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미디어의 미래] GPT시대의 한국언론? "유성영화 시대 무성영화 배우"

금준경 기자 2023. 8. 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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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인공지능 기술에 이렇게까지 관심이 커진 적은 없었다. <박태웅의 AI강의>의 저자인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은 챗GPT를 가리켜 “일반인이 자연어로 쓸 수 있는 첫 번째 시스템이고, (일정량 이상 학습하면) 느닷없이 나타나는 능력을 보여줍니다”라며 “열광을 할 수밖에 없는, 역사상 처음 나타난 대단한 인공지능”이라고 설명했다. 박태웅 의장은 KTH·엠파스 등에서 일한 IT분야 전문가다.

그는 변화가 한창인 지금을 '유성영화' 도입기에 빗댔다. 유성영화가 처음 제작될 때만 해도 업계에선 “사람들이 배우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할까?”라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러나 무성영화 배우들은 목소리 연기가 되는 유성영화 배우들에게 밀려났다.

박태웅 의장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게 되는 흐름에서 AI 리터러시 없이는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나갈 수가 있습니다”라고 지적한다. '휩쓸려 나갈 수 있는' 대상 중에는 언론과 미디어도 포함된다. “TV가 처음 나왔을 때 '화면이 붙은 라디오 아니야?'라고 했지만 전혀 다른 매체거든요. 이후 라디오는 차 안으로 �i겨났죠. 역할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언론을 향해 그는 “무성영화 배우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됐다는 걸 인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박태웅 의장은 '게임의 규칙'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인공지능 업계에서 스스로 규제를 요구하는 것도 '게임의 규칙'이 없어서다. “룰이 없다는 건 금지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규칙을 갖고 있어야 우리가 게임을 할 수 있을 것 아니냐라는 얘기거든요.” 그는 국가의 역할로 “유럽의 법 자체가 아니라 공론화 과정을 배워야 돼요”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태웅 의장은 8월24~25일 이틀 간 열리는 2023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AI시대의 저널리즘' 세션 모더레이터를 맡는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한빛미디어 사옥에서 그를 만나 인공지능 시대의 전망과 언론과 저널리즘의 역할, 제도적 대응 방안을 물었다.

▲ 박태웅 한빛미디어 의장. 사진=김용욱 기자

- 인공지능이 주목 받은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챗GPT에 반응이 유독 뜨거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가 있어요. 우선 일반인이 자연어로 쓸 수 있는 첫 번째 시스템이라는 거죠. 과거엔 기계에게 말을 걸거나 일을 시키려면 기계어를 배워야 됐어요. 기계어를 쓰는 사람을 프로그래머라고 하죠. 그런데 처음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말을 걸면서 일을 시킬 수 있게 된 거예요. 두 번째는 거대언어모델의 특별한 특징이 있는데요. 학습 연산량이 10의 22제곱이 넘거나 매개 변수가 1000억 개를 넘어갈 때 언어 능력이 굉장히 올라간다거나 추론 능력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느닷없이 나타나는 능력을 보여준다는 거예요. 인류 역사상 처음 나타난 대단한 인공지능이죠. 열광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 인공지능을 쉽게 설명하는 강의를 해오셨습니다. 최근 <박태웅의 AI강의> 책도 냈고, 큰 주목을 받았는데요.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 우리가 인공지능에 왜 주목하고 알아야 될까요.
“새로운 미디어가 나타날 때마다 기존의 생태계가 거대하게 흔들립니다. 무성영화만 제작되던 때에서 유성영화가 처음 나타났을 때 무성영화 배우들이 음성으로 연기하는 걸 배워서 넘어가는 게 아니에요. 목소리가 유성영화에 어울리고 목소리 연기를 잘하는 새로운 배우들이 나타나서 그 자리를 차지했거든요. TV가 처음 나왔을 때 '화면이 붙은 라디오 아니야?'라고 했지만 전혀 다른 매체거든요. 이후 라디오는 차 안으로 �i겨났죠. 역할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새로운 인공지능이 나타난 것은 새로운 미디어가 나타났다고 이해를 해야 되고,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 생태계의 괴멸적 변화에 대응할 수 없어요.”
“두번째는 이 도구를 잘 쓸 줄 아냐 모르냐에 따라 갖게 되는 폭이 너무 커졌고요. 세 번째로는 그 전의 산업혁명이 인간의 몸을 대체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인공지능은 인간의 정신을 대체하자는 거예요. AI 리터러시 없이는 인간 자체를 대체할 수도 있게 되는 이 흐름에서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나갈 수가 있어요.”

- 괴멸적 변화라고 말씀을 주셨는데 어느 정도의 변화이길래 그렇게 표현이 되는 걸까요.
“전면적인 변화를 끼칠 겁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 영향을 미치게 되거든요. 거대언어모델이 하는 일이 뭔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잠재된 패턴을 찾아내는 일'을 합니다. 잠재된 패턴이 있는 모든 곳에서 사람보다 일을 더 잘해요. 소프트웨어, 코딩쪽을 보면 코드 인터프리터(챗GPT 유료버전의 플러그인)까지 나온 뒤로는 3년 차 개발자 서너 명의 몫을 하거든요. 인터넷 서비스 고객 응대 부문도 보면 소비자 민원에 패턴이 있죠. 저널리즘도 잠재된 패턴이 뚜렷한 곳이거든요. 팩터들, 숫자들을, 데이터들을 집어 넣어주면 기가 막히게 써줍니다. 지금 미국의 아주 큰 증권사들 대부분 트레이더들은 AI로 다 바꿨어요. 잠재된 패턴이 반복되는 모든 일들은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인공지능이 하게 될 겁니다.”

- 인공지능 시대에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도구이지 않습니까? 이 인공지능이 사람을 위해, 인간적인 가치를 위해 어떻게 서비스하도록 만들 것인가가 개발 방향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잠재된 패턴이 있어서 반복되는 일들을 잘 발라내서 그걸 인공지능에 맡기고,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책에 '알고리즘 하나로 망가진 한국 언론'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인공지능 기술, 좀 더 넓게 보면 기술이 언론과 언론인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언론이 인터넷에 아예 적응을 못 했습니다. 첫 번째 단추를 너무나 잘못 꿰었고 그 후과를 지금도 겪고 있고, 그 비용을 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단추를 잘못 꿴 건 IT부서를 독립회사(닷컴)로 뺀 거예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는 편집국의 한 중간에 IT가 있어요. 한국은 언론의 유통 채널이 네이버라는 단일 채널로 독점을 당한 전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에요.”
“마감 시간이 사라졌는데 마감 시간을 지키고 있고 지면의 제약이 사라졌는데 지면의 제약을 지키고 있고, 그 제약 때문에 '롱폼'(긴 형식의 기사)이 영향력 있고 많이 읽히고 공유가 많이 된다는 통계가 있음에도 굉장히 짧은 글을 쓰고 있죠. 믿을 수 있는 정보원, 충실한 해설, 깊이 있는 전문적인 정보에 대한 수요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전통 미디어들이 다 손을 놓고 있거든요. 지금도 무성영화에 적합한 배우들로 꽉 차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무성영화 배우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됐다는 걸 인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인공지능 시대 언론과 저널리즘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변화는 점점 가속도가 붙을 겁니다. 그리고 전문화의 시대가 됐어요. 제너럴리스트가 설 수 있는 영역이 점점 좁아지고 있어요. 오늘까지 법조 혹은 체육 출입하던 기자가 그 다음 날 문화부 발령을 받아서 '발레 기사를 써라' 이런 식이잖아요. 어떻게든 꾸역꾸역 써왔던 시대가 끝났다고 봐요. 홍수에 마실 물 없다는 말이 있는데, 언론은 홍수가 났을 때 마실 물을 찾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식재산권 침해, 혐오와 차별 양산, 허위정보 확산, 일자리 문제 등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문제가 있을까요.
“유럽연합은 지금 거대언어모델에 대해 뭘 가지고 학습했는지를 밝혀야 하고, 학습한 데이터에 관해 요약문을 보여주도록 하는 논의를 하고 있어요.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는지는 반드시 밝혀야 돼요. 그래야 위험을 미리 추론하고 잡을 수가 있거든요. 지적재산권 문제도 있는데, 그림이나 동영상은 카피했다는 걸 확인할 수가 있어요. MS디자이너라고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그림 그려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내가 이런 회사 만들고 싶은데 로고를 그려달라'고 하면 즉시 (실제 존재하는 업체 로고를) 카피한 로고가 나옵니다. 학습한 내용에서 잠재된 패턴을 찾아내서 끄집어내는 건 사실 짜깁기라고 할 수 있거든요. 이런 인공지능은 이전에 없던 물건이기에 규칙이 없다는 걸 인정해야 돼요. 규칙이 없는 한 발전에 장애가 있을 거라고 봐요.”

▲ 박태웅 한빛미디어 의장. 사진=김용욱 기자

-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특이한 일이 있는데요. 특정 분야에서 '우리 산업에 규제가 필요해요'라고 주장하는 건 유전자공학 쪽 외에는 AI 분야가 처음일 거예요.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 오픈AI의 샘 알트만,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등을 비롯해 거대언어모델 개발과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서 인공지능이 팬데믹이나 핵폭탄처럼 인류 절멸을 부를 수 있는 심각한 위기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잖아요. 그리고 성명서를 낸 데 그치지 않고 국제기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관한 논문을 함께 발표해요.”

- 왜 그럴까요.
“어떤 모임에 가거나 어떤 단체에 갔는데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으면 '도대체 이 동네는 게임의 룰이 없어' 이런 얘기를 하잖아요. 룰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안 된다는 뜻이죠. 인공지능에 게임의 룰이 없다는 건 금지를 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규칙을 갖고 있어야 우리가 게임을 할 수 있을 것 아니냐라는 얘기거든요. 며칠 전에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 4개 그룹이 프론티어 그룹을 결성했는데 프론티어AI는 현재 나온 거대언어모델보다 더 큰 모델을 가리켜요. 거대언어모델보다 더 큰 모델을 만들려고 하는 그룹들은 여기 다 들어와라. 게임의 룰을 같이 만들자 그런 얘기거든요.”

- 미국과 유럽 등에서 인공지능과 관련한 규범을 마련하고 있는데요. 한국 정부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잘 안 보여요. 유럽연합이 AI분야 법안은 가장 앞서 나가고 있고 그 전에 2018년 GDPR(유럽의 새 개인정보보호 규범)을 내놨잖아요. 사실상 세계 표준이 됐거든요. 유럽연합이 공론화 과정을 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곳입니다. 수십 개 나라가 모여 있으니 공론화 과정이 생활화돼 있어요. 몇 년에 걸쳐 초안 내고 토론하고 백서로 만들고 그걸 가지고 토론하고, 다시 법안 초안을 만들고 이런 과정을 거친 다음 유럽의회에서 표결 과정을 밟고 있어요. 인공지능은 글로벌한 이벤트입니다. 저는 유럽연합과 공동 연구 혹은 공동 법제화를 제안할 경우 안 받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전문가들이 그룹을 이뤄 같이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한편으로 각계각층이 공론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돼요.”

- 국내에도 법안이 나왔습니다.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공지능 법안이 25페이지인가 그래요. 기본적으로 법은 정의를 담지 않고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인공지능은 투명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투명성'을 정의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어요. 보통 8대 범주를 많이 얘기하는데 이 법안은 정의를 내린 게 3~4개 밖에 없어요. 지금이라도 빨리 이 법안을 접고 공론화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야 합니다. 유럽 법을 그대로 가져오라는 건 아닙니다. 그 법은 유럽의 이해관계를 담았기 때문에 우리와 맞지 않을 수 있어요. 우리는 유럽의 법 자체가 아니라 공론화 과정을 배워야 돼요.”

(박태웅 의장은 8월24~25일 이틀 동안 진행되는 2023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 '판이 바뀐다: AI와 미디어 패러다임의 전환'에 출연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 편집자 주)

2023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 '판이 바뀐다: AI와 미디어 패러다임의 전환' → https://www.mediafuture.kr/

▲ 2023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 '판이 바뀐다: AI와 미디어 패러다임의 전환'
▲ 2023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 '판이 바뀐다: AI와 미디어 패러다임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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