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빠 꼬시려고"...남편 말고 애인! 전혜진에 공감하는 이유('남남')
[엔터미디어=정덕현] "나? 오빠 꼬시려고. 근데 왜 오빠 자꾸 진희 신경 써? 내 딸 오빠랑 상관... 없어! 걔랑 친해지는 거에 왜 오빠가 고민하냐고. 몇 번이나 경고했는데도 못 알아먹는 거면 나 못 만나지. 안 그래?" 지니TV 월화드라마 <남남>에서 은미(전혜진)는 진홍(안재욱)이 자꾸 딸 진희(수영)에게 신경을 쓰는 것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진희가 엄마와 화해하기 위해 마련한 여행에 은미가 불러 진홍도 함께 한 상황, 진홍은 자꾸만 진희를 신경 썼다.
보통의 드라마에서 이런 상황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처럼 치부되며 넘어가곤 하던 장면이다. 아니 딸을 챙기는 남자친구를 보며 여자가 오히려 흐뭇해하는 표정을 짓는 게 다반사다. 게다가 진홍은 그냥 남자친구가 아니라 진희의 생물학적 아빠다. 그러니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은미는 그런 진홍을 '등신'이라 부르며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우리 딸'이라 하지 않고 '내 딸'이라고 하고 진홍과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은미는 왜 굳이 진홍이 진희를 신경 쓰는 것에 선을 그은 걸까. 그건 그간 홀로 자신이 딸을 키워 왔으니 당신과는 상관없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은미가 선을 그은 건, 진홍과의 만남이 오롯이 자신과의 연애이기를 원해서다. 생물학적 아빠나 결혼을 전제한 남편 같은 의무나 책임으로서의 만남이 아니라, 진정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만남이 그것이다.
이것은 <남남>이 그간 무수한 드라마들이 별다른 의심도 없이 담아왔던 관계에 던지는 새로운 화두다. 남녀가 만나 사랑하면 되는 것을, 굳이 가족으로 연결지어 결혼을 하니 마니 했던 가족드라마의 흔한 클리셰 같던 관계들이 그것이다. 여기에 출생의 비밀 같은 게 등장하면 여지없이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너는 내 딸이다"라고 말하고, 그 말 한 마디가 말해주는 생물학적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불고했던 그런 관계를 <남남>은 거부한다.
실상 관계라는 것이 경험의 누적에 의한 것이지, 그저 유전적으로 이어졌다고 갑자기 생겨나는 건 아닐 게다. 그래서 진희 또한 진홍이 유적적인 아빠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빠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아저씨'라 부른다. 그리고 그런 호칭에 대해 진홍 또한 뭐라 하지 않는다. 그게 어쩌면 오히려 더 당연한 것이니까.
혈연을 그토록 중요시 여겼던 가부장적 시대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같은 홍길동의 대사가 유령처럼 공기에 가득 채워져 있었지만, <남남>이 보여주는 현 시대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 진희의 모습이 더 공감 간다. 그리고 진희의 아빠가 아닌 자신의 애인으로서 만나려는 은미도, 또 그걸 모두 이해하고 선선히 받아들이며 각성하는 진홍 또한.
한바탕 싸우고 난 후 호텔로 돌아오며 은미는 진희에게 어려서 "금붕어똥" 소리를 듣게 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동네 아줌마들이 은미가 새 남자와 헤어졌다고 하자 은미가 금붕어 같다며 진희를 금붕어똥에 비유했던 일에 대한 사과다. 당시 은미는 아줌마들의 머리를 다 뜯어놨지만, 진희에게 그 일은 큰 상처가 됐을 터다. 자신이 엄마의 짐이라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를 금붕어에 그리고 그의 자식을 금붕어똥에 비유하는 이딴 식의 고약한 생각은 각각의 존재들을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보지 않는 지극히 가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나온 것들이다. 아마도 은미는 생각했을 게다. 자신이 독립적인 주체인 것처럼, 딸 진희도 독립적인 주체라고. 그래서 모녀 같은 관계가 주는 사회적 시선의 부담감(그것도 싱글맘으로서)보다는 자매 같은 관계를 원했을 테고.
이제 다시 나타난 진홍 앞에서도 은미는 변함이 없다. 가족관계를 전제해 남편이나 아빠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그저 자신이 사랑하고 사랑받을 애인을 원할 뿐이다. 물론 그렇게 사랑하다 결혼할 수도 있고 그래서 남편도 아빠도 될 수 있겠지만, 그건 전후가 다른 이야기다. 온전히 주체적 존재로서 만나고 사랑하는 게 먼저이고, 그 이후에 가족이 되든 그게 아니든 그건 따라오는 이야기일 뿐이니 말이다.
<남남>이 그리는 우리 시대의 관계(가족을 포함한)는 이토록 쿨하다. 그리고 그건 가족이라는 관계에 의해 희생되는 개인들이 없는 주체적인 개개인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관계를 전제한다. 심지어 일면식도 없이 결혼했다 해도 살다보면 정이 든다는 게 옛 가족의 서사였다면, 서로의 관계가 우선되고 그렇게 경험을 통해 충분히 관계가 무르익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 현재의 서사다. 가족은 그 다음 단계의 돼도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는 어떤 것일 뿐이라고 <남남>은 말하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지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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