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 WCS, 아시아 몰락 원인은 '시간관리' 실패
세계 최고의 듀얼리스트를 가리는 '유희왕 월드 챔피언십 2023(이하 WCS 2023)'에서 TCG권이 강세를 보이고, OCG권이 부진을 겪은 근간에는 서든데스 룰에 대한 시간 관리 능력과 덱 픽에 대한 유연한 사고에 있었다.
유희왕은 서로 다른 금제를 사용하는 아시아 지역의 OCG권과 유럽/아메리카 지역의 TCG권으로 나뉘어 있다. 2013년 8월부터 유럽/아메리카 지역이 자체적인 금제를 적용하며 환경이 분리됐다. 이로 인해 TCG권 지역은 OCG와는 다른 독자적인 환경이 만들어졌다.
서로 다른 금제를 적용하는 만큼 WCS는 두 지역 리스트를 모두 공유하는 통합 금제가 적용된다. 각 지역에서 어느 한쪽이라도 금제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카드는 WCS에서의 사용에 제약이 걸린다. 가령, '증식의 G'는 OCG 금제에서는 무제한이지만, TCG권에서는 금지이기에 WCS에서 사용할 수 없다.
WCS 2023은 대만 대표 'Takagi' 지안유 지안이 '듀얼 링크스'에서 우승한 것을 제외하면, 완벽한 TCG의 승리였다. 오피셜 카드게임 종목에서는 모든 OCG권 선수가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고, '마스터 듀얼'은 전원 조별 탈락의 쓴맛을 봤다.
표면적으로는 메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증식의 G'가 없는 환경에 OCG 선수들이 적응하지 못한 것이 패배 요인으로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WCS에 참가한 선수 및 전문가들은 가장 큰 이유로 WCS 2023부터 적용된 서든데스 룰,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시간 관리에 대한 노하우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고 진단했다.
서든데스 룰이란 정규 시간 40분이 지난 시점의 턴 플레이어가 턴 종료 시 라이프 포인트(LP)가 더 많은 쪽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OCG 지역은 엑스트라 턴(ET)을 사용하며 정규 시간 40분이 지난 시점의 턴 플레이어로부터 4턴 이후 LP가 더 많은 쪽이 승리한다.
마스터 듀얼 한국 대표 '김렛' 고병진 선수는 WCS 2023에서의 OCG 지역 부진의 원인을 "증식의 G 유무의 차이가 크다는 의견이 많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라며 "G가 금지였던 WCS 2018, 2019는 OCG 우승이었다. TCG와 OCG 차이를 G가 갈랐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증식의 G의 차이보다는 WCS 2023부터 적용된 서든데스 룰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와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이라며 "엑스트라 턴이 아닌 서든데스 룰은 OCG 지역 선수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반면, TCG 선수는 YCS를 비롯한 각종 대회에서 수없이 해온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OCG 지역 선수 일부가 서든데스를 승리 수단으로 활용했다. 일례로 4라운드 당시 태국의 사타난타나 룽노파쿤시 선수는 불리한 2세트 상황에서 일부러 길게 전개하며 시간을 끈 뒤 3세트 서든데스에 돌입, '레드 데몬즈 드래곤 스카라이트'의 번 데미지로 승리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김렛은 서든데스에 대한 경험 차이가 경기 시간에 대한 배분과 조율, 상황 대처 능력의 차이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그 근거로 대부분의 OCG 선수가 서든데스를 크게 의식하고 덱을 구성했지만 실질적으로 유효하지 않았다는 점, 시간 관련 경고 대부분이 OCG 선수였다는 점을 들었다.
상대방에 대한 리스펙도 이어졌다. 김렛은 "시간 관리에 대한 TCG 선수들의 엄격한 마인드, 그리고 이것에 대한 프로페셔널한 접근까지 배울 점이 많았다"라며 조별 스테이지에서 만난 유럽의 'Bohdan T' 보단 템닉 선수가 자신의 시간 관리 실패에 의한 패배를 'too slow'라고 인정하는 걸 보고 확실히 느꼈다고 회상했다.
'UDS 2017 키씸미' 우승자 제프 존스도 시간 관리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지난 4월 "TCG 선수의 플레이가 느리다고 생각되면 유튜브를 키고 OCG 선수의 플레이를 봐라"라는 트윗을 재인용하며 "봐라. 결국 OCG 선수는 단 한 명도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했다. 플레이가 매우 느리고 경고도 많이 받았다"라며 "TCG 선수 그동안 정말 많은 노력을 해왔다"라며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칭찬했다.
김렛 선수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보는 TCG 선수들의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OCG권, 특히 일본은 특정 소수 덱 이외 덱은 외면받기 일쑤"라며 "OCG 내 다른 지역은 그래도 제법 여러가지 덱들이 시도되지만, 유독 일본만큼은 그러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WCS 2023 우승덱 '드래곤 링크'다. 김렛은 "드래곤 링크는 오직 일본만이 저평가했고 쓰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드래곤 링크는 대부분이 인정하는 최고의 덱이었다. 꼭 드래곤 링크가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TCG 선수들의 덱픽이 OCG 선수보다 적합한 선택이 많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분석했다.
덧붙여 김렛은 "증식의 G의 금지가 여러가지 시도를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G를 받았을 때를 생각해야 하는 OCG보다 다양한 트라이를 해볼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것만을 근거로 한다면, G가 있는 마스터 듀얼에서의 TCG 성과를 설명하기 어렵다"라며 "여러모로 TCG 선수들의 사고가 유연하고, 적응 능력이 좋았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사고의 유연함은 대회 결과가 증명했다고 본다. 예를 들어 'Jesse Kotton' 제스 코튼의 티아라멘츠가 있다. 마스터듀얼에서 강하다고 평가받던 일적, 초융합, 삼전 등을 티아라멘츠에 과감하게 전부 투자했다. 실제로 가장 강력한 캐리를 보여줬다. 이런 유연한 사고는 우리도 배워야 할 점"이라고 강조했다.
anews9413@gametoc.co.kr
Copyright © 게임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