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과 아픔, 그리고 희망…절친 3인방이 표현한 ‘광장’이란

2023. 8. 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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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친구 황민왕·이일우·성시영
15일 세종문화회관 ‘광광, 굉굉’ 공연
실험에 그치지 않는 보편성의 확보
짧게는 20년, 길게는 25~26년의 인연을 맺어온 절친 3인방이 뭉쳤다. 잠비나이 이일우,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성시영, 타악 연주자 황민왕(왼쪽부터)은 ‘광광,굉굉’을 통해 광장의 목소리를 담은 음악을 준비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각자의 길을 성실히 걸어온 세 친구가 만났다. 잠비나이 이일우,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성시영, 타악 연주자 황민왕. 83년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인 세 사람은 짧게는 20년, 길게는 25~26년의 인연을 맺었다. 국악중고등학교 시절 ‘피리 실기’ 1등을 도맡았던 성시영은 이 ‘새로운 조합’의 첫 단추였다.

최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세 사람은 “안 보면 후회할 공연”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달렸고, 잘 버텨왔던 세 사람에겐 이번 공연은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40대 초반 어느 날 만난 이 공연 이후로 (우리의) 음악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기로가 될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황민왕)

세종문화회관 여름 축제인 ‘싱크넥스트’의 섭외를 받고, 성시영은 두 친구를 떠올렸다. 실험성과 창의성에 방점을 두는 축제에 전통 기반의 새로운 음악세계를 구축해온 이들은 잘 맞는 짝이었다. 세 사람 모두 잠비나이(이일우), 음악그룹 나무(성시영, 황민왕), 블랙스트링(황민왕) 활동으로 경계와 장르를 넘어서는 것엔 주저함이 없었다. 이들 셋이 모여 단독 공연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연은 세 친구를 비롯해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김지현(생황)·윤지현(가야금), 미디어아티스트 윤제호가 함께 한다.

잠비나이 이일우,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성시영, 타악 연주자 황민왕. 임세준 기자
“저항과 아픔, 평화의 공간”…광장의 음악

주제는 ‘광장’이다. 성시영이 큰 틀을 짰다. 공연의 제목인 ‘광광, 굉굉’ 역시 광화문 광장과 굉음에서 따왔다. 성시영은 “세종문화회관에서 14년 정도 일을 하면서 매일 광장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며 “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세 사람이 떠올린 ‘광장’의 이미지는 복합적이다. “저항과 아픔의 상징이면서도 평화의 공간”(황민왕)이다. 성시영은 “늘 북적이고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축제의 공간이자 평화의 상징”이라고 했고, 이일우는 “아픔을 호소하는 시위를 위해 모이는 공간이자, 역사의 비극을 품은 공간”이라고 했다.

광장이 품은 이미지는 고스란히 음악이 됐다. 음악의 키를 쥔 사람은 이일우였다. 2010년 데뷔, 한국대중음악상을 두 번(2013년, 2015년)이나 수상한 잠비나이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악장 활동을 겸하며 ‘음악의 경계’를 넘나든 그는 이 공연을 위해 5~6개의 신작을 썼다. 이일우는 “광장의 아픔을 담으면서도,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라는 넓은 공간감도 담아냈다”고 말했다.

“이 곡을 광장에 서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줘야 한다면, 일상을 편안하게 보내는 사람이나 단체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광장 구석에서 혼자 피켓을 들고 선 사람, 자기만의 사연을 안고 혼자서만 목소리를 내는 외로운 사람이 될 것 같아요. 이 음악이 그들에게 울림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황민왕)

동갑내기 세 친구 이일우·성시영·황민왕이 오는 15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광광, 굉굉’으로 뭉쳤다. 임세준 기자
‘체질 개선’에 가까운 음악적 실험

‘광광, 굉굉’을 통해 세상에 나오는 음악 안엔 세 사람의 지난 시간이 빼곡히 담겼다. 이들은 각자에게 요구된 기대를 수행하면서도, 그것을 깨부수고 뛰어넘는다.

공연에서 다루는 악기만 해도 피리, 신디사이저, 일렉트로닉 기타, 가야금, 양금, 타악기 등 총 8개. 기존의 주법을 뒤바꾸고, 전통악기와 전자음악 사운드가 어우러져 새로운 장르로 규정할 만한 음악이 나온다. 이일우는 “그간 전통악기와 전자 사운드의 결합에선 전자가 후자를 지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엔 양쪽 모두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음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늘 하던 방식의 공연은 아닐 거예요. 타악 연주자 황민왕, 피리 연주자 성시영이 전통 선율을 연주하는 모습을 기대한다면 그 기대에선 완전히 벗어난 공연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어요. 색다른 모습이면서도 이 사람들이어야 가능한 연주, 낯설지만 이들이어야만 하는 공연이에요.” (이일우)

황민왕 성시영에겐 몇 가지 ‘도전적 과제’가 주어졌다. 황민왕은 “음악에 있어 장르를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지만, 장르적으로 허물고 만드는 데에 있어 (이) 일우 씨가 최전방에 서있다”며 “(이일우가) 주는 임무를 어떻게 완수하느냐에 따라 곡이 달라지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겐 과제 수행 과정이 ‘체질 개선’과도 같았다고 한다. 기존의 것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늘 입고 다니던 옷을 다르게 보이기 위해선 옷을 고치거나, 체형을 고치거나, 얼굴을 바꾸는 방법이 있어요. 이번에 우리가 한 것은 형식적인 것뿐 아니라, 개개인의 체질 개선이었어요.” (황민왕)

음악감독 이일우가 두 사람에게 요구한 주법도 흥미로웠다. “화아아아아아 하고 불어달라”거나, “목소리를 흐느끼듯이, 숨을 쉬듯이” 피리를 불어달라는 추상적 요구에 친구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웃음기도 싹 뺀 ‘진지한 요청’이었다.

“곡을 설명할 때 단어에 가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의성어 의태어를 많이 쓰더라고요. 제 딸이 들으면 100% 이해할 만한 설명이었어요. (웃음)” 황민왕의 이야기에 이일우가 다급하게 말을 보탠다. 그는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기도 했고, 우린 소리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니 소리로 말하면 더 전달이 잘 될 것 같았다”며 웃었다.

그 과정에서 ‘실험적 시도’가 나온다. 대나무를 깎아 만든 가느다란 채로 줄을 치는 타현악기 양금은 기존의 주법을 뛰어넘었다. 전통이 추구하는 양금 연주의 핵심은 ‘정확성’이다.

“땅땅땅 하고 정확히 맞아야 소리가 나는 악기인데, (이)일우는 옆에 맞아도 괜찮으니 ‘틱 탁 타다다탁’ 소리를 내달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것 역시 음악이라고 보는 거죠.” (성시영) 정확한 음정과 전통적 연주 방식을 벗어난 ‘새로운 음악’은 이 공연이 의도하는 방향성이기도 하다.

“음정이 정확히 딱 맞는 것보다 그게 훨씬 좋았어요. 양금에 채가 껴서 빠지는 소리가 나면 그동안은 이것이 음악인지 아닌지 논쟁거리가 됐는데, 이 공연을 통해 그것이 논란이 아닌 음악이라고 결론이 내려지면 좋겠어요.” (황민왕)

새로운 시도를 통해 두 사람은 음악 확장의 경험을 하고 있다. 악기 하나로 총천연색 연주와 ‘즉흥의 묘미’를 선보였던 황민왕은 “이전엔 장구 하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엔 음악에서 필요한 소리의 악기가 무엇인지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성시영도 마찬가지다. 그는 “전통음악의 기준에서 피리, 태평소를 잘 분다는 기준이 정해져 있는데 이번엔 그런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어 내 나름의 도전이자 실험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세 친구 이일우·황민왕·성시영(왼쪽부터)이 오는 15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광광, 굉굉’으로 뭉쳤다. 임세준 기자
실험에서 그치지 않는 보편적 음악으로의 진화

의도하진 않았으나, ‘광광, 굉굉’은 새로운 음악의 장이 됐다. 하지만 ‘실험’보다 더 중심에 둔 것은 ‘보편성’을 얻는 일. 누가 들어도 ‘좋은 음악’, ‘괜찮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이일우는 “실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험적 사운드가 보편적인 음악으로 나아가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실험에서 그치지 않고, 실험의 결정체가 상용화될 수 있는 제품이 되는 것이 목표인 거 같아요. 스마트폰처럼 기술의 진보로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고, 그것이 모아져 삶에 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것, 설득이 되는 음악으로 완성하는 것을 중점에 두고 있어요.” (이일우)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기에 이들의 음악을 한 장르로 규정하긴 어렵다. 황민왕에겐 “그간 해온 음악에 있어 가장 파격적인 작업”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지레 거먹을 필요는 없다. 이일우는 “이 세상에 어차피 새로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음악 역시 윗 세대의 자원으로 만든 새로운 음악이기에 어려운 실험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할아버지 세대의 선생님들이 보신다면, ‘네들 뭐하냐?’며 혼내기 딱 좋은 공연일 거예요. (웃음)” (황민왕)

한 번 뿐인 공연의 아쉬움은 원대한 계획을 품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한 ‘광광, 굉굉’은 더 큰 광장으로 나아간다. 성시영 이일우는 이미 “전 세계 광장 순회 계획”도 세우고 있다.

“우리 세 사람이 만든 음악적 결과물이 전자음악과 전통음악의 컬래버레이션으로만 규정되길 바라진 않아요. 하나의 특정한 장르가 아닌 성시영 이일우 황민왕 세 사람만의 장르, 우리들의 색깔을 가진 장르가 되면 좋겠어요.” (성시영)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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