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사건 조사보고서 경찰에 안 넘기는 군…은폐·축소 논란
경찰이 수사할 사건인데 국방부 과민반응…'수사 방해' 논란 자초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고(故) 채수근 해병대 상병이 순직한 지 벌써 3주가 지났지만, 군이 아직 기초적인 자체 조사 결과 보고서조차 경찰에 인계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가 경찰의 신속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협조하긴커녕 진상조사를 진행한 해병대 수사담당자를 보직해임하고 '항명' 혐의로 입건해 군이 사건을 의도적으로 은폐·축소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권 민간에 넘긴 취지 형해화…진술 오염 우려도
8일 군 당국에 따르면 채수근 상병 사망 경위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채 상병은 지난달 19일 경북 예천에서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이에 조사에 착수한 해병대 수사단은 지난달 30일 오후, 채 상병이 소속된 해병대 1사단의 임성근 사단장을 비롯한 8명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초동조사 자료를 국방부에 보고했다.
그런데 서류에 결재까지 했던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돌연 이튿날인 31일, 자료를 경찰에 이첩하지 말고 보류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했다.
해병대 수사단장 A대령은 국방부의 보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지난 2일 자체 조사자료를 경찰에 인계했고, 그날 곧장 보직해임된 뒤 수사 대상으로 전환돼 압수수색을 당했다.
부대 지휘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사건인데, 오히려 해병대 수사 책임자가 가장 먼저 자리에서 물러났다.
국방부는 수사 책임자 옷을 벗긴 근거로 '군기 위반'을 든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휘부의 지시를 어기고 경찰에 자료를 이첩한 것이 "중대한 군기 위반 행위로서 즉시 보직 해임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사단장은 항명은 성립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변호를 맡은 김경호 변호사는 A대령에게 사건 이첩 보류 명령을 통보한 사람은 해병대 사령관과 국방부 법무관리관이라는 점을 들어 "수사 결과의 경찰 이첩을 지시한 국방부 장관의 원명령이 존재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수정 명령은 반드시 문서로 해야 하는데 수정 명령의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해병대는 이날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된 A대령에 대해 보직해임심의위원회를 열어 보직해임을 의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군인사법에 따라 중대한 군기문란에 대해서는 즉각 보직 해임이 가능하지만 일주일 안에 심의위 의결을 거쳐야 한다.
군 안팎에서는 참고자료일 뿐인 해병대 초동조사를 가지고 국방부가 지나친 반응을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어차피 수사는 경찰의 몫이고 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는지도 경찰이 판단할 문제다.
군사법원법은 2021년 군이 공군 이예람 중사의 사망을 은폐·축소하려 한 사건 이후 개정돼, 범죄 혐의점이 있는 군내 사망 사건에 대해선 민간경찰이 수사하도록 했다.
군은 수사 대상자들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입을 맞추기 전 조속히 초동조사 결과를 경찰에 넘기면 된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해병대 조사결과에 특정인과 혐의가 명시돼 있어 경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류를 들어 경찰에 제출된 해병대 수사자료를 곧바로 회수 조치했다.
군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간 배경을 고려하면 군이 축소·은폐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속속 드러나는 사고 당시 정황…책임 안 지는 지휘부
국방부가 경찰에서 해병대 초동조사 결과를 되찾아온 것이 사실상 '수사 방해'라는 비판도 있다.
국방부는 특정인의 혐의를 적으면 경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수사절차 훈령의 이첩 보고서 양식에는 '죄명'과 '범죄 사실'을 함께 적게 돼 있다.
이에 대해 전하규 대변인은 "형법 17조에 의하면 혐의에 대한 사실관계와 직접적이고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범죄 혐의를 적시하는 것"이라며 "그렇지 않은 경우엔 해당 인원도, 해당 인원에 대한 범죄 혐의도 적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고 당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국방부가 통념에 어긋난 무리한 법조 방패를 세운다는 비판 여론이 높다.
연합뉴스 취재에 따르면 채 상병은 장갑차도 철수한 급류에 투입되면서도 구명조끼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안전장치조차 착용하지 않았다.
군인권센터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이 소속됐던 중대의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 동료 병사들의 제보 등을 근거로 해병대 지휘부가 무리한 수색 지시를 내려 채 상병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 조사 결과 임성근 사단장은 사전에 주요 임무가 실종자 수색이라는 것을 공지하지 않은 채 실종자를 찾으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장병들은 구명조끼가 아닌 삽과 곡괭이 등만 쥔 채 불어난 물에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군 안팎에서는 병사가 사망에 이른 사고에 군이 법적 책임은 차치하고라도 도의적 책임조차 묻지 않는 행태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임성근 사단장은 지난달 28일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해 사퇴 수순으로 여겨졌지만, 해병대는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지 사퇴는 아니다"라고 한 발 뺐다.
전하규 대변인은 임성근 사단장에 대해 아무런 인사 조처가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상급 지휘관이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 장관이 보고서 결재까지 하고서 갑자기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한 것을 놓고 해병대 지휘부의 책임을 무마하려는 '윗선'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전 대변인은 "윗선 개입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해병대 보고서에 기재된 사람 가운데 절반이 하급 간부 또는 초급 간부다. 그들의 업무상에 어떤 과실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범죄 혐의와 상당하고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장관께서 법무 검토를 해보라고 지시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 대변인은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보고서를 국방부 조사본부에 다시 맡겨 군이 재조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선 "아직 결정된 건 없다"며 "법적 추가 검토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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