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 “많이 물어보고 나와 대화하면서 진짜 연기 찾아간다”
지난 7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손석구는 솔직했다. 자신의 언행이 달리 포장되거나 오해를 낳을까 우려했지만 속내를 감추지는 않았다. 그는 지난 6월27일 연극 ‘나무 위의 군대’ 프레스콜에서 “가짜 연기가 싫어 연극에서 매체로 넘어갔다”는 발언으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곤욕을 치렀다. 티브이(TV) 뉴스에 출연해 해당 발언에 “사과”하고 “반성”했지만, 이 발언은 줄곧 그를 따라다녔다. 손석구는 “그 일로 위축될 필요는 없지만, 말을 조심하고 순화해서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 일이 디스전처럼 미디어에서 계속 양산되면서 하나의 가십거리로 다뤄져서 조심스럽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논란 기사가 쏟아질 때) 선배님(남명렬)과 이미 연락해 소통한 내용을 공개하라고 했지만, 손석구가 ‘그걸 굳이 알릴 필요가 있느냐’며 하지 않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손석구니까 공식 석상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내뱉고 또 사과, 반성했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대중의 생각이 곧 나의 생각인 연예계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배우가 ‘진짜 생각’을 말하고 깨닫고 배우는 과정을 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서다. 솔직함은 손석구가 배우로서 성공한 비결이기도 하다. 손석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한계에 부딪히고 깨닫고 배우는 과정을 거쳐 성장해왔다. 그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 ‘카지노’(디즈니플러스)를 작업했던 강윤성 감독은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현장에서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의 생각을 물어본다. ‘카지노’ 때도 그가 연기한 오승훈과 마크 사이 갈등 관계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는데, 이런 과정에서 더 좋은 방향을 찾았다”고 했다. 손석구도 “배우를 준비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많이 물어라’였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디피’(D.P.) 시즌2에서 그가 연기한 임지섭 대위도 한준희 감독한테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만들어졌다. 임지섭 대위는 시즌2에서 변화가 가장 큰 인물이다. 시즌1에선 안준호(정해인)와 한호열(구교환)의 대척점에 있는 군인으로 나오지만, 이번엔 나서서 군대 내 비리를 까발린다. 손석구는 “임지섭은 변하고 싶은 마음은 갖고 있었지만 자기 뜻과 다르게 상황이 전개되면서 그러지 못했는데, 시즌1 마지막에서 조석봉 사건을 겪으며 느낀 게 있고 자책도 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거 같다. 시즌2에서 사람에 실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임지섭 대위는 시즌2에서 가장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다. 철저하게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구자운(지진희) 준장과 재판에서 맞붙고, 자신이 좋아했던 후배 군인의 사망 사건을 조사하면서 진실을 알게 되는 등 요동치는 내면을 드러내는 장면도 많다. 손석구도 “이 사람(구자운)의 말 한마디가 곧 법이라고 생각했던 그를 면전에 두고 처음으로 소신을 말할 때는 후폭풍이 두려워 불안하면서도 진실을 밝히고 싶은 감정을 함께 드러내려고 했다. 바로 변하지 않고 갈팡질팡하는 게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손석구는 그를 스타로 만든 ‘나의 해방일지’를 비롯해 ‘멜로가 체질’(이상 JTBC) 등 드라마에서 주로 여러 감정이 중첩된 입체적인 인물을 연기했다.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는 초반에는 말도 없고 심드렁한 인물로 나오지만 후반부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조직폭력배였다. ‘연애 빠진 로맨스’ 멜로, ‘범죄 도시’ 악역 등 출연 편수에 견줘 역할이 다채로운데, 그의 눈빛이 이런 변화에 큰 도움을 줬다는 평가가 많다. 한 영화 관계자는 “일상 대화를 나누듯 얘기하는 그의 말투도 연기하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호불호는 있지만, ‘디피’ 시즌2에서는 이런 ‘손석구 화법’의 장점이 제대로 발휘됐다. 임지섭 대위는 법정 장면에서 군대와 나라를 향해 뼈있는 말들을 쏟아낸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왔습니다. 같이 생활하다가 누가 누구를 죽이는 일이 발생했는데 나라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증거가 없다,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그럼 그들을 무엇을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됐습니까”라는 호소는, 그의 일상적인 말투 덕에 더욱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나의 해방일지’로 주목받은 이후 작품을 하느라 일상이 단조로워졌다는 그는 이제 연출의 꿈도 다시 이뤄갈 예정이다. 이미 2022년 오티티 왓챠에서 단편영화 ‘재방송’을 연출한 바 있는 그는 “‘재방송’을 촬영하면서 너무 행복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있다. 다시 경험하고 싶다”고 했다.
한시간여 대화를 나누는 동안 손석구의 단단한 내면이 느껴졌다. 뜻밖에 동양철학이 거기 있었다. 그는 “(일이 없던) 30대 초반 집 앞 찻집에서 어르신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때 어르신들이 논어, 중용 등을 추천해줬다. 책도 보고 유튜브 강의도 들으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연기 공부와 마음공부를 하려고 했다. 원본으로 보고 싶어서 중국어 학원에 다닌 적도 있다. 요즘에도 내 안에 불순물이 많이 쌓였다 싶으면 보거나 듣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터득한 답은 이거다. “나 스스로와 솔직하게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 많은 답이 있다. 그게 진짜 연기라고 생각한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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