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그늘 안 찾아도 돼 좋네요” 제주 이동노동자 쉼터 ‘혼디쉼팡’ 가보니
올해 2월 개소한 연동센터 포함 3곳 운영
폭염에 7월 한달 이용객 전달보다 30% 증가
“요즘처럼 땡볕이 내리쬐는 바깥에서 콜 기다리는 게 얼마나 고역인데요. 쉼터가 없었을 때는 그늘 찾아 다니는게 전부였죠. 봄과 가을은 어찌 버티는데 여름이나 겨울은 진짜 힘들어요. ‘에라 모르겠다’하고 일을 접고 그냥 집으로 들어갈 때도 있었어요. 이제는 시원한 쉼터에서 쉴 수 있어 체력도 충전되고 다시 일할 힘도 생깁니다.”
지난 3일 오후 제주 연동의 누웨마루거리 한 건물 7층에 위치한 이동노동자 쉼터 ‘혼디쉼팡’ 연동센터에서 만난 김모씨(47)는 “8년째 이 일대에서 퀵서비스 배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커다란 TV를 앞에 둔 소파에 앉아 다른 배달기사들과 함께 뉴스를 보거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휴식을 취했다.
김씨는 “365일 휴일 없이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하루 12~13시간을 일하는데, 올해 더위는 유난히 힘들다”고 했다. 이어 “그런 와중에 쉼터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설마 했는데, 실제 와보니 너무 쾌적하고 동료들과 정보교환도 할 수 있어 시간 될 때 마다 찾는다”고 말했다.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리면서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가 주목받고 있다. 거리의 열기를 고스란히 안고 일하며 건강이 위협받는 이동노동자들에게 쉼터는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
제주도는 지난 7월 한달 제주지역 3곳의 이동노동자 쉼터 ‘혼디쉼팡’ 이용횟수는 5129회로, 한달전(3938회) 보다 30.2% 늘었다고 8일 밝혔다. 7월 한 달 장마와 폭염이 이어진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이동노동자 쉼터는 대리운전기사와 퀵서비스 배달기사, 학습지 교사 등과 같이 업무장소가 일정하지 않고 이동하면서 업무를 하는 노동자의 휴식권 보장을 위한 공간이다. 제주에서는 2019년 8월 제주시청에 첫 쉼터가 생긴 이후 2022년 8월 서귀포시, 올해 2월 제주시 연동에 잇따라 문을 열었다. 다른 지자체 역시 이동노동자 쉼터를 확대하는 추세다.
이동노동자들은 회원으로 등록하면 3곳의 쉼터를 자유롭게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주말에는 오후 4시부터 다음날 9시까지 운영되는데, 무더위가 이어지자 이달에는 무인 시스템을 도입해 주말에도 24시간 운영한다.
올 상반기까지 쉼터에 등록한 이동노동자는 모두 91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47명) 보다 66.5% 늘었다. 올 상반기 이용횟수도 2만84회으로 전년동기(1만6863회) 보다 19.1% 늘었다. 이는 상가와 관광숙박업소, 주택이 혼재한 번화가인 연동에 추가로 쉼터가 생긴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동노동자들 사이에서 쉼터가 입소문을 타고 있고 폭염과 혹한, 극한 호우와 같은 이상기후가 잦아진 것도 쉼터 등록자가 늘어난 원인이기도 하다.
TV와 안마기, 생수 등 편의시설 갖춰
평일 24시간 운영, 각종 교육·상담도
혼디쉼팡 쉼터는 공통적으로 TV와 소파, 안마기계, 음료수 등을 갖춰 이동노동자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용공간에는 TV와 소파 등이 있고, 남성과 여성 휴게실에는 각각 안마 의자와 발 마사지 기계, 소파가 갖춰져 있다. 사물함과 퀵보드 충전시설, 컴퓨터와 프린트, 냉장고 등의 편의시설도 마련됐다.
이용고객은 시간대와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20~30대가 많이 이용하는 주점 등이 밀집한 제주시청 쉼터에는 대리기사의 이용이 많은 편이다. 연동센터는 퀵서비스 배달기사와 대리운전 기사가 비슷한 수준으로 이용한다.
서귀포시는 대리기사와 배달기사 이외에도 노인 등에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지원사의 이용 빈도가 높다. 또 낮에는 퀵서비스 배달기사가, 밤 시간대에는 대리기사들이 더 이용한다.
이동노동자들의 만족도는 높다. 제주도가 지난해 제주시청 쉼터 이용객 2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쉼터의 쾌적함, 각종 시설에 대한 만족도가 90% 이상으로 나타났다. 시설을 앞으로도 계속 이용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100%가 ‘그렇다’고 답했다. 쉼터에서는 이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노무와 금융, 법률 상담이나 교육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최희영 혼디쉼팡 사무국장은 “한달에 한번 제주시청 쉼터에서 변호사·노무사가 무료 상담을 하고 있고, 지난 5월에는 세무교육을 하기도 했다”면서 “기존 3곳의 쉼터 이외에 다른 곳에도 이동노동자를 위한 공간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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