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내수기업들 '생존 세일' 나섰다
소비 부진에 공장 재고 쌓여
자동차 등 내구재 산업 위주로
제품 가격 인하 경쟁 점입가경
경제회복 다급한 中 당국
중기·자영업자 추가 감세
중국의 7월 수출액이 또다시 두 자릿수 감소를 기록한 가운데 디플레이션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매출 부진으로 타격을 받은 기업이 앞다퉈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이면서 디플레이션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물가 하락이 지속될 때 소비자는 지출을 미루고, 이는 다시 기업의 실적 악화로 이어져 경기 부진이 심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의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0.4% 떨어져 2021년 초 이래 처음으로 하락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CPI 상승률은 2021년 1∼2월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후 줄곧 플러스를 유지해 왔지만, 올해 3∼5월 1% 미만을 보이다가 지난 6월 0%를 나타내는 등 지속적인 하락세에 있다.
2020년 말과 2021년 초의 일시적 하락과 달리 지금의 CPI 하락은 더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그 당시 CPI가 떨어진 주원인은 중국 밥상 물가를 대표하는 돼지고기 가격 하락이었지만, 지금의 디플레이션은 글로벌 수요 악화와 내수 부진 때문이어서다.
블룸버그는 "미국·유럽을 포함한 중국 등 최대 시장 소비자의 지출 감소는 공장 재고 증가로 이어져 디플레이션이 야기되고 있다"며 "중국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임대료, 가구, 가전제품 가격도 하락세에 있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내수 경기까지 위축되면서 가격 하락 압력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줄곧 내림세를 이어온 생산자물가지수는 전년보다 4.0% 떨어져 이 같은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블룸버그는 '리오프닝' 이후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 둔화 속에서 중국 기업이 생존을 위해 경쟁적으로 제품 가격을 인하한 것이 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은 특히 소비재 산업에서 두드러진다.
중국 원저우시의 한 수제신발 도매업자는 제로 코로나 정책이 해제된 후 신발 판매 호황을 기대했지만 매출 부진에 1년 전보다 제품 가격을 3%가량 내렸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윤을 줄여서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저장성에 위치한 원단 제조업체 '지아야오'의 한 매니저는 "올해 원가가 그만큼 올랐음에도 판매 가격을 5% 내렸다"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많은 공장이 판매가 인하에 뛰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불거진 자동차 제조업체 간 가격 전쟁도 이런 상황의 연장선상이다. 중국 증권일보에 따르면 자국 토종 자동차 기업이 잇달아 가격 인하를 발표하고 있다. 링파오자동차는 20만위안(약 3650만원)대 승용차를 2만위안(약 365만원) 깎아주기로 했으며, 체리자동차와 창청자동차 등도 가격 할인 행렬에 동참했다.
이 같은 가격 전쟁은 중국 자동차 기업의 판매가 예상처럼 크게 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일보는 "중국 자동차 기업의 상반기 판매 목표 달성률이 대체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하반기 판매량 제고를 위해 가격을 인하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중국의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소비 위축,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품 가격 하락이 장기간 이어지면 소비자가 지출을 미루면서 경제활동이 더 위축되고, 이에 따라 기업이 다시 물건 가격을 낮추면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 고리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일본이 수십 년간 겪었던 장기 침체로 귀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실질이자율이 높아지는 만큼 기업의 부채 상환 비용이 증가할뿐더러, 기업에 대한 대출을 촉진하려는 인민은행의 정책 방향이 힘을 잃을 수 있다.
디플레이션을 둘러싼 불확실성 때문에 인민은행이 추가 통화 완화 조치를 시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중앙은행 관리는 은행이 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하는 현금 양을 줄이는 등 일부 완화 조치를 시사했다. 블룸버그는 3분기에 중국의 정책금리가 10%포인트 인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 당국은 시장의 디플레이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최근 인민은행이나 국가통계국 당국자는 물가가 장기간 하락할 것으로 볼 근거가 없다는 의견을 반복적으로 내놓고 있다. 또 규제당국이 일선 투자기관 관계자에게 디플레이션에 대한 공개 논의를 자제하도록 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한편 더딘 경제 회복을 위해 중국 당국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세 부담을 추가로 완화하는 조처를 내놨다. 지난 7일 중국 매일경제신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국가세무총국은 전날 민간 경제 활성화 조처 28개를 발표했다. 우선 지난달 연구개발(R&D) 관련 비용에 대한 세금 공제 혜택을 받지 못한 납세자를 구제하기 위해 수혜 기간을 오는 9월까지로 연장했다. 또 R&D 프로젝트 사례를 수집하고 목록으로 제작·배포해 자격을 갖춘 중소기업이 정책 지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민간 기업이 제출해야 하는 자료를 줄이는 등 납세 절차를 간소화하고, 지방 세무당국과 민간 기업 소통 채널을 개설해 민간 기업의 요구에도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아울러 '국경 간 서비스' 자문 기능을 개선하고, 전 세계 세무당국과 협력해 해외 진출 민간 기업의 세금 관련 애로를 적극 해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 세무총국은 "민간 경제의 발전과 성장, 국민 경제의 지속적인 회복과 고품질 발전을 위해 관련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 한재범 기자 / 베이징 손일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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