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을 사고파는 세상 엇갈리는 천국과 지옥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8. 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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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패러다이스'
'패러다이스'의 한 장면.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타이센, 엘레나, 막스. 넷플릭스

독일 영화 '패러다이스(Paradise)'가 8일 넷플릭스 영화 세계 2위로 올라섰다(OTT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 한국 순위도 전날 3위에 이어 한 단계 올라선 2위다. 입소문 덕분이다. '남은 수명을 사고파는 세상'이라는 상상력에 기반한 디스토피아 영화 '패러다이스'를 살펴봤다.

공학자 타이센은 남은 수명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타이센은 공개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35세에 죽은 모차르트가 80세까지 살았다면? 아인슈타인이 120세까지 생존했다면? 마리 퀴리는? 프리드리히 실러는? 그렇다면 지금 우리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타이센은 생명공학기업 '에온'을 설립하고, 에온은 노벨상 수상자에게 수명을 연장해준다. 인류는 열광한다. 세상의 지평이 바뀐 것이다.

하지만 수명이 재화가 된 시스템의 심층에는 '가진 거라고는 오직 젊음밖에 없는' 하층 인류가 자리한다. 체류 비자를 받으려는 난민도,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는 대학생도 목숨을 걸지 않으면 꿈을 현실화할 수가 없다.

주인공은 에온의 유능한 직원 막스다. 막스는 난민촌을 헤집고 다니며 수명과 돈을 교환해주는 스카우터로 일한다. 어느 날 막스가 거주하던 고층 아파트가 전소된다. 막스의 아내 엘레나는 남편 모르게 아파트 대출 2차 담보로 수명을 계약해놓은 상태였다.

엘레나는 수술대에서 '수명 40년 이식'을 강제집행당한다. 막스는 빼앗겨버린 아내의 삶을 원위치시키려 한다. 윤리도 법도 필요 없다. 수명 이식 기술에 반대하는 반체제 그룹 아담이 이 사건에 개입하면서 일이 점점 꼬여간다.

'패러다이스'는 시간의 의미를 영화 중심부에 두면서 빈부 불평등, 아파트 소유욕, 무국적 난민 등 이슈를 응축했다. '한 사람의 수명이 타인의 수명을 이식받아 연장될 수 있다'는 발상은 불평등한 세계를 은유한다.

가령 상위 0.001% 부유층은 너도나도 기후변화 기술에 거금을 투자한다. 자신이 지구에서 더 오래 살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반면 빈자들은 상황이 다르다. 18세 난민은 가족 3인의 체류 비자 발급에 필요한 70만유로를 얻기 위해 인생 15년을 기증한다. 소중한 20대를 통째로 포기한 것이다.

순식간에 40년을 빼앗긴 엘레나와 주인공 막스가 체념과 낙심을 지나 악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점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인간은 악인이 된다.

더러 단점도 눈에 띈다. 당초 임신한 엘레나가 검진 없이 에온에서 강제집행당한다는 점은 비현실적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비판 없이 수명을 공여받는다는 점은 개연성이 부족하다.

하지만 영화는 내내 시간의 소중함, 인간의 한계를 사유하게 만든다. 해변에 선 엘레나의 마지막 장면은 인간 삶의 조건을 일러준다. '커피 1잔 4분, 권총 1정 3년' 등 모든 비용이 수명으로 계산되는 세계를 그린 2011년 영화 '인 타임'을 떠올리게 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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