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욱 "웨딩사업 이어 K뷰티로 글로벌 확장···가수로서 도전도 계속" [CEO&스토리]
가수서 매출 1000억 CEO로
김태욱 아이패밀리에스씨 회장
“어머, 저 사람 가수 아니야?”
2004년 비 내리던 어느 날 밤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건장한 남성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더니 이내 주먹 다툼이 벌어졌다. 구경하려는 행인들까지 몰리며 조용하던 길거리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남성들을 비추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싸움에 휘말린 남성 중에 얼굴이 널리 알려진 유명 가수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막 벤처 사업에 뛰어들었던 가수가 회사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자 사채까지 쓰게 됐고 감당할 수 없는 이자를 요구하는 사채업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게 된 것이다.
사건 당사자인 김태욱 아이패밀리에스씨(114840) 회장은 그날을 20여 년 사업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처절했던 순간으로 꼽는다.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 회장은 ‘이대로 무너지지 않고 반드시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그날의 다짐은 오늘의 ‘연매출 1000억 원대 화장품 기업 최고경영자(CEO)’ ‘코스닥 상장사 대표’라는 타이틀의 밑거름이 됐다. 김 회장을 8일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만났다. 아이패밀리에스씨는 2000년 웨딩 사업으로 시작해 현재 K뷰티 열풍을 이끄는 화장품 브랜드 ‘롬앤’과 ‘누즈’ 등을 운영하고 있다.
20여년전 결혼 준비하며 웨딩사업 눈떠
IT활용 첫 '인터넷예식장' 내놨지만 실패
결혼 준비 플랫폼 '아이웨딩' 재도약 발판
1991년 데뷔한 김 회장은 어릴 적 주한미군방송(AFKN)에서 본 비틀스와 롤링 스톤즈를 꿈꾸며 가수의 길을 걸었지만 1998년 희귀 질환인 보컬디스토니아(성대 신경 마비) 진단을 받으며 더는 노래를 부르기 어렵게 되자 결국 2000년대 초반 활동을 중단한다. 그러던 중 배우 채시라와 결혼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웨딩 문화를 접했고 산업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발견하며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됐다. 김 회장은 “당시 웨딩 산업은 결혼식장부터 메이크업까지 고객에 따라 변하는 가격, 업계의 관행과 체계를 소비자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시장이었다”며 “이 같은 시장을 바꿔보자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좌충우돌 끝에 서울대 건축학과 출신 직장인, 정보기술(IT) 개발자, 사진작가 등이 모여 ‘아이웨딩’이라는 플랫폼을 개발했다. 아이패밀리에스씨의 창립 멤버이자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지금도 함께 회사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IT를 웨딩 시장에 결합해 보자며 당시 흔치 않았던 시도를 이어갔다. 오프라인 중심의 결혼 문화를 온라인으로 바꿔보자며 결혼식 생중계와 축의금, 선물하기 서비스를 도입한 ‘인터넷 예식장’을 연 게 대표적이다. 지금은 익숙한 서비스이지만 스마트폰은 물론 PC 보급률이 높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굉장한 파격이었다. 론칭 초반 40만 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너무 파격적이었던 탓일까.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수익 창출은 미미했고 주변에서는 “노래하던 사람이 엉뚱한 무대에 와서 삽질하고 있다” “연예인이 사업해서 성공할 수 없다”는 등의 혹평이 잇달았다. 김 회장은 직원들의 월급을 마련하기 위해 사방을 뛰어다녀야만 했다.
사면초가 상황에 처했던 김 회장을 살린 것은 결혼 준비 플랫폼 ‘아이웨딩’이었다. 예식장과 드레스·사진·메이크업 등 상품 비교 서비스를 제공했고 이용자 수가 급격하게 늘면서 매출이 100억 원대로 상승 곡선을 그렸다. 당시만 해도 예비 부부들이 온라인을 통해 한곳에 모여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 전무했기 때문에 입소문이 금방 퍼진 효과다. 2010년대 들어서는 한류 붐을 업고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서비스를 선보이며 ‘한류 웨딩’이라는 트렌드도 만들어냈다. 사업이 기지개를 켜던 시기에 가수로서의 경험도 빛을 발했다. 김 회장은 “공연 자금 마련부터 협찬 확보, 데모 테이프를 음반 가게에 돌리며 영업을 했던 경험이 사업가로서의 초석을 다지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사드 위기 이후 색조화장품 과감히 도전
퍼스널 컬러 전략 앞세워 '롬앤' 승승장구
亞·북미·유럽 등 진출···코스닥 입성까지
그가 화장품 사업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글로벌 웨딩 서비스 확장 계획이 중국과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갈등 등 외부 환경에 의해 제동이 걸리면서다. 당시 김 회장은 한류 열풍에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급속도로 달라지는 모습, PC에서 모바일 시대로의 전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을 통해 콘텐츠의 힘이 절대적인 공급자 시대에서 소비자로 넘어가고 있다는 확신을 했다. 이때 임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수없이 많은 회의를 거친 끝에 나온 아이템이 색조 화장품이었다. 산업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10~20대가 좋아하고 고객과 함께 만들 수 있는 대표적인 사업 아이템이 색조 화장품이라는 판단에서다. 확신이 선 김 회장은 1000여 곳의 웨딩 협력 업체 중 메이크업 전문가들과 소통하며 제품 기획에 나섰다. 특히 한국이 화장품 주문자부착생산(OEM)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성공 자신감을 높였다.
그 결과물이 2016년 블로그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으로 유명세를 탔던 뷰티 인플루언서 민새롬 씨와 협력해 내놓은 브랜드 롬앤이다. 출시 초반 롬앤을 비롯한 화장품사업부의 매출은 3억 원에 불과했지만 6년 만인 지난해에는 808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1000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릴 것으로 증권 업계는 보고 있다. 현재 아이패밀리에스씨 매출의 90% 이상이 화장품사업부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아이패밀리에스씨는 2021년 10월 코스닥 입성에도 성공했다. 롬앤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올리브영과 주요 e커머스, 일본 전역에서 색조 화장품 부문 1~2위를 다투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특히 매출의 60% 이상이 일본과 동남아시아·북미·중국 등에서 나올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다. 김 회장은 해외 고속 성장 배경에 대해 “해답은 늘 소비자에게 있다”며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디자인과 색상을 추천받고 불편함을 해결해 신제품을 내놓는 게 롬앤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웨딩 사업도 침구 브랜드 접목해 재정비
150명 임직원과 '하모니 경영' 이어갈것
한 예로 롬앤은 최근 10~3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간단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피부색을 진단하는 ‘퍼스널 컬러’ 개념을 화장품에 가장 먼저 도입한 브랜드로 꼽힌다. 김 회장은 롬앤의 이 같은 전략을 ‘콘텐덕트(콘텐츠+프로덕트)’로 정의했다. 콘텐덕트는 소비자들이 직접 제품 개발에 관여하고 두터운 팬덤으로 까지 이어지는 것을 뜻한다. 김 회장은 “팬들과 소통을 이어나간 효과 덕에 ‘저 가수는 내 작품이야’라고 생각하는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는 BTS가 대표적인 콘텐덕트 사례”라며 “롬앤의 고객들은 단순 소비 주체가 아닌 제품 탄생의 축”이라고 강조했다.
롬앤은 아시아와 북미를 넘어 유럽으로도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백화점인 갤러리라파예트 측의 제안으로 5월 말부터 2주간 K뷰티를 주제로 강연과 팝업스토어를 연 것이 대표적인 행보다. 현재 아이패밀리에스씨는 화장품 사업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웨딩 서비스 플랫폼의 새로운 도약도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노르웨이 하이엔드 침대 브랜드 ‘옌센’의 국내 총판을 확보하고 구스 침구 브랜드 ‘자리아’ 등을 시장에 선보였다.
사업가로서 김 회장의 최종 목표는 ‘임직원 모두가 서로 신뢰하며 즐겁게 꿈을 펼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김 회장은 “좋은 음악이 탄생하려면 아티스트 개개인의 개성과 각기 다른 악기의 하모니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며 “무대는 다르지만 150명의 임직원들과 150인조 밴드를 한다는 신념으로 서로 신뢰를 쌓아가며 하모니 경영을 이뤄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가수로서의 도전도 시대 변화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He is △1969년 경북 대구 △1991년 인하공업전문대 졸업 및 가수 데뷔 △2000년 아이웨딩닷넷 창업 △2016년 화장품 브랜드 ‘롬앤’ 론칭 △2021년 코스닥 상장 및 제58회 무역의 날 대통령 표창 △2022년 아이패밀리에스씨 대표이사 회장
신미진 기자 mjsh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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