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남노’ 위력 버금… 24시간 전국 할퀸다

윤준호 2023. 8. 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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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카눈’ 9일 밤부터 영향권
10일 오전 통영 인근 상륙 예상
강도 ‘강’… 크기는 중형급 관측
중대본, 위기경보 ‘심각’ 격상
尹 “대비 만전… 선제적 통제를”
서쪽으로 예상 경로 이동 가능성
7호 태풍 ‘란’ 발생… 변수될 수도
11일 오전 北 넘어가며 소멸 전망
수해지역, 복구 멈추고 태세 강화
산사태·침수 대비 안전 조치 총력

한반도가 9일 오후 제6호 태풍 ‘카눈’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제주도 인근 해상을 시작으로 10일에는 한반도를 관통할 전망이다. 기차가 탈선할 정도의 강한 바람을 동반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전국에 비상이 걸렸다. 크기와 강도는 덜하지만 한반도를 뒤덮으며 통과하기 때문에 2022년 11명의 사망자와 재산 피해를 낸 ‘힌남노’의 위력에 못지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8일 기상청은 카눈이 9일 오후 9시쯤 제주도 서귀포 동남쪽 약 220㎞ 부근 해상까지 올라올 것으로 내다봤다. 다음날인 10일 오전 9시 경남 통영 해상까지 북상한 뒤 한반도에 상륙한 카눈은 24시간 뒤인 11일 오전 9시쯤 북한 평양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오전 기준 카눈은 일본 가고시마 남쪽 300㎞ 부근 해상에서 시속 3㎞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한산한 해수욕장 8일 태풍 카눈의 북상을 앞두고 강원 강릉시 강문해수욕장 앞바다에 파도가 강하게 일고 있다. 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이 많지 않아 한적한 모습이다. 강릉=연합뉴스
기상청은 카눈이 10일 국내에 상륙할 때 강도는 ‘강’, 크기는 중형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카눈은 남해안에 도착한 뒤 전국을 통과해 올라가며 강풍과 함께 많은 비를 뿌릴 것으로 보인다. 강도 강은 기상청의 태풍 강도 분류상 3번째 단계로 풍속은 기차가 탈선할 수 있을 정도다. 강도 약에서는 간판이, 중에서는 지붕이 날아갈 수 있다.
카눈과 유사하게 한반도 내륙을 관통한 태풍으로는 2018년 8월 솔릭이 있다. 솔릭은 카눈과 마찬가지로 강도 강의 중형 태풍이었다. 당시 큰 피해가 예상됐지만 바다에서 육지로 들어오면서 마찰력이 커지고 태풍 구조가 흐트러져 강도는 크게 약화했다.
카눈 예상 경로가 더 서쪽으로 옮겨질 가능성도 있지만, 피해 예상 시나리오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 관계자는 “태풍이 어느 쪽으로 편향하든 한반도를 관통하면서 전국을 뒤덮고 지나간다”며 “현재 시나리오가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한국 기상청을 비롯해 각국 기상당국 카눈 예상 경로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서쪽으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였다. 카눈 경로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소로 카눈의 세력, 북태평양고기압 확장세, 우리나라 북쪽에서 대기 상층으로 유입되는 기압골 등이 꼽힌다.

이날 오전 10시 30분 현재 남해동부 바깥 먼바다에는 태풍주의보가 발효됐고 내륙 전체와 대부분 해상에 태풍예비특보가 발령됐다. 태풍예비특보는 9일 오후 제주, 9일 밤 전남과 경남의 남해안, 10일 새벽 남부지방 전역과 충청남부, 10일 오전 충청권 전역과 경기남부·강원남부, 10일 오후 수도권 전역과 강원의 순서로 태풍특보로 전환되겠다.

8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제6호 태풍 '카눈' 대처 긴급 점검회의가 열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태풍 카눈 대비 관련 긴급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관계 부처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대처 상황을 보고받았다. 윤 대통령은 지하 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회의 모두발언에서 “호우 피해 복구가 완료되지 않았는데 태풍 소식이 있어 국민 근심이 큰 만큼 정부가 태풍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난 피해를 줄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위험지역에 대한 선제적 통제 조치와 위험지역으로부터의 신속한 대피”라며 “과거 재난 대응의 미비점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인명피해 예방을 위해 중대본을 중심으로 관계기관이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이날 오후 5시를 기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2단계를 최고 단계인 3단계로 상향했다. 호우 위기경보 수준은 ‘경계’에서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올렸다. 중대본은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대응과 복구·수습을 총괄·조정하고 필요한 조치를 위해 행안부에 두는 기구다.

중대본은 새벽에 대피가 어려운 만큼 9일 오후까지 반지하가구, 산지주변, 하천변 마을 등 위험지역 거주민에 대해 대피소로 전면 대피를 완료시키도록 관계기관에 지시했다. 소방청도 이날 오후 6시를 기해 중앙긴급구조통제단을 가동하고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

제6호 태풍 '카눈(KHANUN)'이 우리나라를 향해 천천히 북상 중인 8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성산항에 피항한 어선들이 가득하다. 뉴시스
중앙 부처들은 각기 태풍 대비에 나섰다. 행정안전부는 태풍 북상을 앞두고 이날부터 9일까지 10개 시도(33개 시·군·구) 재해예방정비사업장, 급경사지, 저수지 등 위험지역에 대해 중앙합동긴급점검을 한다.

수해 복구도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태풍을 맞게 된 각 지자체는 긴장 속에서 대비 태세를 강화했다. 지자체들은 산사태·범람 우려 지역을 미리 살피는 한편 선박을 급히 대피시켰다. 특히 지난해부터 지하차도·주차장, 반지하 침수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지하공간 안전 조치를 강화했다.

가장 먼저 태풍 영향권에 드는 제주도는 이날 공무원과 자율방재단 등 통제 담당자를 지정해 인명피해 우려 지역 출입을 사전 통제했다.
마산어시장 일대 차수벽 가동 제6호 태풍 ‘카눈’의 북상을 앞둔 8일 방재당국 관계자들이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어시장 일대에 설치된 기립식 방조벽인 차수벽을 점검하고 있다. 태풍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설치된 차수벽은 9일부터 24시간 가동된다. 창원=연합뉴스
전남 지역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남도에 따르면 카눈이 2012년 여수와 고흥에 큰 피해를 안긴 ‘산바’와 비슷한 이동 경로를 보임에 따라 전남 동부권 등에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전남도는 지난달 장마철 피해 발생지역과 이번 태풍 피해 취약지역 및 재해위험지역을 긴급 점검했다. 경남도는 사전 구호시설·물품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경남도는 재난 발생 시 학교·체육시설, 공공·민간 숙박시설 등 1360곳을 이재민 임시주거시설로 지정·운영하고 있다. 이 임시주거시설은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사전 대피소로 활용한다. 부산시 역시 이날 취약 지역·시설을 긴급점검했다. 지난달 장마 때 추가 발견한 재해우려지역을 포함해 산사태·급경사지·침수우려지역 등을 계속해서 살필 계획이다. 태풍주의보나 풍랑주의보가 발효되면 개장 중인 부산지역 7개 해수욕장의 입수를 전면 통제하기로 했다.

산업계 역시 집중 대비 태세에 돌입했다. 태풍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조선업계와 해안에 공장을 둔 자동차·에너지·화학업계는 피해 최소화를 위해 사전 점검과 현장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태풍 영향권인 울산에 공장을 둔 현대차는 태풍과 호우에 따른 차량 침수를 막기 위해 사내 안전 구역으로 차량 5000대를 이동시켰다. 거제에 조선소를 보유한 삼성중공업은 안벽에 계류 중인 선박의 고정 로프를 보강하고, 터그선(예인선) 13척을 비상대기시켰다.

한편 기상청은 이날 오전 일본 도쿄 남동쪽 1500㎞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제7호 태풍 란이 카눈의 경로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한반도를 통과한 카눈은 11일 오전 북한 쪽으로 북상해 나가면서 열대저압부로 약화해 소멸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준호·김범수·곽은산·송은아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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