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광물광 시대’

2023. 8. 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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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5대 광물 확보에 사활
호주, 리튬 생산량 47%로 1위
중국, 5대광물 종합세트 보유국
칠레-아르헨티나 ‘리튬 국유화’
첨단산업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핵심 광물자원 확보에 세계 각국과 기업이 사활을 걸고 있다. 사진은 아르헨티나 살타의 톨릴라 리튬 광산. [로이터]

반도체, 전기차 등 첨단산업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핵심 광물자원 확보에 세계 각국이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흑연 등 이른바 배터리 5대 핵심 광물을 캐기 위해 남미로, 아프리카로 앞다퉈 달려가고 있다.

1925년 찰리 채플린의 영화 ‘황금광 시대’는 금맥을 좇아 미국으로 몰려들었던 ‘골드러시’의 시대상을 다뤘다. 100년이 지난 지금 개별 기업은 물론이고 각국 정부까지 광물 노다지 찾기에 혈안이다. ‘골드러시’ 뺨치는 광물자원개발 시대 이른바 ‘광물광시대(Minerals Rush)’가 펼쳐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첨단산업 발전과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으로 배터리 산업은 경제성장을 이끌어갈 가장 주목받는 분야로 꼽힌다. 배터리는 소재 특성에 따라 에너지 밀도, 수명, 출력 등 성능이 크게 좌우되고 소재의 원가 비중이 높기 때문에 소재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40년 관련 핵심광물의 수요가 2020년 대비 4배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 속에 배터리 핵심 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한 각국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배터리 5대 핵심광물인 ‘리튬·니켈·코발트·망간·흑연’의 매장과 생산은 몇몇 국가에 편중된 실정이다. 기회를 맞은 자원 부국들은 ‘자원 무기화’에 나서고, 이를 얻으려는 국가들은 배터리 동맹군까지 결성해가며 치열한 확보전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배터리 핵심 광물을 특정국에 의존하는 정도가 주요 경쟁국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 특히나 공급망 다양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관련기사 3면

미국지질조사국(USGS) 자료(2022년 기준)에 따르면 5대 핵심 광물 모두 전년에 비해 생산량이 늘었다. 경제성이 높아지면서 생산 이점이 커졌기 때문이다. 광물별 생산량 1위국가는 호주(리튬), 인도네시아(니켈), 콩고민주공화국(코발트), 남아프리카공화국(망간), 중국(흑연)이다.

‘하얀 석유’라는 별칭을 가진 리튬은 확보 경쟁이 가장 치열한 광물이다. 리튬은 배터리 4대 구성요소 중 하나인 양극재 생산에 쓰인다. 양극재 원가의 40~50%, 배터리의 20~30%를 차지한다.

전세계 리튬 생산량(13만t)의 46.9%(6만1000t)가 호주에 집중돼 있다. 호주는 리튬뿐만 아니라 니켈(16만t·4.8%), 망간(330만t·16.5%), 코발트(5900t·3.1%) 등 배터리 5대 핵심 광물 중 흑연만 제외하고 모두 생산량 5위 안에 들어가는 독보적인 자원부국이다. 다음으로 리튬 생산량이 많은 곳은 칠레로, 3만9000t(30%)을 생산했다. 이어 중국 1만9000t(14.6%), 아르헨티나 6200t(4.8%), 브라질 2200t(1.7%) 순이다.

매장량 기준으로는 칠레가 930만t(35.8%)으로 1위, 아르헨티나가 270만t(10.4%)으로 3위에 올라 전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 국가들이 서둘러 ‘리튬 국유화’를 선언한 이유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리튬 수요는 2040년까지 40배 증가할 전망이다. 배터리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도 리튬의 글로벌 수요가 올해 67만5000t에서 2030년 273만9000t으로 4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리튬은 단기간 내에 생산량을 확대하기 어려워, 폭증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중국도 리튬 분야 큰손이다. 생산량은 14.6%지만 제련·정제 단계로 오면 중국의 점유율은 65%로 훌쩍 뛴다. 중국은 5대 광물을 모두 생산하는 전 세계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니켈은 3.3%(7위), 코발트는 1.2%(12위), 망간 5%(4위), 흑연 65%(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광물이다. 니켈 함량이 높을수록 전기차 주행거리와 에너지 밀도가 개선된다. 160만t을 생산하는 인도네시아가 독보적 1위(48.5%)이며, 2위는 필리핀(33만t·10%), 3위는 러시아(22만t·6.7%) 순이다.

니켈 1위국 인도네시아와 리튬 1위국 호주는 ‘배터리 동맹군’ 파트너십을 최근 결성했다. 니켈·리튬이 뭉치면 글로벌 배터리의 판을 흔들 수 있는 막강한 위력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나라도 지난달 정부 차원에서 인도네시아와 니켈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의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급증이 예상되는 인도네시아 전기 이륜차 시장에 맞춰 이륜차용 파워트레인 공장을 건설하고 배터리 재활용을 위한 자원 순환 투자까지 협력의 폭을 넓히기로 약속했다.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전구체를 구성하는 필수 원료인 코발트는 전 세계 매장량이 830만t에 불과한 희귀 광물이다. 콩고공화국이 매장량 400만t(48.2%), 생산량 13만t(68.4%)으로 독보적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콩고와 잠비아·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정부와 전기자동차 배터리 핵심 광물 공동 개발을 하겠다고 밝혔다. 첨단산업 공급망에서 탈(脫)중국을 위한 행보다.

하지만 중국이 수년간 콩고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광물 자원 장악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왔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탈중국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2020년 기준 콩고의 19개 코발트 생산 광산 가운데 중국 기업이 소유하거나 지분을 보유한 곳은 15개로 나타났다.

망간의 경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매장량(6억4000만t·37.6%)과 생산량(720만t·36%) 모두 1위다. 망간은 배터리를 안정화하는 데 중요한 광물이지만, 원소 중 지구 지각에 세 번째로 많이 함유된 금속이어서 가격이 저렴하다. 이 때문에 배터리에서 니켈과 코발트 등 고가의 원료 비중을 줄이고 망간 비중을 높인 ‘하이망간’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에 이어 자원무기화로 삼으려는 천연 흑연은 중국의 생산량이 65.4%에 달한다. 매장량은 튀르키예가 27.3%로 가장 많지만 생산량에서는 중국의 점유율이 단연 선두다. 흑연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음극재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중국이 희토류와 흑연의 수출을 막으면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기차 생산 대란’이 촉발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흑연 매장량 비중이 0.5%이지만 생산이 거의 이뤄지지 않다가 2021년에 1만t, 2022년에 1만7000t으로 늘었다.

배터리 수요로 몸값이 뛴 핵심 광물 자원 부국들은 수출 통제와 채굴권 독점에 나서고, 신재생·배터리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선진국의 자원 확보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해외 자원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자국 내 리튬 공급망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미 에너지부는 네바다주에서 리튬 채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호주 기업 아이어니어에 최대 7억달러(약 9217억원) 자금 대출을 승인했다. 미국은 자금 지원을 통해 네바다주 리튬 광산에서 매년 37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리튬 확보를 기대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조만간 중요 광물 원자재 공급망 확보를 위한 ‘핵심원자재법(CRMA)’ 입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리튬·마그네슘·천연흑연·희토류 등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자원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민경 기자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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