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이멕 클린룸은 연구원 '놀이터'···"열린 생태계가 시너지 원천"

루벤(벨기에)=강해령 기자 2023. 8. 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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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Shift 제조업大戰]<4> 스마트 테크시티 가보니― 유럽 최대 반도체 연구도시 루뱅
본지에 첫 공개한 12인치 클린룸
2000억 호가 ASML 노광장비 등
굴지 반도체사 장비 200대 '빼곡'
95개 국가서 온 5500명 연구인력
아이멕 장비로 제품 테스트 등 가능
'오픈 플랫폼' 글로벌 업계서 주목
벨기에 루뱅의 아이멕(imec) 300㎜ 웨이퍼 클린룸 전경. 사진 제공=imec
벨기에 루뱅의 아이멕(imec) 300㎜ 웨이퍼 클린룸 전경. 사진 제공=imec
[서울경제]

지난 6월 26일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약 25㎞ 떨어진 인구 10만 명의 루뱅. 루뱅의 글로벌 최대 반도체 연구개발(R&D) 기지 아이멕(imec)의 클린룸은 상당히 역동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루뱅은 아이멕이라는 걸출한 글로벌 반도체 R&D 기관 확보로 스마트 시티로 부상하고 있다. 루뱅의 인구는 10만 명이지만 구성원들은 모두 ‘알짜’ 인력이다. 루뱅 시내에는 아이멕을 바라보고 온 다양한 국적의 반도체 회사 연구원들로 북적인다. 이곳에 위치한 벨기에 명문 대학 ‘KU루뱅’의 위상도 올라가고 있다. 아이멕 본사는 KU루뱅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의 인재들은 아이멕의 연구 환경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고 체득하면서 벨기에의 든든한 인적 자원으로 자라나고 있다.

아이멕은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서울경제신문에 그들의 12인치(300㎜) 웨이퍼 클린룸을 공개했다. 축구장 두 개 크기인 7200㎡ 면적의 12인치 웨이퍼 R&D용 클린룸에는 글로벌 유력 반도체 회사 장비 약 200대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돼 있었다. 클린룸 곳곳에는 한국 반도체 장비 회사인 파크시스템즈의 설비도 눈에 띄었다.

클린룸의 백미는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였다. 클린룸 직선 통로의 끄트머리에는 네덜란드 ASML의 노광 장비 ‘NXE:3400B’가 위용을 드러냈다. 이 EUV 노광 장비는 대당 2000억 원을 호가한다. 동진쎄미켐 등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이 아이멕의 EUV 노광 장비로 기술 실험을 진행했다.

아이멕은 이 장비를 넘어 차세대 EUV 시대에 대응하는 하이(High)-NA 노광 장비까지 이 클린룸에 들일 준비를 하고 공간 확보 작업도 마쳤다. 아이멕은 인텔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하이-NA 양산 장비를 ASML로부터 공급받을 만큼 업계에서 위상이 높다. 또 하이-NA 장비 양산 전 단계에는 네덜란드 ASML 본사 바로 옆에 시제품 연구소를 만든다.

아이멕 벨기에 루벤 본사 전경. 사진제공=아이멕

아이멕의 규모 역시 단일 반도체 연구기관 중 세계 최대 수준이다. 12인치 클린룸 외에도 8인치 웨이퍼 클린룸을 포함한 이들의 연구 팹 총 면적은 1만 2000㎡(약 4000평)다. 지난해 이들의 매출은 8억 4600만 유로(약 1조 1911억 원)다. 이 가운데 69%가 삼성전자·인텔·TSMC·ASML 등 초우량 반도체 회사들의 자발적 투자에서 나오며 매출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아이멕과 벨기에 명문대 KU루뱅이 만든 박사 과정 프로그램에 직원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총수인 이재용 회장도 지난해 6월 이곳을 방문할 만큼 기술적 영향력이 크다.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회장이 뤼크 판덴호브(왼쪽) 아이멕 CEO와 아이멕의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R&D) 클린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아이멕은 1984년에 루뱅에서 시작됐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열린 생태계’다. 약 40년간 아이멕 연구원들은 자체 특허 확보에서 멈추지 않았다. 반도체에 관심이 있고 아이멕의 실험실에 관심이 있는 업체라면 누구나 회원사로 가입해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을 구축한 것이다.

이 플랫폼은 반도체 업계의 갈증을 해결했다. 특히 회원사들끼리 아이멕의 장비로 얼마든지 공동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점이 최고의 인기 비결이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모델이자 협업이 중요한 현대 반도체 생태계에 던지는 적잖은 울림이다. 아이멕에서 연구 디렉터 역할을 맡고 있는 김령한 박사는 “반도체 업계에서는 아이멕 클린룸이 마치 ‘놀이터’처럼 통한다”며 “아이멕과 회원사, 회원사들 간 시너지가 클린룸 안에서 극대화하면서 세계 최고의 반도체 선행 R&D 연구단지로 급부상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모델은 반도체 강국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2019년 일본의 첨단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사태 이후 소재·부품·장비 생태계 강화 붐이 일면서 2021년 대전 나노종합기술원에 국내 최초로 12인치 웨이퍼 테스트베드가 구축되기는 했다.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 형성된 특유의 대기업 R&D 의존도, 현재 반도체 업계 실정을 만족하지 못하는 전국 곳곳의 노후한 실험 인프라 등의 문제가 제기된다.

벨기에 루뱅의 아이멕 본사 전경. 사진제공=아이멕

플레미시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인구의 다양성도 아이멕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아이멕이 속해 있는 플레미시 정부의 지난해 지원은 아이멕 연매출의 25% 정도를 차지했다. 연간 2500억 원가량을 아이멕 운영에만 지원한 셈이다. 게다가 7월 유럽연합(EU)과 플레미시 정부는 아이멕의 1㎚ 이하 반도체 클린룸 지원을 위해 15억 유로(약 2조 1119억 원)를 쏟아붓겠다는 초대형 투자 계획까지 발표하며 첨단 기술 패권주의 시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연구 인원은 약 5500명이다. 95개 이상 나라에서 아이멕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플레미시 지역 내 920개 기관·기업과의 협력으로 벨기에 현지 고급 인력 공급 작업도 활발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아이멕은 무역과 협상에 강한 나라인 벨기에의 특성을 쏙 빼닮은 ‘중립적’ 경영 방식으로 세계 반도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며 “반도체 기술의 한계가 가까워지는 가운데 아이멕의 오픈 플랫폼과 협력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루벤(벨기에)=강해령 기자 h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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