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보고 했지만 "물에 들어가"…"채 상병 '순직' 전 무리한 지시"

정세진 기자 2023. 8. 8.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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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신속기동부대원들이 지난달 18일 경북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하천에서 집중호우 피해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해병대1사단제공)/사진=뉴스1


폭우에 실종된 주민을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해병대 병사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 사단 차원에서의 무리한 수색 지시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故) 채모 상병 소속 중대의 단체 대화방 내용과 관련 진술을 공개했다. 대화방 내용 등을 종합하면 당초 채 상병 소속된 부대 중대장과 대대장은 수중 수색이 위험하다고 보고했지만 사단 차원에서 병사들을 물 속까지 투입해 수색하도록 지시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경북 예천의 수해 복구 현장에 투입될 당시 채 상병이 속한 포7대대는 수중 수색을 하지 않았다. 습지를 수색하면서 비가 오고 있어 일렬로 서서 도로변에서 하천을 보며 걸어가는 방식으로 실종자를 찾았다. 일렬로 늘어선 대열의 선두와 후미에서 인솔 간부가 통제했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이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관련 카카오톡 단톡방 대화 등 제보 내용을 토대로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날 오후 해당 부대가 철수할 때 전파된 사단 지시사항에는 '물에 들어가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는 것이 군인권센터의 주장이다. 실제 소속 부대 단체 대화방에서 확인된 지시 사항을 보면 현장을 순시하던 사단장이 "일렬로 임무수행하는 부대장이 없도록 하라"며 "포병부대가 비효율적"이라고 질책했다.

함께 전파된 내용에 따르면 해병 1사단 지휘부는 과거 육군이 도보 정찰 후 발견하지 못한 실종 주민을 해병대가 발견한 사례를 장병들에게 교육하도록 했다. 또 '바둑판식으로 무릎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할 것'을 지시했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수중 수색을 지시하면서 장병들이 웃는 표정을 노출하면 안 된다며 군용 얼룩무늬 스카프를 쓰게 하고 장화와 우의를 입도록 지시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안면 스카프는 물에 빠질 경우 호흡을 어렵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 채수근 상병이 소속된 중대의 카카오톡 방./사진=군인권센터 제공


사고 발생 전날 늦은 오후 이 같은 지시를 받고 채 상병 소속 중대 간부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는 "안전재난수칙에 장화를 신고 물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물이 장화에 들어가면 보행할 수가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자 중대장은 "저도 우려되는 게 많아서 이야기하고 오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최종 전파된 복장에 따라 장병들은 장화를 신고 우의를 입었다.

채 상병 소속 부대는 사단장 지시를 받고 이튿날부터 4~6명이 1개조를 이뤄 수중을 걸어 다니며 수색 작업을 시작했다. 특히 이날은 해병대사령관과 국방부 장관이 수색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수중 수색을 시작한 첫날인 지난달 19일 오전 9시쯤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장 장병들의 제보를 종합하면 사단장 지시대로 간부를 포함한 12~13명이 바둑판식으로 하천에서 1m 이상 떨어져 수색하던 도중 8명의 병사가 하천 모래 바닥이 꺼지면서 급류에 휩쓸렸다. 대부분은 스스로 수영해 하천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채 상병은 물에 빠진 직후 20초가량 수면위를 오르내리다 끝내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지난달 20일 오후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 관에 마련된 고 채수근 일병 빈소에서 유가족들이 채 일병의 영정 사진을 보며 오열하고 하고 있다./사진=뉴스1


한편 해병대 수사단은 채 상병 사고 자체 조사를 벌인 뒤 지난달 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 결재를 거쳐 지난달 31일 오후 언론과 국회에 결과를 공개하려 했다가 돌연 취소했다.

해병대 수사단이 최초 작성한 채 상병 사고 관련 조사 기록에는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이 장관이 해병대 사령관을 통해 사고 결과 공개와 경찰 이첩을 미루고 대기하도록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모 대령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박 대령이 국방부와 해병대사령부의 지시를 어기고 채 상병 사고 조사기록을 민간 경찰에 이첩했다며 '군 기강 문란'을 이유로 지난 2일 직무정지와 보직해임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검찰단은 이날 해병대 수사단이 경찰에 넘긴 채 상병 사고 조사기록을 회수했다. 현재 박 대령 등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고(故) 채수근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상병의 안장식이 지난달 22일 오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장병 4묘역에서 거행되고 있다. /사진=뉴스1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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