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77〉무작위란 쉬운 답의 반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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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터넷으로 뭔가를 신청할 때였다.
누군가 그럴 듯한 답에서 고개 끄덕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원인을 모른 채로 할 수 있던 쉬운 대답이 무작위이자 임의성이란 것이었던 셈이었다.
혁신은 무작위란 쉬운 답의 반대편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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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터넷으로 뭔가를 신청할 때였다. 화면의 입력난을 채워나가다가 몇 군데 공란을 채울 수가 없었다. 빈 칸 위로 커서가 옮겨가야 하는데 몇 번인가 해보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웹사이트 하단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했다. 담당자가 받기에 상황을 설명했다. 자신의 컴퓨터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내가 “거참 이상한 일이네요” 했다. 그러자 “그러게요. 그래서 컴퓨터에 귀신이 산다고 하잖아요.” 한번도 상상해 본적 없는 대답에 조금 당황이 됐다. 원인을 모르겠다는 설명이라 싶었다. 그 후 해결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원인이 다른 것이었던 건 분명하지 싶다.
혁신이란 무얼까. 누군가 그럴 듯한 답에서 고개 끄덕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것에 가벼운 위트나 기지가 소용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많은 혁신은 '그게 그거지'란 무지와 '잘 해야지'란 무심함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찾은 답이란 걸 우리는 이제 안다.
1980년 즈음에 제법 잘 나가는 기업들은 공정관리에 통계적 관리차트(control chart)라는 것을 사용하곤 했다. 여기에는 세 개의 평행한 선이 있었는데, 그중 중심선은 제품의 품질이나 성능에 대한 목표값을 나타냈다. 물론 그 위와 아래의 선은 허용 가능한 상한과 하한을 의미했다.
각 제품의 성능은 점으로 표시됐는데, 대개 중심선 주변에 흩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이즈음 누가 이렇게 흩어져 있는 이유를 물으면 공정에는 임의성이 있다는 답을 듣고는 했다. 실상 '모른다'는 것의 고상한 표현인 셈이었다.
하지만 이후 품질경영은 이 프로세스 임의성이란 게 없음을 많은 기업에 가르쳐줬다. 목표값에서 벗어나는 모든 편차에는 그 나름의 원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품질 운동은 이러한 추가 요소를 식별하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걸 제어할 수만 있다면 품질 목표를 맞추고 검사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결국 원인을 모른 채로 할 수 있던 쉬운 대답이 무작위이자 임의성이란 것이었던 셈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중 흔한 조언이 바로 '고객에서 찾아라'이다. 과연 그럴까.
어느 교재 업계가 시험 준비생에게 뭐가 더 필요하냐고 물었다. 주제들을 더 깊게 알 수 있으면 한다고 했다. 출판사들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 그래서 참고용 자료를 모은 웹페이지며 교재 표지엔 CD를 끼운 책이 유행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매출은 늘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많은 비용을 들인 후에 출판사들이 깨달은 건 분명했다. 그들의 표현이 무엇이든 대부분 준비생에게 필요한 건 가능하면 덜 읽고 더 높은 점수를 얻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한때 많은 기업들이 뭐라도 혁신할 거리를 찾아 나섰다. 많은 기업들이 지금 자신들이 찾은 것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고민스러워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묻는다. 하지만 대개 찾은 대답은 “잘 해야지”나 “열심히 해야지”처럼 보인다. 그리고 회의는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건 바른 답도, 적절한 공감도 아니다. 정작 많은 혁신이 이미 이때 이렇게 실패한다.
우리는 모두 모두 컴퓨터에 귀신이 살지 않음을 안다. 품질운동이 증명해 보였듯 혁신관리의 동학 역시 이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혁신을 잘 설명할 수 있다. 내가 진정 뭘 하고 있는 지 아는 것만으로 이것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우리는 안다.
혁신은 무작위란 쉬운 답의 반대편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다. 단지 이곳에서 혁신이 시작되기도 진즉에 실패하기도 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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