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소득기준 그대로…정책 혜택서 소외된 ‘보통 국민들’

조문희 기자 2023. 8. 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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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소득 140% 늘어날 동안 대출‧공제 기준은 ‘제자리걸음’
“시대상·물가 반영해야” vs “부의 대물림 가속화” 여진도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 올해 2월 결혼식을 올린 A씨(29)는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남편과 소득을 합치면 연 1억원이 넘어 정부 지원 '디딤돌 대출'을 받을 수 없지만,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A씨의 소득으로 대출을 신청하면 저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분양 청약도 신혼부부 전형으로 넣으면 소득 기준을 초과하지만, A씨 혼자서는 청년 전형으로 지원이 가능했다. A씨는 청약에 당첨되기 전까지는 이른바 '위장 미혼' 상태를 유지할 생각이다.

# 지난해 10월 결혼한 B씨(32)는 양가 부모님께 결혼자금으로 1억원씩 지원받아 전세금에 보탰다. 전세금을 받으면서 차용증도 썼다. 현행 증여세 한도가 5000만원이기 때문에 이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 차용증을 써두지 않으면 추후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세무사 지인의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따로 이자를 드리진 않고 있다. B씨는 "요즘엔 다 이렇게 한다더라. 국가가 탈세를 부추기는 것 같다"고 했다.

국가가 정한 정책 기금 혜택 기준이나 세금 공제 대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꼼수'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소득 기준이나 공제 한도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라, 달라진 시대상이나 물가를 반영하지 못해 서민 다수를 소외시킨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이 같은 기준을 상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일각에선 부의 대물림을 가속화한다는 비판도 제기하고 있어 논란에 휩싸였다.

여권을 중심으로 주택 특례 대출 소득 기준이나 증여세 공제 한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일대 횡단보도를 걷고 있는 직장인들의 모습 ⓒ 시사저널 박정훈

국민 소득‧자산 2배 가까이 불었는데 정책 기준은 10년째 '동결'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당국은 증여세 공제 한도를 신혼부부 한정으로 최대 3억원까지 상향하는 세법개정안을 확정했다. 혼인신고 전후 각 2년 총 4년 동안 직계존속으로부터 증여받은 경우 기본 공제 5000만원에 더해 1억원을 추가 공제하는 게 골자다. 부부가 양가 부모로부터 공제 한도인 1억5000만원씩 증여받는다면 최대 3억원까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정부 관계자는 "10년간 5000만원이었던 기준을 현재 시대상에 맞게 현실화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실제 현행 증여세 5000만원 한도는 2013년 기존의 3000만원에서 한 번 상향된 뒤로 10년째 유지됐다.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13년 당시 국민 평균 순자산액은 2억6831만원, 10년 뒤 현재(2022년 발표 자료 기준) 평균 순자산액은 4억5602만원이다. 순자산이 평균 2배가량 증식되는 동안 증여세 한도는 제자리걸음이었던 셈이다.

서민의 내 집 마련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특례 대출의 소득 기준도 10년째 그대로인 상황이다. 주택도시기금이 운영하는 '내 집 마련 디딤돌대출'은 특정 소득 기준을 충족하는 서민에게 저금리로 주택 구입자금을 대출해주는 상품으로, 2014년 처음 출시됐다. 당시에도 소득 기준은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이하였고, 이는 현재까지 동일하다. 신혼부부이거나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일 경우에만 소득 기준이 7000만원으로 늘어난다.

주택 청약 등 각종 정책의 기준이 되는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 자료에 따르면, 2014년에 적용된 월평균 소득은 3인 이하 기준 460만6216원이다. 올해 적용되는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은 3인 이하 기준 671만8198원이다.

초점을 신혼부부로 좁혀도 사정은 비슷하다. 초혼 부부의 평균 소득을 집계하기 시작한 2017년 수치는 5278만원, 지난해 자료는 6400만원이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5년 전엔 디딤돌 대출을 신청할 수 있는 부부가 절반 이상이었지만 현재는 절반 넘게 혜택을 받지 못한다. 초혼 부부의 소득이 140% 늘어나는 속도를 정책이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대상도 바뀌고 물가도 많이 올랐기 때문에 각종 정책의 기준을 재정비하고 현실화하는 움직임은 바람직하다"며 "신혼부부든 청년이든 소외받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도록 정책을 세분화하고 다각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정책이 경기 속도 못 따라가…소외받는 서민만 늘어난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해 정치권에선 소득 기준과 공제 한도를 현실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여권에선 증여세 공제 한도 확대 이외에도 특례 주택자금대출 소득 요건을 상향하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난 3월 윤석열 정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신혼부부의 주택 구입 및 전세자금 특례 대출 소득 기준을 현행보다 1500만원씩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구체적인 적용 시점은 아직 언급되지 않았다. 국회에선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이 같은 소득 기준을 최대 1억원까지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행 특례대출이나 청약 기준이 이른바 '위장 미혼'을 부추긴다고 보고 재정비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소득 기준 상향이나 세금 공제 한도 완화의 혜택을 받는 게 소수에 그쳐 '부의 대물림'을 가속화한다는 지적이다. 국민의 평균 소득은 늘어났지만 소득 양극화는 더욱 벌어졌다는 판단에서다. 야권은 "이런 방안으로 혜택 볼 계층은 극히 적다. 많은 청년에게 상실감과 소외감을 줄 것(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라며 공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일단 당국은 증여세 공제 한도 완화의 경우 예정대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반대에 대해 국민의힘은 "새내기 부부의 자산 형성을 돕자는 것이지 빈부 잣대로 들이대선 안 된다. 새내기 부부마저 갈라치기 하지 말라(박대출 정책위의장)"고 반박했다. 기획재정부는 내달 11일까지 관련 세법개정안을 입법예고한 후 국무회의를 거쳐 오는 9월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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