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장애인인 김성훈(가명)씨에게 세상은 참 가혹하다. 남들은 쉽게 넘는 야트막한 언덕이 성훈씨에게는 태산처럼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장애는 물론이고, 어려운 가정 형편까지 성훈씨를 몰아붙인다.
상담소에 올 때마다 성훈씨는 자신이 품고 있는 불만 혹은 불안의 보따리를 늘어놓는다. 들어보면 아주 작은 일까지 그를 괴롭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요. 아마도 장애인카드를 불법적으로 사용한다고 오해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이 욕할 거 아니에요? (사실, 성훈씨의 장애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욕 안 먹으려고 가끔 일반 카드도 써요. 그렇지만, 그게 끝이 아니죠. 제가 일을 잘 못한다고 뒷담화 하는 사람도 많아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어딜가도 욕을 먹는 것 같아요."
두서 없이 이어지는 걱정과 불안, 혹은 세상에 대한 경계심. 성훈씨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는 맞지만, 어떤 이야기는 틀리다. 모든 것이 그저 그의 오해였던 적도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성훈씨의 이야기를 굳이 수정하지는 않았다. 초기 상담은 일단 내담자의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는 게 중요한 것도 있지만, 긴 시간, 또 다음 긴 시간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고 난 성훈씨의 표정이 어딘가 후련해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가족도 없어 가까운 대화 상대가 거의 없다시피한 성훈 씨에게 이런 걱정과 불안 혹은 불만을 쏟아낼 곳은 그 때 상담소가 유일했던 것 같다.
모든 게 마음 먹는 데 달렸다지만...
흔히들 사는 게 마음 먹는 데 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면 그 마음 먹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게 된다. 경제적 파산, 가족의 상실을 비롯해 신체적 정신적 장애나 질병으로 시달리는 인간사의 고통은 사실 '마음 먹기'로 극복하기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도 커진다. 모두 나를 깔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쉽게 들기도 한다. 사람들 혹은 사회에서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들에게 쉽게 마음을 바꿔 먹으라 이야기하는 것은 어찌 보면 오만한 일이다.
다만, 상담을 할 때 버려진 느낌으로 괴로워 하는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먼저 던져본다. 과연 세상은 '당신'을 버릴 수 있을까? 버린다면 과연 어떻게 버리는 것일까? 답은 대개 비슷하다.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사는데, 세상이 날 버린 게 아니면, 이 불행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질문은 다시 이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질문에서 질문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소위 말하는 '불행'과 '고통'의 원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끝끝내 그 고리를 파고 들어가 보면 수많은 비관, 비판, 억울함 속에서도 끝을 보면, 나를 놓고 싶어하지 않는 나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만나는 '나'만은 나를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을 상담하다 보면 '망한 인생'이라는 말을 생각보다 자주 듣는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다른 이들의 삶을 쉽게 엿볼 수 있게 된 것이 상황을 더 안좋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 먹고 잘사는 것 같은데 자신만 비참한 인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 나에게만 좋은 기회를 주지 않았고, 돈이 있거나 운 좋은 사람들에게만 특권을 줬다. 금수저로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부터 길에서 만난 행복하는 웃음을 짓는 사람들 모두 미울 수 밖에 없다.
팽팽하게 불어난 '비관', 무엇이 필요할까?
비관적 감정과 이런 피해 의식이 겹겹이 쌓이면 어떤 형태의 감정이 될까? 극도의 우울 혹은 극도의 분노가 끝이다. 이런 감정은 최근에 칼부림 사건처럼 묻지마 범행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극단적 자해나 자살로 끝이 나는 경우도 있다.
팽팽히 불어난 감정들이 어느 순간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일상 곳곳에서 바람 빼기 작업이 필요하다. 주기적으로 상담소를 찾아 하소연을 했던 성훈씨처럼 말이다.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을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열리는 사람들도 있다.
혼자만의 고통이라 여기지 말고 밖으로 꺼내야 한다. 꺼내어 놓는 것 만으로도 50~60%의 치료효과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보자, 과연 나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세상은 진짜로 나를 버릴 수 있을까? 그리고 나도 나를 버리고 싶어할까? 이어지고, 이어지는 질문의 끝에서 희미하게 답을 하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너를 절대 버리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내 자신을 말이다.
윤희경 센터장 (pmsy3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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