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정부도 하마스도 싫다” 갈 곳 잃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절망
극심한 경제난·하마스 폭정…민심 폭발
하마스 “이스라엘 협력자가 시위 조직”
자치정부에 이어 하마스도 신뢰 바닥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는 가자지구에서 이례적인 하마스 규탄 시위가 연일 열리고 있다. 하마스는 조직원을 동원해 시위를 틀어막고 있지만, 최악의 경제난과 에너지 부족으로 고통받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집권 여당 파타가 민심을 잃은 지 오래된 가운데 사실상 유일한 대안인 하마스에 대한 신뢰도 바닥을 찍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7일(현지시간) 하마스는 보안군을 투입해 시위대가 가자지구 전역에서 진행할 계획이었던 3차 집회를 무력화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지난주 두 차례 대규모 시위를 펼쳤는데, 당시에도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당국은 취재진을 잡아 가두는 등 강제 진압을 시도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의 하마스 규탄 시위는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과 정착촌 확장 등에 항의하기 위한 집회가 대부분이었고, 이마저도 하마스가 주도한 관제 시위인 경우가 많았다. NYT는 “하마스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난주 거리로 쏟아진 가자지구 주민들의 수는 상당했다”고 전했다.
하마스는 2006년 총선에서 74석을 얻어 45석에 그친 파타를 제치고 팔레스타인 의회 1당이 됐다. 하지만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고, 총리 지명권 양도 등 하마스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후 자치정부와 파타는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 투쟁 기조를 앞세워 가자지구 질서를 유지해왔지만, 올해 팔레스타인을 덮친 폭염과 경제난에 쌓여있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모양새다. NYT에 따르면 약 200만명이 거주하는 가자지구의 지난해 실업률은 45%에 이른다. 또 2020년 유니세프는 가자지구 주민의 10%만이 깨끗한 물을 마시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지난달엔 무더위로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거의 매일 정전을 경험했다.
가자지구 칸 유니스에서 대학을 졸업한 24세 샤디는 도이체벨레(DW) 인터뷰에서 “전기 부족으로 많은 사람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으로 누려야 할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힘들고 비참하다. 희망이 없다”고 호소했다.
여기에 하마스의 폭정도 시위를 촉발한 원인으로 꼽힌다. NYT는 “하마스 고위 인사들의 족벌주의와 부패가 심하다”며 “인프라 구축 대신 군사 작전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가자지구 밖에 있는 안전가옥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주민들이 배신감을 느꼈다는 분석도 있다.
하마스는 적반하장 태도를 보였다. 살라 알바르다일 하마스 대변인은 이번 시위를 이스라엘 협력자들이 조직했다고 주장하며 “선동가들은 실망했을 것”이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경제난과 관련해서도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2006년 이후 가자지구 국경을 봉쇄했기 때문이라는 기존 견해를 되풀이했다.
외신들은 팔레스타인을 양분하는 자치정부와 하마스 모두 주민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NYT는 “일부 시위대는 아바스 수반을 비난하는 구호도 외쳤다”며 “가자지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충분한 조처를 자치정부가 하고 있지 않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고 전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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