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그렇게 할 거면 그만둬라"
금융실명제는 모든 금융거래를 실명으로 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1993년 8월 12일에 시행됐다. 탈세, 조세포탈, 자금세탁, 불법금융거래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도입은 정부가 했지만, 시행은 거래가 일어나는 금융기관 몫이다. 은행의 대외소통 창구를 담당한 나는 일어난 모든 거래상황을 집계하고 보고했다. 시행 첫날부터 야근이 일상인 날이 이어졌다. 취합된 보고가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금융실명제는 내가 모두 한 것 같았다. 야근을 마치고 술에 취해 귀가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며칠 지나 집 앞에서 손주들을 보고 돌아가는 부모님을 만났다. 길거리서 우쭐한 기분에 금융실명제에 대해 몇 마디 하자 아버지가 따라오라고 호령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본가에 불려간 내게 아버지는 "네가 뭘 했다는 거냐?"고 물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 세 가지에 답을 기다리지 않고 "건방 떨지 마라"며 꿇어앉으라고 했다. 술김에 들었지만, 기억이 생생한 첫마디가 고사성어 '득의양양(得意揚揚)' 이다. '뜻을 얻어 날아오를 듯하다'라는 말이다. 원하던 바를 이루어 매우 만족한 모습을 뜻한다. 사기(史記) 관안열전(管晏列傳)에 나온다.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재상으로 3대의 군주를 섬기며 존망 받는 안영(晏嬰)이 수레를 타고 출타했다. 그 수레 모는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남편이 일하는 모습을 엿보았다. 마부는 머리 위에 펼친 큰 우산 아래서 채찍질하며 네 필 말을 몰았다. 의기양양하게 매우 흡족한 모습이었다[意氣揚揚 甚自得也].
마부가 일을 마치고 집에 오자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다. "안자(晏子)께서는 키가 6척이 채 안 되는데도 재상이 되어 제후들에게 명성을 날립니다. 바깥에서의 모습 또한 뜻과 생각이 깊고 현명해 보이면서 늘 자신을 낮추시더이다. 그런데 당신은 키가 8척이나 되면서 남의 마부로 있고 그런데도 스스로는 자신만만해 만족하고 있으니, 그래서 제가 지금 이혼을 하자는 것입니다." 마부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행동했다. 그가 변한 까닭을 묻자 마부는 사실대로 고했다. 곧장 반성할 줄 알고 바르게 변한 모습을 본 안영은 그를 천거해 대부(大夫)로 삼았다.
두 번째 질문이 "입사한 지 얼마나 됐냐?"였다. 10년 됐다는 대답을 들은 아버지는 바로 "그렇게 할 거면 그만 둬라. 너는 목적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버지는 "금융실명제를 만든 건 네가 아니다. 너는 떡잎일 뿐이다. 떡잎이 지우는 그늘이 얼마나 크겠느냐. 네 언행은 네가 만든 큰 음덕을 베푸는 것처럼 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네 직장은 튜브다. 모선에 끈을 매단 튜브다. 빌린 그 튜브를 타고 있으니 바다에 빠져 죽지만 않을 뿐이다. 착각하지 마라. 튜브 타고 이룬 그 일은 조직이 한 일이지 네 삶이 아니다. 그 튜브마저도 기껏해야 30년밖엔 더는 빌릴 수가 없다"라며 심하게 나무랐다.
아버지는 “줄잡아 30%의 사람들은 목표 없이 산다”라며 “목표 있는 사람들은 목표 없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고 만족도가 높고 더 건강하고 오래 살며 삶의 질도 높다. 목표가 없으면 방향성이 없고,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 지루하고 무의미해 한다”라고 했다. 이어 한 세 번째 질문이 “튜브 임차기한이 끝나면 어떻게 할 거냐”였다. 아버지는 “정처 없이 걷다가 갈 데가 정해지면 발걸음이 빨라지듯 목표는 삶의 분명한 방향과 동기를 부여한다”고 설명하며 삶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를 요구했다. “네가 앞으로 살아야 할 시대는 지금과는 다른 100세 시대다. 30년씩 나누면 3개기다. 사람들은 직장에 다니는 2기를 살기 위해 1기에 몸과 지식을 함양해 준비한다. 지금은 평균수명이 짧아 필요 없지만 3기를 살아야 하는 너는 2기에 그 준비를 해야 한다. 튜브 임차기한이 끝난 뒤 다가올 3기 30~40년을 위한 준비다”라며 1기보다 더 강도 높은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버지는 “준비 없이 주어진 3기에 소파에 누워 TV 채널만 돌리며 10년을 더 산 걸 삶이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목표를 세울 것을 재촉했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성공한 인생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거다”라고 정의한 아버지는 “원하는 것을 이루자면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도전이 성공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성공은 노력과 인내를 요구한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는 미래는 비극이다. 마냥 득의양양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며 그날 밤의 긴 나무람을 끝냈다. 내 가치를 알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게 자부심이다. 자칫하면 경계해야 할 자만심으로 흐른다. 서둘러 손주에게도 깨우쳐 줘야 할 소중한 인성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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