를 사전에 인멸”하고 “범죄에 대한 사전 연습”을 하는 등 범죄를 사전에 계획한 흔적이 있다며 완벽하진 않은 “불균등한 계획범죄”라고 설명했는데요. '묻지마' '무차별' '무동기'와 같은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국가가 끝까지 “무슨 동기인지를 분석”하고 전담 인력을 통해 “초기범죄 경력자부터 관리하는 재범관리 프로그램” 등의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배 교수는 KBS <사사건건-프로파일러들 “'묻지마 범죄' 쓰지 맙시다!”… 왜?>(8월7일)에서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이 “책임을 다른 사회에 떠넘길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보니 “범죄를 유발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범죄라는 느낌”과 자극을 주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지적했는데요. 배 교수는 “흉기 난동과 같이 범죄 형태를 담백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습니다.
문화일보 <“묻지마 범죄 자체가 잘못된 개념… 범행 동기 체계적인 연구 나서야”>(8월7일 전수한 기자)에서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범죄의 동기는 반드시 있다”고 강조하며 '이상동기 범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국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는데요. 승재현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그 원인을 들여다보지 않고 엄중 처벌에만 관심” 있었지만, 이제는 연구를 통해 범죄자들의 “경험이나 생각 속에 있는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잘못된 표현 자제하고 사회 공론장 만들어야
미디어오늘은 <사설-흉악범죄를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8월8일)에서 “범죄 원인은 단편적일 수도 있고, 복합적일 수 있”으며 “개인 특성과 사회경제적 요인이 동시에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애초부터 묻지마 범죄라는 건 없”으며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를 일상적으로 쓰면 원인을 가리지 않은 '묻지마 대책'만 나올 수밖에 없”으니 “해답을 찾고자 고민하는 모습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흉악범죄 대책을 위한 구조적 논의를 더디게 하며, 잠재적 범죄자에게 면피와 촉진제의 역할을 하는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은 삼가야 합니다. 이상동기 범죄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았을 만큼 범죄예방을 위한 길은 먼데, 잘못된 용어 사용으로 극악한 사회범죄를 막을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됩니다. 언론이 앞장서 부정확한 표현을 자제하고, 흉악범죄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연구하고 범죄를 막을 수 있게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론장을 만드는 데 나서길 바랍니다.
- 모니터 대상 : 2023년 7월21일~8월7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 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MBN, 저녁종합뉴스 /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묻지마'로 검색한 보도
※ 미디어오늘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의 '민언련 모니터 보고서'를 제휴해 게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글은 미디어오늘 보도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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