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강 사태로 드러난 중국 정치의 민낯[이종섭의 베이징 리포트]
‘중국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시작된 듯’
매년 이 맘때면 국내외 언론에 어김없이 나오는 기사 제목이다. 지난주에도 홍콩 매체발 기사를 시작으로 중국에서 올해 베이다이허 회의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베이다이허 회의 관련 기사는 늘 확정형이 아니다. 단정적으로 회의가 시작됐다거나 끝났다고 보도되는 일이 없다. 회의 개최 사실과 내용이 모두 비밀에 부쳐지기 때문이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매년 7월 말에서 8월 초에 개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전·현직 지도부들이 여름 휴가를 겸해 베이징 동쪽의 해변 휴양지 베이다이허에 모여 중요 현안을 논의하는 비공개 회의다. 이는 1950년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다. 동시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중국 공산당의 ‘밀실 정치’를 상징한다.
중국 정치는 늘 불투명하고 불친절하다. 결정 과정이나 배경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일이 거의 없다. 정책 결정 내용도 특유의 추상적인 언어들로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 발표 내용을 보다보면 그 배경과 의미를 단숨에 이해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최근 중국 정치의 불투명성과 비밀주의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 있었다. 친강(秦剛) 전 외교부장 ‘실종’ 사건이다. 지난해 말 외교부장에 임명된 친 전 부장은 지난 6월25일 베트남·스리랑카 외교장관과의 회담을 끝으로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한 달만인 7월25일 명목상 최고권력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결정으로 외교부장직에서 면직됐다.
시진핑 집권 3기 첫 외교부장이자 중국 최연소 외교부장에 발탁된 그가 7개월만에 전격 낙마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전임과 전전임 외교부장이 6~10년간 외교부장을 지낸 뒤 곧바로 정치서열을 끌어올려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을 맡은 것과도 대조적이다. 일국의 외교수장이 불명확한 이유로 1년도 안돼 갑자기 자리에서 물러나고 행방마저 묘연해진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초유의 상황에서 더 납득이 안 되는 건 ‘모르쇠’로 일관하는 중국 외교당국의 태도다. 중국 외교부는 친 전 부장의 상황에 대해 ‘제공할 정보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친 부장이 공식석상에서 사라진 후 중국 외교부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입장은 ‘신체(건강) 원인’ 때문이라는 한 줄짜리 설명 뿐이다. 불친절한 설명과 비밀주의에 당연히 의혹은 증폭되기 마련이다. 중병설과 불륜·혼외자설, 간첩사건 연루설에 권력 암투설까지 온갖 소문과 추측이 난무하지만 그 진위 여부 역시 확인할 길은 없다. 시간이 지나도 진실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 정치시스템의 불투명성과 비밀주의는 시 주석 집권 이후 1인 권력 체제가 강화되면서 더 심화됐다는 평가가 많다. 친 전 부장 단기 낙마는 실질적 인사권을 가진 시 주석의 인사 실패로도 볼 수 있다. 도저히 직을 수행할 수 없는 건강상의 이유라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고, 여타 스캔들이나 모종의 사건 연루설이 사실이라면 인사 검증 실패로 봐야 한다. 어찌 됐든 그의 낙마는 집권 3기를 시작한 시 주석에게 정치적 타격이며, 중국 정치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임명 7개월만에 아무 설명도 없이 외교수장을 해임하고 고령의 전임자를 도로 그 자리에 앉힌 것 자체가 외교적 망신이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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